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 시인 오규원

이한수 기자 2026. 2.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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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7년 2월 2일 66세
“관념의 구상화(具象化)-관념 해체-관념 배제로 이어지면서 지난 40년 동안 내 시가 변했다”고 밝힌 오규원 시인

시인 오규원(1941~2007)은 1970년대부터 조선일보 지면에 자주 등장했다. 1972년 3월 7일 자 ‘30대 시인론: 신예 5인의 소리’ 기사에서 31세 시인 오규원은 30대 시인 김영태·마종기·정현종·황동규와 함께 좌담을 가졌다.

오규원은 ‘40대 50대에게 할 말 있다’라는 부제가 달린 기사에서 “우리 시인들은 자기 시를 너무 아끼는 경향이 있어요. 좋은 시를 얻으려면 시라는 무형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1972년 3월 7일 자 5면)라고 말했다.

30대 시인론. 1972년 3월 7일자 5면.

1976년 11월 17일 자 ‘수요 시단’에 실린 오규원의 시 ‘용산에서’는 그가 말한 ‘무형의 압박에서 벗어난 시’일지도 모른다.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후략)

1976년 11월 17일자 5면.

오규원은 시인 중에 드물게도 자신의 ‘시론(詩論)’을 탐구한 시인이다. 1999년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를 내면서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라는 화두를 내세웠다. 존재 하나하나가 도(道)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라는 뜻. 오규원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 이론을 말했다.

1999년 6월 21일자 19면.

“선가(禪家)에서 말하길 모든 개체와 사물 각자가 도(道)라고 한다. 사물과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현상 그 자체가 의미라는 것을 시로 탐색하려고 했다. 이 지상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닐까.”(1999년 6월 21일 자 19면)

시인은 이를 ‘날(生) 이미지의 시’라고 표현했다. 2005년 펴낸 시론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해 아홉 번째인 생애 마지막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를 내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2005년 7월 11일자 A20면.

“저의 ‘날이미지 시’가 추구하는 것은 존재의 현상 그 자체를 언어화하는 거예요. 여기서 존재의 현상 그 자체가 날이미지라면, 그것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주관으로 인해 날이미지의 순수성이 없어지죠. 저는 시인의 주관이 없는 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시는 현상에 충실한 주관을 지향하고, 그 주관까지도 형상화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2005년 7월 11일 자 A20면)

오규원은 “선비 중심 사회에 대한 반발이 날이미지론이다. 이념을 창출하는 관념 세계로부터 단절되고 싶다”(2002년 3월 11일 자 21면)고 말하기도 했다.

2002년 3월 11일자 21면.

김화영 고려대 교수는 2002년 여름 ‘시가 있는 여름 풍경’ 코너 첫 시로 오규원의 시 ‘빈자리가 필요하다’를 골라 독자에게 선보였다.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후략)

2007년 2월 5일자 A24면.

김 교수는 “빈자리가 없는 곳은 지옥이다. 늘 보는 그 얼굴, 늘 듣는 그 소리, 늘 바꾸어도 바뀌지 않는 높은 자리, 늘 받고도 늘 안 받았다는 그 돈, 사람 시세, 후보 시세, 주식시세, 부동산시세,…. 그런 것들만 빼곡히 고여 있는 일간신문에도 빈자리가 필요하다”(2002년 7월 15일 자 21면)고 평을 적었다.

오규원은 1991년부터 숨 쉬기가 곤란해지는 폐기종을 앓았다. 공기 좋은 곳을 찾아 강원도 영월, 경기도 양평에서 기거했다. 2007년 2월 2일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간병하던 제자 이원 시인 손바닥에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썼다. 제자는 그 시를 외워 세상에 전했다. (2007년 2월 5일 자 A24면)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시인은 마지막 시구처럼 강화도 전등사 한 나무 아래 영원히 잠들었다. 시집 ‘순례’(1973) ‘이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을 비롯해 동시집 ‘나무 속의 자동차’(1995), 시론집 ‘현실과 극기’(1976) ‘언어와 삶’(1983), 창작이론집 ‘현대 시작법’(1990) 등을 남겼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1982년부터 20년간 재직하며 많은 문인 제자를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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