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청정 동해안의 숨은 보석을 찾아서... 동해의 끝, 새로운 시작 울진 여행
붉은 갑옷을 입은 바다의 보물

이곳의 주인공은 단연 ‘울진대게’다. 흔히 영덕대게를 떠올리지만, 사실 국내 대게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울진에서 나온다. 특히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km 떨어진 거대한 수중 암초 ‘왕돌초(王乭礁)’는 질 좋은 대게들이 서식하는 천혜의 어장이다.

경매사의 종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되면 상인들의 손짓이 빨라진다. 낙찰된 대게는 순식간에 트럭과 수족관으로 옮겨진다. 이 생동감 넘치는 현장을 뒤로하고, 이제는 맛을 볼 차례다. 항구 주변 식당가에는 찜통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죽변항에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죽변등대 아래쪽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현준과 현태의 집과 교회, 선착장, 대나무 숲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닷가 작은 마을은 1910년에 세워진 하얀 등대까지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취가 그만이다. 건물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구도가 좋다. 붉은 지붕과 푸른 수평선, 그리고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의 속도가 한 프레임 안에서 어울린다.

경북 울진군 온정면. 이곳에는 매우 특별한 온천이 숨어 있다. 바로 덕구온천이다. 다른 온천 지역처럼 호텔과 리조트가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 아니다. 스파월드와 콘도 단 두 개의 건물만이 울창한 산림 속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주변은 온통 초록빛 나무들이 감싸고 있어 마치 산속 비밀 정원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덕구온천은 인공적인 시추 없이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국내 단 하나의 온천이다. 대부분의 온천은 지하 깊은 곳까지 구멍을 뚫어 수맥을 찾아내고, 펌프로 물을 퍼 올린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응봉산 중턱, 암반 사이로 뜨거운 물줄기가 스스로 터져 나온다. 지하 마그마층에서 충분히 가열되고, 각종 광물질을 머금은 채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것이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온천수는 4,000톤. 섭씨 42.6도를 유지하는 이 뜨거운 물은 실제 필요량인 2,000톤을 훌쩍 넘어선다. 남은 물은 덕구계곡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계곡의 생명들을 적신다.
응봉산 중턱 원천에서 솟구친 온천수는 송수관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서 온천장까지 전달된다.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서 가열이나 냉각 처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온도와 성분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인위적인 처리는 온천수에 녹아 있는 귀한 미네랄 성분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구온천의 발견 설화도 흥미롭다. 600여 년 전, 전씨 성을 가진 한 사냥꾼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화살에 맞은 멧돼지를 추격하던 중, 계곡의 한 지점에서 물을 마신 멧돼지가 갑자기 활력을 되찾고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상하게 여긴 사냥꾼이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따뜻한 물이 바위 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뜨거운 온천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어긋나 있던 것들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마음의 긴장이 서서히 풀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진다. 관대해지고, 낙관적이 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긴 여정 끝에 온천 속으로 몸을 담그는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덕구온천의 수질은 최상급이다. 일본의 유명 온천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에 힘이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약알칼리성 온천수에는 전해질이 풍부하게 녹아 있다. 칼륨, 칼슘, 염소, 중탄산나트륨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들이 균형 있게 함유되어 있다. 신경통, 류마티스성 관절염, 근육통, 피부 질환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가벼운 트레킹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덕구온천에서 원탕까지 이어지는 4km 코스로, 덕구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걷는 길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숲길은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맑디맑은 덕구계곡의 물줄기가 함께한다. 숲은 짙푸르고, 계곡은 깊이를 알 수 없다. 하룻밤 온천욕으로 풀어진 몸은 한층 가볍다.
“응봉산의 고도는 998.5m입니다. 1,0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죠. 하지만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험준하기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악산입니다.”

세계의 다리를 건너며

금문교를 시작으로 서강대교, 노르망디교, 하버교, 크네이교 등 세계 각국의 명교들이 산속 계곡에 재현되어 있다. 등산로에 세계 유명 다리라니. 다소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방문객들은 다리마다 설명을 읽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망양정과 월송정은 울진이 자랑하는 역사적 누각이다. 특히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 제일루’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2층 누각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면 광활한 바다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 신라 화랑들이 소나무 숲에서 달을 감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송강 정철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바 있다. 누각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앞으로는 명사십리 백사장이 펼쳐진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비수기에는 한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금강송 숲을 걷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금강송 군락 사이를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길부터 등산 경험이 필요한 코스까지 다양하다.

소광리에 자리한 금강송에코리움을 찾으면 금강소나무 숲을 쉽게 체험할 수 있다. 2019년 7월 문을 연 이곳은 금강소나무를 테마로 한 체류형 산림 휴양 시설로, 금강송테마전시관과 금강송치유센터, 찜질방, 유르트(유목민이 사용하는 천막), 약 150명이 숙박 가능한 수련동, 금강송숲체험길 등을 갖췄다.
이현세의 만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

일출, 그리고 새로운 시작


불영계곡은 깎아지른 듯한 단애와 기암괴석이 아찔한 풍경을 빚어내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린다. 울진읍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불영사로 향하는 중간에 불영정, 선유정 같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계곡까지 내려가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동심식당은 30년째 전복죽을 해 온 식당이다. 칼국수식당은 가자미회국수가 맛있다. 울진군청 앞 네거리 시장통에 자리한다. 9번 충청도집은 죽변항 어민들이 추천하는 물회집이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6호(26.02.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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