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립공원 되는 효창공원…축구장 철거 안 하기로

장예지 기자 2026. 2. 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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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효창운동장 연결 방안 추진
효창운동장과 효창공원을 공중에서 촬영한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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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백범 김구 선생, 이봉창·윤봉길 의사 등의 묘역이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과 근처 효창운동장을 결합한 ‘국립효창독립공원’ 사업을 추진한다. 최대 걸림돌이었던 주변 개발·고도 제한은 없으며, 효창운동장 역시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기로 했다.

보훈부는 1일 “유네스코가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인 2026년을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효창공원을 국립화하여 역사적 의미를 복원하고, 많은 국민이 즐거운 마음으로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공원으로 재정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효창공원 국립공원 전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국립공원화 논의는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개발 규제에 대한 주민 우려와 축구장 철거 문제로 사업 추진과 무산이 반복됐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2018년 문재인 정부 제안으로 서울시가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기본계획도 발표(2020년)했지만 실패했고, 2022년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보훈부는 국립공원으로 바뀌더라도 각종 규제로 인한 주민 재산권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환경부가 지정하는 국립공원과 달리 보훈부 관리 국립공원은 개발·고도 제한 등의 규제가 없다. 현재 효창공원에 안장된 7명의 독립유공자 유해 외에 추가로 안장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특히 스포츠계가 반발하는 효창운동장은 철거하지 않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승만 정권 시절 효창공원 옆에 바짝 붙어 지어지며 애국선열을 기리는 공간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20m 높이 운동장 담장 때문에 효창공원과도 섬처럼 단절됐다. 그러나 60여년간 사용되며 ‘스포츠 유산’ 성격을 갖게 됐고, 운동장을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컸다. 이에 보훈부는 운동장의 개방성을 높여 공원과 연결해 운용하는 방안 등 스포츠계와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상 중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서울에 효창운동장을 대체할 부지가 마땅치 않고, 유소년 축구의 산실인 이곳이 스포츠 유산이 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보훈부는 “올해 운동장을 포함한 효창공원 전반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하고, 지역주민 등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수렴·반영해 사업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다만 국립공원화 추진에는 국민의힘이 단체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용산구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효창공원 전체 면적(5만1800평) 중 핵심 시설이 있는 부지 8028평은 서울시 소유이고, 관리는 용산구가 맡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구상하는 효창공원 관리 방안과 정부 계획이 다를 경우 논의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6·3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효창공원 국립공원화를 공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앙정부가 효창공원 관리 주체가 되려면 법 개정도 필요하다. 국립묘지법상 보훈부가 관리하는 국립묘지에 효창공원을 포함하도록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통해 효창공원 국립화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 등이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주요 시설물과 부적절한 시설물들. 한겨레 자료사진
효창공원은 어떤 곳?

조선 왕실묘에서 골프장, 유원지를 거쳐 독립투사 묘역으로.

서울 용산구 효창동 언덕 자락에 자리한 효창공원은 지난 240년간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쓰임을 달리하며 부침을 겪었다. 1786년 정조가 사랑했던 후궁 의빈 성씨와 그가 낳은 맏아들 문효세자가 안장돼 처음 왕실묘역으로 조성됐다. 1870년 고종 때 ‘묘’에서 ‘원’으로 격상돼 효창원이 됐다. 효창은 ‘효성스럽고 번성하다’란 의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효창원 숲을 깎아 1921년 경성 최초의 골프장을 만들었다. 일제는 1930년대 이곳 일대를 유원지로 본격 개발했고, 1940년 ‘효창공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효창공원이 독립운동가 묘역이 된 건 해방 이후 독립투사의 묏자리를 찾던 김구 선생의 뜻이었다. 1946년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삼의사 묘역과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 가묘가 조성됐다. 1948년엔 이동녕·차이석 지사 유해가 봉환되고, 조성환 선생을 안장해 임정요인 묘역도 만들어졌다. 이듬해 김구 선생이 서거하면서 그도 효창공원에 묻혔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60년, 정부는 아시안컵 축구대회 전용 경기장을 세우겠다며 묘역 바로 옆에 국제축구경기장을 세웠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적 경쟁자이자 정적이던 김구 선생 묘역을 훼손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따랐다. 독립운동가 역사 지우기란 비판에도 주요 축구경기를 치르며 한국 축구사의 일부가 되기도 했지만, 효창공원 애국선열 묘역은 관중 1만8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효창운동장에 여전히 가로막혀 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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