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머니의 미소

심억수 시인 2026. 2. 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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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어머니는 어느덧 망백(望百)이 되셨다. 어머니는 오랜 세월을 우리 가족 곁에서 묵묵히 힘이 되어주셨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나침판이 되어주신 분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치매라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극심한 혼란이나 폭력적인 행동 없이 기억을 잃어가신다. 많은 것들을 알아채지 못하시고 그저 방긋 미소로 답하시는 착한 치매다.

어머니께 무언가를 여쭤보면 어머니는 "몰라"하며 방긋 웃으신다. "몰라"라는 말이 점점 입버릇처럼 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치매 증상은 조금씩 심해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생겼다. 며느리에게는 "처음 보는 아주머니"라며 낯선 표정을 지으셨다. 심지어 나에게조차도 "네가 첫째야! 나는 몰라" 하시면서 방긋 웃으신다. 그 웃음 속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담겨 있다.

지난 주일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했다. 어머니는 매일 주간보호센터의 돌봄으로 지내시고 마지막 일요일은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하며 잠시라도 일상의 무게를 잊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었다.

한참 식사 중인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왜 여기 와서 밥을 먹느냐" 하신다. 어머님의 말씀에 깜짝 놀란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뒤덮인다. 맏이인 내가 "어머니 이분들은 아저씨가 아니고 어머니 아들인 둘째, 셋째, 막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멀뚱멀뚱한 눈빛으로 우리를 한참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허리를 구십도 굽혀 인사하고는 천연덕스레 방긋 웃으신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치매라는 병마 앞에 무력해진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우리 아들들의 속마음 또한 복잡하다. 슬픔과 안쓰러움이 교차하여 속울음을 삼켰다. 가끔 어머니가 보내는 그런 행동들이 어머니의 기억을 하나둘씩 잃어가는 아픔으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어머니가 치매로 인한 기억의 단절은 우리 아들들에게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큰 상처로 남는다. 그러나 어머니가 우리에게 보내는 짧은 순간의 인사와 미소는 우리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원동력이다. 어머니가 잃어버린 기억보다는 남겨진 어머니의 사랑과 온기를 더 크게 바라보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어머니가 전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본다. 삶이란 기억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과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없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다.

어머니의 기억에서 우리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도 그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견뎌내고자 굳게 마음을 다잡는다. 어머니의 착한 치매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어머니의 미소는 어쩌면 혼란스러운 기억 사이에 남아있는 따뜻한 사랑의 흔적일 것이다. 어머니의 미소 속에는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든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치매라는 병마 속에서도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익숙해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도 어머니의 손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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