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합격자 현수막은 내립시다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6. 2. 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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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치관조사가 보여주는 한국 엘리트의 청렴도는 늘 낮다. 뉴스 속 정치 엘리트의 공천 비리, 불법 부동산 거래, 성폭력 등은 이를 방증한다. 부패의 중심인물 대부분이 ‘명문대’ 출신임에도, 한국 사회는 ‘좋은 학벌’과 고시 합격으로 ‘엘리트 코스’에 오른 그들을 선망하고 떠받든다.

‘교육의 시장화’는 정부 주도의 공교육 역할이 사교육 시장으로 넘어간 현실이나, 교육 주체인 학생과 부모가 소비자처럼 학교와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로 추락시킨 현상 등을 일컫는다. 대학의 시장화는 양상이 조금 다른데, 취업에 유리하다 싶은 지식만을 유용한 지식으로 취급해, 각 대학은 물론 전공학과도 상품처럼 등급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비판적 성찰성이 업무능력과는 무관하다 여겨지는지, 인문계 전공생이 (취업 못해 죄송하다는 의미의) ‘문송합니다’로 불린 지는 꽤 오래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경영학 관련 이중전공·복수전공은 드물지 않다.

그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졸업 후 법학전문대학원의 문을 두드리는데, 입학 자격요건인 법학 적성평가시험(LEET)이 인문계 학생들의 ‘졸업시험’이라 불리게 된 이유다. 이공계의 취업 상황은 조금 나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최근의 의대 쏠림 현상에서 보듯, n수를 불사하며 의대로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렇듯 졸업 후 경제활동을 보장한다 여겨지는 경영대, 법전원, 의대의 높아진 위상은 대학 시장화의 상징이다. 이것은 성찰과 비판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인문사회과학의 입지가 축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학 시장화가 체감되는 일상적 경험으로는 대학에서도 학원처럼 자신이 ‘좋은 상품’임을 과시하듯 ‘각종 고시’ 합격자 현수막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학원 건물에 나부끼는 이른바 ‘명문고’나 ‘일류대’ 합격자 현수막은 중고생 자녀에게 어느 학원에서 무슨 과목을 수강시킬지 결정할 주요 정보로 작용한다. 수익이 우선이므로 학원이 합격자를 선전할 때, 함께 수강했을 불합격자를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들을 아예 잊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기왕 시장화되었으니 학교도 마찬가지여야 할까.

이즈음 우리 동네 고등학교에는 ‘명문대’ 합격자 현수막이 걸린다. 언급했듯 대학에도 각종 고시 합격자 현수막이 있다. 고시 응시자 대다수는 불합격자로, 극소수의 합격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 아래에서 ‘패배자’가 아님에도, 고개 떨구며 수업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대학이 학원과는 다른 공간이라면 합격자와 마찬가지로 성실하고 치열했을, 그러나 겨우 몇점 차이로 지옥 같은 세계로 갇힐 이들을 그곳에서 빼내 다독여야 한다. 직접 할 수 없으니, 교수들이 우선 현수막이라도 떼자고 결정해도 몇몇 합격자의 요구로 다시 걸리기도 한다. 힘든 고시생의 시간은 합격으로 충분히 보상됐을 텐데도 그것으로 족하지 않다는 듯, 합격자 현수막으로 ‘엘리트’가 된 자신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대입이든 고시든 합격의 순간에 환호와 함께,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 친구들을 떠올리면 좋겠다. 최소한 이런 성찰의 경험도 없으면 엘리트의 처참한 청렴도 수준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장래의 엘리트’ 현수막이 학교에서만큼은 내려오는 것이 어떨지.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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