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레임덕 신호탄?… ‘텃밭’ 텍사스 보선, 민주 14%p차 압승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1년 만에 공화당의 철옹성으로 불리던 텍사스 심장부에서 대이변이 발생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무려 17%포인트 격차로 압승했던 공화당 텃밭 텍사스주 상원 제9선거구(SD-9)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14%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공화당은 1년 만에 지지 격차가 무려 31%포인트 뒤집히는 타격을 입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충격적인 결과(Stunning upset)” “텍사스에서 일어난 거대한 정치적 지진”이라며 “공화당 내부에 패닉(Panic·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가 선거 직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음에도 참패를 막지 못해, 집권 2년 차를 맞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운영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p 우세 지역이 뒤집혔다”
지난달 31일 치러진 텍사스주 상원 제9선거구 결선 투표에서 민주당의 테일러 레메트(Taylor Rehmet) 후보는 5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3%에 그친 공화당의 리 웜스갠스(Leigh Wambsganss) 후보를 14%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이 결과가 충격적인 이유는 이곳이 단순한 우세 지역이 아니라 공화당의 압도적인 강세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인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는 이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를 17%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린 바 있다. 그러나 1년 만에 민심은 급변했고, 공화당은 안방에서 두 자릿수 격차의 패배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패배의 충격은 선거 자금 규모를 비교했을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화당 웜스갠스 후보는 이번 선거에 약 73만달러(약 10억원)를 쏟아부으며 총력전을 펼쳤다. 반면 민주당 레메트 후보의 자금은 약 7만달러(약 1억원)에 불과했다. 무려 10대1에 달하는 자금력의 열세와 열악한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가 거대 여당의 후보를 꺾은 것이다. 현지 언론과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선전하겠지만 텍사스의 견고한 붉은 장벽(Red Wall)을 넘기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바닥 민심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트럼프의 호소도 먹히지 않았다
이번 패배가 트럼프에게 더욱 뼈아픈 대목은, 그가 직접 나서서 선거판을 흔들려 했음에도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투표 당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장문의 글을 올리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그는 게시글을 통해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텍사스 제9선거구 유권자 여러분, 나가서 경이로운 후보 리 웜스갠스에게 투표하십시오”라고 독려하며 그녀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의 엄청난 지지자”라고 치켜세웠다. 또한 “저의 아주 좋은 친구인 댄 패트릭 텍사스 부주지사는 텍사스를 붉게(공화당 우세) 유지하기 위해 그녀를 필요로 한다”며 “웜스갠스는 저의 ‘완전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직접 ‘MAGA 전사’라 칭하고 ‘절친’인 부주지사까지 거론하며 보수층의 위기감을 자극했지만, 텍사스 교외 지역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호소 대신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대통령의 공개적인 지지 선언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전연패의 늪…“이제는 텃밭도 내준다”
이번 텍사스 패배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선거 연패 도미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말 공화당의 패배가 뉴욕시장 선거와 같은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발생했을 때는 “예상된 험지에서의 패배”라는 방어가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공화당의 텃밭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지난 12월 치러진 트럼프의 안방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도 28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며 공화당의 아성을 무너뜨린 바 있다. 플로리다의 공화당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긴 데 이어, 이번 텍사스 선거에서는 ‘트럼프 17%포인트 우세’ 지역이 ‘민주당 14%포인트 우세’ 승리로 뒤집히며 무려 31%포인트에 달하는 민심 대변동(Swing)이 일어났다.
정치 전문 매체들은 이번 선거를 두고 “유권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특히 교육 및 문화 전쟁(Culture War) 이슈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공화당 후보였던 웜스갠스가 극우 성향의 통신사 임원 출신으로 강경한 기독교 보수주의를 앞세웠던 점이 중도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이나 후보 개인의 자질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31%포인트라는 기록적인 민심 이반의 폭이 너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번 패배를 출범 1년을 맞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혹한 심판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물가와 주거비 상승 등 서민들을 옥죄는 경제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민생 해결보다는 정적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나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문화 전쟁에만 행정력을 소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투표 독려 메시지를 세 차례나 내보내며 자신이 미는 충성파 후보에 힘을 실었음에도, 텍사스 유권자들이 트럼프가 미는 후보를 거부한 것은 트럼프 1인 지배 체제로 굳어진 현 공화당과 백악관의 독선적 국정 운영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사표시로 풀이된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즉각 성명을 내고 “트럼프가 17%포인트 차로 이겼던 지역에서도 공화당이 졌다면, 미국 전역에 안전한 공화당 의석은 없다”며 기세를 올렸다. 반면, 텍사스라는 가장 확실한 안방마저 뚫린 공화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패배한 웜스갠스 후보는 “이번 패배는 공화당에 대한 경고 신호(wakeup call)”라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취임 1년 만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던 붉은 물결이 공화당 텃밭에서부터 퇴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올 11월 중간선거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 “텍사스 선거 패배, 나와 상관 없는 일”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1일 이번 선거 패배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날 취재진이 텍사스 선거 패배 관련 질문을 하자 “그 얘기는 못 들었다. 누가 어디에서 출마했느냐”라며 “나는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건 텍사스 지역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17%포인트 차로 이겼던 곳에서 이 사람은 졌다는 건가”라며 “그런 일들은 일어날 수 있다. (올해 중간선거로) 영향이 옮겨갈지 아닌지는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같은 날 치러진 텍사스주 연방하원 제18선거구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의 크리스천 메네피(Christian Menefee) 후보가 당선되며 민주당에 승전보를 더했다. 고(故) 실베스터 터너 전 의원의 별세로 공석이었던 이 자리를 메네피가 채우게 되면서, 공화당의 연방하원 다수당 지위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현재 하원 의석수는 공화당 218석 대 민주당 213석인데, 메네피의 합류로 양당 격차는 단 4석으로 좁혀지게 됐다. 메네피 당선인은 선거 기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을 공약으로 내거는 등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향후 하원 내 여야 갈등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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