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예술’ 한평생, 제자와 함께 한 올 한 올 명맥 잇기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17세 때 뜨개질부터 시작 평생 전통매듭 한 길
명맥 잇겠다는 일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몸 아프지만 전수관 지키며 교육생에 기술 교육
“손 매듭짓기 로보트는 천년만년 가도 못 해”
황지현 전수교육생 “잘 배워 매듭장까지 도전”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무형유산만 살펴보면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이런 문제의식이 처음은 아니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지금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기획을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형유산은 과거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소리, 의례가 유지된다는 건 그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는 뜻이다. 지역이 빠르게 변하고 공동체의 형태가 달라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 또 무엇을 새롭게 질문해야 할지 동시에 묻는 일이 필요하다.
새로 시작하는 기획은 단순히 지역 무형유산을 나열하려는 기록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매듭장은 명주실 올을 꼬아 합사(合絲)하고 염색해 끈목을 친 다음에 그것을 갖은 모양으로 맺거나 술을 다는 기능을 가진 장인이다."
경상남도 무형유산 '매듭장' 배순화(79) 보유자가 쓴 <매듭과 끈목>에 나오는 문장이다.
끈목은 여러 올의 실로 짠 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술은 가마·기(旗)·끈·띠·책상보·옷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을 이른다. '매듭짓다'란 순우리말을 통해 매듭장을 이해하면 좋겠다. 노·실·끈 따위를 잡아매어 마디를 만들 때나 어떤 일을 순서에 따라 마무리하는 걸 말한다. 대표적인 매듭 장신구인 한복 노리개를 떠올리는 일도 매듭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기사에서 당시 65세였던 배 보유자의 고민은 '누가 맥을 잇느냐'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수관 건립이 필요했다.
"매듭은 일주일에 몇 시간 이렇게 배워서는 안 된다. 밤에 잠 안 자고 있는 힘 다해서 10년 정도는 해야 뭐가 되지…. 젊은 사람이 상시 거주하면서 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사람도 어느 정도 생활이 되게 경제적 지원도 내가 해줘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으니 누가 배우려고 하나. 현재 명맥을 이을 사람이 없다."
풀지 못한 숙제 '명맥 잇기'
배 보유자의 이야기는 2020년 4월 9일 자 '얼쑤절쑤 경남 무형문화재-배순화 매듭장'으로 다시 한번 소개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꿈이었던 전수관 건립 소식을 전했다. 앞서 창원시가 2018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마산합포구 상남동 누림마을공동체 건물을 리모델링해 그해 11월 한자락매듭전수관이 개관한 터였다.
이때도 그가 술회한 인생사는 다음과 같다. 1946년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17살에 생계 때문에 편물(뜨개질)학원에 들어갔다. 손재주가 좋아 털실 가게를 차린 후 1978년 지금 마산부림시장에서 한자락매듭교습소를 차리고 전통 매듭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기사에서 전수관 개관 당시 기분을 물었더니 기쁘기는 하나 명맥 유지에 대한 걱정·고민은 여전했다.
"날아갈 것 같았지.(웃음) 작년 말에 여기(한자락매듭전수관)로 온 뒤 진이 빠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작업을 많이 했다. 인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놓았으니 수강생 오면 열심히 잘 가르쳐주는 일밖에 없다. 명맥을 이어야지."
거동 불편하지만 전수 교육 꾸준히
다시 시간이 흘러 지금 배 보유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3일 전수관을 찾았을 때 그는 거동이 불편했다. 꼬리뼈 통증으로 지난해 8월부터는 혼자서 걷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수업이 있을 때마다 전수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맥을 잇겠다는 일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선생은 전수교육생들과 인연을 맺고 풀고, 잇고 끊어왔지만 그 이상 단계로 매듭짓지는 못했다. 전수교육생은 3년 이상 교육을 받아야 이수심사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심사를 통과해 이수자로 올라서면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전승교육사로 올라간다. 전승교육사가 돼야 전수교육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로봇 아닌 사람이 해야 하는 일
희소식도 있다. 2023년부터 황지현(51) 전수교육생이 선생과 함께하고 있다. 선생이 3년간 서울을 오가며 박선경 선생에게서 사사했듯, 황 전수교육생도 선생의 뒤를 잇겠다며 매주 한 번 부산에서 선생을 찾아오고 있다. 그는 부산 소담공방 대표이자 수영구평생학습관에서 전통 공예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황 전수교육생을 비롯해 3명이 선생에게서 배우고 있다.
황 전수교육생은 대학에서 한국 복식을 전공했으며, 문화예술교육사와 규방공예·토탈공예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는 "주머니를 만들 때라든지 마지막은 항상 매듭이었다. 매듭이 있어야지 모든 게 정리가 됐다"며 "배우다 보니까 규방공예보다는 오히려 전통 매듭에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해서 선생님을 찾았다"고 말했다.


"저희 어머니 나이대니까 선생님이 엄마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정말 애증의 관계잖아요? 막 혼내시다가도 뒤에서는 '아, 이놈 잘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세요. 선생님께 모든 걸 다 전수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뒤에서 지켜주신다면 20~30년을 보고 매듭장까지 도전할 거예요."
이런 황 전수교육생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지 않냐고 묻자 배 보유자는 "좋을라고 64년을 이 일을 했다"며 웃는다. 그가 이토록 명맥을 이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로보트가 일을 다 한다고 하지만 매듭 이거는, 기계로 끈을 짜는 거는 할 수 있겠지만, 손으로 매듭짓고 하는 거는 로보트가 천년만년 가도 못하지. 끈 짜는 것도 사람이 손으로 짠 거 하고 기계로 짠 거 하고 다르다. 기법이라든지 혼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안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절대 똑같이 나올 수 없어."
/류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