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성 월급날’은 어떻게 수원의 추억이 되었나

경기일보 2026. 2. 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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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재 경기도조정협회장(유연에이에프 대표이사)

‘삼성 월급날’은 어떻게 수원의 추억이 되었나

수원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삼성전자 월급날이면 수원 경제가 살아난다.”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체감에 따른 표현이었다. 대기업 한 곳의 급여일이 지역 상권의 매출과 교통량, 소비 흐름까지 바꿔 놓을 만큼 삼성전자는 수원 경제의 중심에 있었다.

수원이 오늘날 120만 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도 삼성전자의 역할은 분명히 작용했다. 산업 기반이 있었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었으며, 그 일자리를 축으로 인구와 상권, 교육과 주거가 확장됐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입주 기업’이 아니라, 수원이 광역급 도시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핵심 축이었다.

이 관계를 설명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운명공동체, 한 몸, 파트너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주주’라는 비유가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주주는 단지 이익을 나누는 존재가 아니다. 성장을 가능하게 한 환경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함께 부담한 주체다.

이런 점에서 수원시는 삼성전자의 주식시장 상 법적 주주까지는 아니지만, 경제적·제도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주주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수원시와 수원시민은 삼성전자가 자리 잡는 초기부터 기업 활동이 가능하도록 도시 인프라를 구축했고, 교통·주거·교육·의료 체계를 감당해 왔다. 대기업 본사가 위치하며 발생한 혼잡과 환경 부담, 토지 이용의 기회비용 역시 시민이 함께 떠안았다. 이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공동체가 감내한 장기적 투자였다.

그 결과로 삼성전자는 수원시에 막대한 법인지방세를 납부해 왔다. 이는 벌금도, 시혜도 아니다. 오히려 기업 성과에 연동돼 늘거나 줄어드는 법인지방세는 성격상 ‘배당’에 가깝다. 삼성전자가 창출한 성과의 일부가 도시 재정으로 환류되고, 그 재원은 도로·안전·교육·도시 유지에 쓰인다. 기업의 성과가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구조다. 이는 분배 논리가 아니라, 시장 질서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문제는 지난 십수년간 이 관계를 수원의 지역 정치가 얼마나 성숙하게 다뤄왔느냐다. 수원의 정치인들이 내거는 공약에는 삼성전자와의 연계가 자주 등장한다. 산학협력,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와 같은 말들은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돼왔다. 그러나 정작 삼성전자를 위해 연구비 한 번,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직·간접 투자 한 번 제대로 지원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함께 키워야 할 산업 자산으로 대하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성과에 대해 세수만 거두는 구조에 익숙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 사이에도 삼성전자는 묵묵히 역할을 해왔다. 법인지방세를 통해 수원 시민의 삶의 부담을 덜어왔고, 수원에 살면서도 외부 도시로 출근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수원 안에서 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규모 일자리 거점으로 기능해 왔다. 삼성전자가 없었다면 수원은 훨씬 더 빠르게 ‘베드타운’으로 고착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반도체 산업 부지 이전 논의는 단순한 공간 재배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뿌리로서 수원이 갖는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다. 선두 기업과 협력사, 인력과 상권이 축적돼 온 산업의 뿌리를 옮긴다는 것은, 주주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배당 구조를 바꾸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지역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반도체 산업 부지 이전이 가져올 세수 공백과 일자리 변화, 산업 생태계 약화에 대해 책임 있게 설명하거나,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 사례 또한 찾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사실상 무대응이 계속된다면, 책임을 회피하고 그 피해를 시민에게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에는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협력은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협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 계약과 약속에 대한 신뢰, 책임의 연속성이다. 정책 환경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과거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까지 함께 사라질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해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가 하나 더 있다. 협력은 일방의 희생을 전제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에게만 비용을 떠넘기고, 다른 쪽은 그 성과만 가져가는 구조에서는 협력이 유지될 수 없다. 그런 관계는 협력이 아니라 소진이며, 결국 산업 생태계 전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돌아온다.

이 기준에서 보더라도 수원과 삼성전자의 관계는 가볍게 재단될 수 없다. 수원이 삼성전자의 ‘주주’라는 비유는 기업을 통제하자는 주장도, 국유화를 뜻하는 말도 아니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시가 환경을 제공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담을 수원시민이 함께 감내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그 성과가 다시 시민의 삶으로 환류되도록 설계하는 것, 그것이 도시와 기업 사이의 건강한 협력이다.

반도체 산업 부지 이전 논의 역시 이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입지 조정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축을 어디에 둘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비용과 책임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만약 이전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지역이 떠넘기고, 성과는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면, 그 구조는 협력이 아니라 회사와 주주 간의 관계를 제3자가 지배하려는 경영권 침해에 가깝다.

이제는 찬반의 구호를 넘는 논의가 필요하다. 수원이 어떻게 기여해 왔고, 앞으로 무엇을 감당할 수 있으며,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협력의 조건을 분명히 정하는 일이다. 정치의 역할은 그 질문을 피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고, 그 답을 시민 앞에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논의의 기준은 분명하다. ‘얼마를 더 거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더 키울 것인가’다.
삼성전자는 삼성전자 임직원만의 회사가 아니다. 수많은 협력사와 그 종사자들, 출퇴근 인구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인근 상권까지 포함해, 수원 경제를 지탱해 온 핵심 축이다. 이런 산업을 떠나보내자는 말이 오가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자신의 성장 기반을 스스로 약화시키게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태도는 거리 두기가 아니라 더욱 분명한 지원이다. 모호한 관리나 형식적 연계가 아니라, 연구·인력·산업 인프라를 중심으로 삼성전자가 수원에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명확한 지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는 특정 기업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수원의 일자리와 상권, 세수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산업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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