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으로 만난 동료, ‘탈케’한 뒤엔 어떻게 지내나요

박다해 기자 2026. 2. 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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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다섯번째 응답
클립아트코리아

‘케이팝 사랑과 탈출사이’는 케이팝을 둘러싼 여러 문제의식을 나누고 또 동시에 다양한 사랑의 모양을 고민해 보는 연재입니다. 각 회차마다 필자들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독자의 응답을 3∼4주에 1회 꼴로 공개합니다. 칼럼은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268) 코너에서 로그인한 뒤 만날 수 있습니다. 독자의 다양한 의견을 읽고, 관심있는 회차의 칼럼을 직접 만나보세요.

6회: 돈 주고 살게요…최애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최애의 ‘불필요한’ 노동을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을 없애고 싶은가요?”

불필요한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이돌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꽤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이 제게는 행복과 즐거움으로 연계된다고 생각해서 역시 불필요한 노동이라는 건 기행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가지 꼽을 수 있는 것은 코로나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영상통화 팬 사인회입니다. 대면으로 (팬 사인회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음반 판매량을 높이고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극한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 등) 모든 것이 완화된 상황에서 굳이 영상통화를 하면서 무리한 스케줄을 이어나가야 하는 지 의문입니다. (푸푸)
15회: 그 많던 아이돌 인형은 누가 다 샀을까?

“케이팝 씬에서 팝업 스토어, 인형, 각종 엠디(MD) 생산을 제외하고 팬으로서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요”

사실 최근 몇 년간 데뷔하는 아이돌 보면 엄청난 미감으로 덕지덕지 (포장)해서 본질인 음악이 흐려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저는 라이브도 하면서 무대를 즐기는 모습 자체를 보고 싶은 건데 (유튜브) ‘쇼츠’용 ‘훅’ 강한 음악이랑 포인트 안무만 가져와서 카메라만 쳐다보는 게 좀 기괴했달까요. 그들의 존재 가치 혹은 그들의 무대는 결국 팬들을 위한건데, 노래는 안 하면서 팬들은 철저하게 ‘스밍’(스트리밍) 돌리고 ‘굿즈’ 사줄 존재로 여기는게 너무 싫었어요. ‘(굿즈가) 못생겨도 어차피 산다'고 말한 어떤 사람이 생각나네요. (고수조아)
20회: 케이팝을 사랑해서…작사가 ‘지망생’이 되었다

“케이팝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스템과 영역들 중 속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요새 인스타그램에 뜨는 작사 아카데미를 보면서 조금 혹했는데 자세한 사정을 알게되어 흥미로워요. 전 한때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고 싶어서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어요. 케이팝이 케이팝이라고 불리기도 전에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요즘 나오는 뮤직비디오는 퀄리티도 자본력도 높아져서 신기할 정도인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는 어떻게 데뷔(?)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햇시)
21회: 케이팝 작사 ‘노동’, 사랑하는만큼 계속 쓰는 법

“시간이 흘러도 멈추지 않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흐르는 한 줄의 가사는 무엇인가요?”

“넌 내게 가장 빛날 계절을 내 쉬어” -체리 블러섬(Cherry Blossom), 크래비티

(은하)
27회: 케이팝에 ‘명품 앰배서더’라는 유령이 배회한다

“‘최애’가 앰배서더가 된 브랜드에 호감이 생기거나 구매로 이어진 적 있나요? 내 최애도 럭셔리 브랜드 앰배서더가 되길 바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의 최애는 2세대 아이돌입니다. 제가 느끼기엔 2세대 아이돌이 공항 패션이나 화보, 무대 의상 등으로 명품을 걸치는 게 본격화한 시기였던 듯 해요. 저의 최애는 구찌를 즐겨 착용했어요. 그러다보니 팬들 사이에선 최애가 입은 브랜드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분석하는 문화가 점점 강해졌죠.

저는 명품은 전혀 몰랐지만, 최애가 즐겨입는 구찌나 광고를 찍었던 명품 브랜드를 하나둘 접하면서 호감이 생겼습니다. 원래는 스파(SPA) 브랜드 외엔 알지도 못했던 제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명품 브랜드를 많이 아는 편이 되었죠.

요즘 저의 최애는 그룹 음악 활동보다 솔로로서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명품을 전시하는 일이 드물어졌죠. 처음에는 명품을 걸치지 않는 최애가 어색하고, (소위) ‘가오'가 떨어진다고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돌 업계 최전선에서 명품 등을 걸치기 위해 이미지 관리를 ‘빡세게’ 하던 최애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좀 더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명품에 대한 환상이 조금 깨졌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본질은 최애 자체지, 명품과 성공의 후광이 아니었구나 싶어서요.

지금 좋아하는 또다른 4세대 최애는 그룹이 성공했고, 개인의 스타일이 좋아서 명품 협찬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다만 최애가 명품을 착용한 모습이 성공의 증표같아서 자랑스럽긴 해도, 그걸 각별하게 느끼게 되진 않더라고요. 앞서 2세대 최애의 소탈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니까요. 명품 착용 자체가 너무나 흔해지고 비즈니스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염증일 수도 있고요. (JM)
아이돌 그룹을 팔 때는 캐릭터 해석이 중요한데,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는 이에 도움이 됩니다. 자세히 풀어서 언어화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뉴진스 민지와 다니엘은 샤넬과 셀린느의 앰버서더인데 두 브랜드 모두 우아하고 고급스럽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역사 때문에 나뉘는 층위가 있습니다. 구찌 앰버서더인 하니의 이미지는 보다 차별화되는데, 통통 튀고 트렌디한 느낌입니다.

기사를 보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브랜드와 함께 분류하는 것이 멤버들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도 덕질을 할 때 (더욱) 재미있고 시너지가 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본 뒤에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저 멤버 ‘캐해’(캐릭터 해석)의 기호로서 작용한다고 생각했던 브랜드 앰버서더가 내 안의 소비욕을 자극시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봤습니다. (최애가 앰배서더인) 브랜드에 대한 호감은 무조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명품을 구매하지 않지만 나중에 소비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퐁주)
30회: 연애를 들키면 안 되는 아이돌 ‘직업윤리’, 당연한 건가요?

“최애의 연애, 용인할 수 있나요? 가능하다면 가능한 이유를, 불가하다면 불가한 이유를 알려주세요.”

오랫동안 생각했다. 대체 왜 안 되는가?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무균실의 캐릭터가 아닌 하나의 인간이지 않나. 물론 어쩌면 나는 아이돌에 그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불합리하다면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낼 일이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럼 20대 때 연애하지, 언제 연애하는가. 나는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은) 그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 의견은 당연히 ‘된다’이다. (서희수)
가능합니다. 아이돌은 노동자이며 노동자는 사람이고, 또 사람이어야 합니다. 들키지만 말라는 논리는 비약입니다. 네가 연애와 섹스, 할 거 하면서 살 건 알지만 그걸 보이는 순간 죄가 된다는 게 전혀 이해가 안돼요. 아이돌의 연애와 섹스에 분노하는 건 정말, 정말 기괴한 문화입니다. 유지되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하는 팬들도 스스로 괴롭고, 아이돌도 고통받으니까요. 2025년의 케이팝 팬들은 아이돌도 사람이라는 걸 인지해야 해요. (윤다경)
당연히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덕질을 하더라도 돈은 쓰지 말자는 나만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쓰지 않는 덕질은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는 덕질은 상대적으로 오래가거나 깊은 ‘유사 연애’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내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아이돌 판에 발을 담궈본’ 사람들을 보면 콘서트 한번에 최소 3-40만원을 쓰는 것 같았다. 지방에서 올라가는 사람들과 티켓팅에 실패해서 암표를 구하는 사람들은 (최소) 50만원부터 시작한다. 아이돌 팬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이것은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아이돌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만한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나고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면, 수십만원에 산 굿즈들은 단돈 몇 만원에 중고 사이트에 올려진다. 아니면 ‘탈덕 후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에게 준다. 굿즈라는 것은 내가 아이돌을 좋아할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니라면 비싸기만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케이팝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아이돌은 언제나 피해자라고 여겨지지만 팬들의 사랑을 원동력으로 돌아가는 산업 구조 속에서는 누구도 ‘순수한 피해자’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은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다. 팬들과 아이돌을 착취하는 소속사와 아이돌을 통제하려고 하는 팬들도 문제이지만 “나에겐 오직 너희밖에 없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아이돌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팬들도 자유롭지 않다. 팬클럽 멤버십에 가입하려면 돈을 내야 하고, 음원이라도 내는 날에는 팬덤 내부에서 서로를 감시하며 스트리밍을 했는지 검사하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돈과 노력이 모두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의 수입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라도 더 사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전체 기사를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기형적인 사랑’이라는 말이었다. 사실 케이팝 산업 자체가 몇 년 사이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커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정도의 잠재력과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 아이돌 몇 사람에게 의지해서 전체 산업이 돌아가는 구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조금 더 적은 돈을 벌면서 아이돌의 인권과 팬들의 팬심을 지켜줄 것인지, 아니면 일반인이라면 꿈꿔보지도 못한 돈을 벌면서 모두의 자유를 박탈당할 것인지를 잘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노아)
말그대로 연애는 자유입니다. 다만 들키지 말라는 건 덕질의 대상에게 ‘유사 연애’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무조건) “연애하지마!”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투자한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이 있으니 너도 어느정도 예의를 차려라”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케이팝 덕질은) 본인 시간과 돈을 써서 한 분야에 대해 집요하고 빠른 시간 내에 빠져들게 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애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도 커지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덕질 18년차)
34회: 최애가 밥 먹여주냐고요? 동료를 만들어줍니다!

“케이팝이 여러분에게 남겨준 동료와 커뮤니티에 대해 들려주세요.”

사회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케이팝이라는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는 그 난이도가 수직 하강하죠. 저는 사회에서 그것도 같은 회사에서 케이팝 덕에 최고의 동료를 만났고 일과 취미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 친구를 만났습니다. 케이팝이라는 취미는 어쩌면 청춘과 열정을 계속 지속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 친구관계도 지루해지지않게 유지해 줍니다. (박희라)
서로의 최애에 대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덕메’(덕질 메이트)와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최애 덕에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최근 덕메가 티켓팅에 ‘현타’가 와서 ‘휴덕’(덕질을 쉬는 일)을 선언했어요. 갑자기 휴덕을 한다고 하니 우리가 앞으로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케이팝이라는 연결고리가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주었지만, ‘탈케’(케이팝 탈덕)한 친구와는 어떤 모양으로 동료로 남을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된 계기였어요. (다들)탈케’한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은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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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여기, 케이팝과 함께 자란 이들이 있다. ‘최애’가 몇 번 바뀌는 동안 케이팝은 세계 음악 시장을 흔드는 장르가 되었고 국익을 거론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장밋빛 전망’만 가득할까? 물음표가 남는다. 기획사는 수익에만 매달리고, 팬덤은 덕질을 가장한 노동으로 지쳐간다. 사건사고도 반복된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는 케이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함께 고민한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는 ‘케이팝 하는 여자들’과 ‘들불’, 한겨레가 공동 기획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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