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농업 농촌에서 일할 권리

신강협 2026. 2. 2. 09:3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권왓칼럼] 농민과 농업노동자, 한국인-외국인 모두가 인간답게 일할 권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겨울에 귤 수확은 훨씬 수월했다. 아는 외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수확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일손을 구할 방법이 별로 없는 필자에게 그들은 구세주와 같았다. 그렇게 한 해 농사 중 제일 어려운 시기를 어렵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올해 농사를 다시 시작할 시기가 오면서 다시 일할 사람 구할 걱정이 든다.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풀도 베어야 하고, 비료도 뿌리고, 방제 작업도 해야 하는데 혼자서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친구들에게 계속 손을 빌릴 수도 없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농업 노동에 잘 오지 않을까? 농업 분야에는 일할 사람이 없고,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없어서 야단 난 기사들이 넘쳐난다. 또 다른 한편, 국내 노동계에서는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일자리를 뺏는다고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반대하는 듯한 주장을 한다. 산업 현장에서도 일꾼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그렇다. 농업 분야에 허가된 외국인이라도 더 많은 임금 소득을 좇아 등록 노동자의 지위를 포기하고 여러 산업 현장의 노동자로 유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모든 상황은 농업˓농촌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처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특히 한국 청년들은 농업, 농촌지역의 일자리로서는 자신의 생계를 꾸릴 수가 없다.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공동숙소에서 거주하는 등 소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노동을 이어갈 수 있다. 농업˓농촌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최저 임금 수준 정도의 급여와 낮은 생계 수준을 감내하여야 농업˓농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방송에서 몇몇 부농 사례를 소개하지만, 아주 극히 일부의 기업화된 농부의 사례일 뿐 농업 농촌의 현실의 일반적 상황으로 보긴 어렵다. 결국 낮은 임금과 수준 낮은 처우를 기반으로 형성된 농업˓농촌지역의 노동 시장은 한국인들에게는 닫혀 있고, 외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노동 시장이 되고 있다.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유엔 선언(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asants and Other People Working in Rural Areas, 201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됨. 이하 '유엔농민권리선언')'은 전문에서 농업, 농촌지역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있다. 

"위험하고 착취적인 환경이 존재하는 가운데 일터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빈번히 거부당하고 생활임금 및 사회적 보호가 결여된 채 일해야만 하는 농민 및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낮은 수준의 임금과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노동 환경은 힌국인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외국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하는 방식의 차별적 삶을 강제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낮은 임금과 처우는 한국 청년층을 포함한 한국 노동자들에게 농업 노동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동된다. 노동계가 외국인이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불평도 그러한 논리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근본)"이라 했는데, 어느새 농업은 가장 저가의 값싼 산업이 되어버렸다. 농업 농촌지역의 일자리에 대한 낮은 인식이 한국인들에게 농업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은 농업, 농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노동의 권리(13조)를 가지며, '보람 있고 인간다운 일자리, 동등한 보수 그리고 사회보장 혜택에 대한 권리와 소득 창출 활동에 접근할 권리'(4조2항)를 갖는다고 천명한다. 그리고 국가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충분한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보상이 제공되는 일을 할 기회가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13조3항), 국가는 동등한 노동 가치에 대해 어떤 형태의 차별 없이 공정한 임금과 공평한 보상을 보장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16조6항)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농업˓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적정한 임금 수준과 처우는 가능할까? 사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왜냐하면 농민은 단순히 노동자만이 아니다. 생산자이자 동시에 농업노동자이기도 하다.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도 농업 소득을 얻는다기보다 자기 노동에 대한 인건비 정도의 소득을 얻고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근로기준법에 맞춰서 장기간의 근속여건을 맞춰 노동자를 고용하기에는 농민들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래서 더 저가의 이주노동자를 더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농업˓농촌지역의 노동에 관한 논의는 농업 농촌의 특성,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사회적 균형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은 이에 대해 국가의 책무를 요구하고 있다. 농업농촌지역의 적정한 소득창출과 공정한 임금 그리고 보상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의무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정에서는 농업 분야의 안정적 노동 수급을 위해 공공형계절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공공형계절근로자로서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허가하고 농협에서 저가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농업˓농촌지역의 노동 시장 현실을 생각하면 좋은 정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공공계절근로사업은 지속성이 없다. 언제까지 세금으로 지원할 것이고, 언제까지 농협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지원을 하지만 2026년 제주지역에서는 겨우 10개 농협이 각 30-50명 정도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내국인들도 진입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 환경과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 시장이 노동자들의 생계를 충분히 보장할 정도의 수준으로 향상될 필요가 있다.

경남 거제도에 조선업이 활황일 때 거제 지역은 서울 못지않게 부자 도시 소리를 들었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지금 조선업은 초-활황기를 맞기하고 있다. 그런데 거제의 상가 공실률은 현재 35.1%로 전국에서 둘째로 높다. 경기는 활황인데, 왜 그럴까? 조선일보 2025년 11월 20일자 "조선 호황인데, 도시는 불항.. 다이소만 북적 '거제의 역설'"이라는 기사에서 관련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빠져나간 한국인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조선업계는 저가의 이주노동자만 대거 고용했다. 일자리는 많아지는데, 노동자들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와 낮은 임금은 한국인의 진입을 막고, 외국 이주노동자들의 저가 노동만 양산했다. 낮은 임금으로 인해 외국인노동자들은 소비력이 거의 없고, 실업자 한국인들은 거제를 떠나기 때문에 산업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는 거꾸로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농업이 주요 산업인 제주에서 농업˓농촌지역의 노동을 저가 노동으로만 안정화한다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노동자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단순히 노동만 하는 생산자만 아니다. 노동자는 생산과 더불어 소비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적정한 임금 수준과 평등한 처우는 순환적인 경제의 순기능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도 역시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노동자이며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저가 노동의 폐해는 몇몇 소수 계층에게만 산업의 이익을 몰아주고,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고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순환적 경제를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어떤 산업이 더 발전하든 퇴보하든 간에 농업은 근본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한 농업을 단순한 이익구조의 논리로만 취급하면 농업˓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은 국제인권규범의 원칙들을 상기하며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제29조 2항과 3항에서 "(제주)도는 임시, 계절 또는 체류 자격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도민의 노동할 권리와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특히 농업˓농촌지역에서 모든 사람의 노동과 생계를 인간의 권리로서 보장하기 위한 우리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