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기고] 우리도 이해찬처럼 생을 다 던질 수 있을까

이해찬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이해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은 인파는 길었다. 1층부터 3층까지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는 조문객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해찬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살아 있는 역사였다. 이해찬은 이 나라 민주주의가 성장 발전해온 증거 그 자체였다. “당신들의 총칼에 죽어간 이 영혼들을 위로하는 길은 이 땅을 민주화하는 길뿐이다. 나는 이 목숨을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나가겠다. 나는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 법정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때 말한 대로 민주화를 위해 한 생애를 다 바쳤다. 자기 말을 생애 전체로 증명해 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찬은 자기가 말한 대로 실천했다. 자기 생을 돌아보면서 이해찬은 자기의 인생은 두개의 꿈을 향한 여정이었다고 했다. “1987년 이전까지는 민주화였고, 그 이후부터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었다”고 했다. 그게 정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김대중 내란사건 법정서 최후진술
자기 말을 생애 전체로 증명해 보인
한국 현대 정치사의 살아 있는 역사
그는 지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김종인에 의해 공천 배제당한 뒤 탈당했다가 무소속으로 당선돼 당에 들어왔다. 그때 “사람들이 선거에서 왜 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낙선한 측근 의원을 난처하게 하고 좌중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이해찬은 실력으로 정치하는 정치인이었다. 입으로 정치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에 올라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정치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널려 있는 현실에서 그는 실력으로 정치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내놓았다. 막스 베버가 말한 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단련된 실력, 어려운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 현실을 내적으로 감당할 줄 아는 단련된 실력.” 이런 실력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막스 베버가 말한 ‘열정, 책임감, 균형’ 이 세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어려울 때는 쉬면 된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독립운동하다 변절 많이 한 시기가 1939년에서 1943년 사이다.” 그렇게 말했다.
서점도 운영했고 출판사도 했고, 책도 많이 읽고, 사회사상사를 공부하며 시(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강희경 교수와 공역하기도 했던 그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아라”고 말하는 실사구시의 정치인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며 민주주의는 한번의 선거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계속해서 지켜내고, 함께 밀고 가고, 실현해 가야 할 긴 여정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민주화’와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
자신의 삶은 두개의 꿈을 향한 여정
고문에 병든 몸 이끌고 마지막까지
생을 다 던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리고 마지막까지 온전치 못한 몸, 병든 몸을 이끌고 민주평통 부의장직을 수행하다 이국 베트남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리도 이해찬처럼 독재와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생을 다 던질 수 있을까. 민주 정부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과 책임윤리를 붙들고 있다 쓰러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이해찬 부의장의 죽음에 깊은 애도의 말씀을 올린다.
도종환/시인·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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