박근혜 수사 때 살아난 ‘직권남용죄’, 불명확한 구성요건에 갑론을박[뉴스분석]

김정화 기자 2026. 2. 2. 17: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혐의 일부를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하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적용을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법 조항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는데, 이번에도 1심과 2심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 형사14-1부(재판장 박혜선)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면서 사법 행정권자로서 양 전 대법원장의 ‘권한’을 1심보다 폭넓게 판단했다. 1심은 그가 재판 사무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같이 해석하면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대한 제3자의 관여 행위 같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할 권한’은 애당초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반박했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한 202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판례가 아니다”라며 배척했다. 1심 재판부가 이 판례를 인용하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것과 배치된다.

이처럼 재판부 판단이 뒤집힌 것은 현행법상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이 명료하지 않아서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애매하고, 입증도 어려워 그간 수사기관에서도 이 죄목을 적용하는 것을 꺼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회 로텐더홀 단식 농성장에서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여드레째 단식 중인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방문해 대화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권력자들이 직권남용으로 대거 기소됐다. 재직 시절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미국 내 소송을 지원하고 차명재산의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는 데 공무원들을 동원해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요구했다는 혐의에 대해 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 모든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기업체들의 활동에도 직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무죄를 받았다. 법원은 1심부터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소송 지원 등 지시가 대통령으로서 공무원에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도록 요구해 기소된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서도 1심 무죄, 2심 유죄로 판단이 갈렸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에서도 변호인단이 즉각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대법원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지난달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 안팎에선 법 조항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비교형사법학회에 기고한 ‘직권남용죄 개정 방향’ 논문에서 “직권의 남용 외에 지위의 남용을 포함시켜 직권남용죄에 의한 법익 보호 기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또 직권남용죄의 부당한 확대 해석을 방지하기 위해 판례와 학설에 의해 ‘남용’ 행위의 개념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가 수년간의 재판 끝에 무죄를 확정받은 이재명 대통령도 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은 최근 직권남용죄가 정치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공직자 등의 처벌 우려를 줄이겠다며 올해 상반기에 구성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손보겠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법 조항 자체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2024년 우병우 전 수석이 낸 직권남용죄 위헌 심판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우 전 수석은 직권남용죄의 ‘사람’의 범위에 ‘공무원’을 포함하고, ‘의무’의 범위에 ‘직무상 의무’를 포함하는 것은 법 조항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2006년에 이어 2024년에도 입법목적 등을 고려할 때 해당 조항이 처벌하려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다며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