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㉑ 추격자-나홍진 월드의 시작,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 장르의 성취

뜨거운 열기가 가신 여름 저녁의 거리,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이 켜지면 도시는 비로소 활기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 차와 사람들이 뒤엉키고 건물의 불빛들이 합해져서 점묘화처럼 도시 전체가 불투명한 하나의 풍경이 될 때, 끈끈하게 달라붙는 열기처럼 도시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의 정동들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그곳에는 전직 경찰이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옷을 벗고 현재는 포주로 살아가고 있는 엄중호 같은 인물도 있고,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도 생계를 위해 매음 행위에 나서는 미진 같은 인물도 있다. 그리고 성매매를 미끼로 여성들을 유인한 후, 정과 망치를 이용해 살해해서 마당에 묻는 지영민 같은 인물도 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표백된 도시의 외경 어느 깊은 곳에 숨겨진 추악한 범죄와 희생자들, 그리고 의도가 없는 절대악의 존재에 대해 상기시키며 관객들의 두려움을 조성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추격자>(2008)가 개봉될 당시 한국 영화에서 스릴러 장르는 <공공의 적>(2002)이나 <살인의 추억>처럼 형사가 중심이 되어 범인을 쫓는 미스터리 수사물이거나 <달콤한 인생>(2005)이나 <비열한 거리>(2006)처럼 누아르가 메인인 상태에서 보조적으로 스릴러가 혼합된 형태였다. 이전에 가장 잘 만들어진 스릴러로 평가받는 <살인의 추억>의 경우에도 범인이 누구인지를 쫓는 추적의 배면에는 198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와 정치적 억압이 영화의 복심으로 깔려 있다. 요컨대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담하게 영화를 장악하고, 서사와 캐릭터 구축, 장면 연출과 구성에서 상당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을 만들어냈다. 또 범죄 스릴러의 장르 컨벤션의 핵심인 심리 게임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창의성과 작품 끝까지 그것을 유지하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특히 작품 결말에 가서야 진상이 확인되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작품 초반부에 범인이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고도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새롭게 돌파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히치콕의 논의처럼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차이를 서프라이즈(Surprise)와 서스펜스(Suspense)의 차이로 볼 때 범인이 누구인지를 미리 밝혀 범인 정체 공개의 놀라움을 포기하는 대신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릴러 본령의 성격에 충실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진이 작품 초반부에 감금된 곳에서 탈출에 실패하는 씬, 골목의 차 사고로 중호와 영민이 부딪히는 씬, 경찰서에서 지영민이 말장난처럼 자신의 살해 사실을 고백하는 씬, 결말부에서 슈퍼집 아주머니가 지영민에게 탈출한 미진이 있다는 것을 발설해 버린 씬 등 ‘쫓는 것’을 포기하고도 범죄 스릴러 장르가 리얼리티와 서스펜스를 성공적으로 유지해 낼 수 있음을 훌륭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물 구성에 있어서의 이채로움에도 크게 힘입은 것이다. 이전의 범죄스릴러의 해결사들은 절대악에 대응하는 선한 영웅으로 선과 도덕적 심판의 대리자로서 다소 평면적으로 기능한다. 악을 쫓고 응징하려는 인물이 경찰이거나 남성적 권력의 순수한 행위자로서 자신의 존재 윤리에 입각해 추적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엄중호는 부패한 경찰로서 윤리적 지위를 잃은 데서 나아가 지하 경제의 불법적인 어두운 면에 기생하며 산다. 더구나 몸이 아픈 미진을 지영민에게 강압적으로 내몬 것도 그였다는 점에서 도덕적 결함을 지닌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즉, 연쇄살인범인 지영민이 갱생이 불가한 정신적 결함을 가진 절대악이라면, 그를 쫓아 미진을 구해내고 응징해야 하는 중호 역시 차악 정도의 위계에 위치하는 반영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미진의 딸 은지가 중호에게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도 기실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희생자인 미진마저도 불법적인 일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부정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뛰어난 부분은 어느 한 인물도 평면적으로 선/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슈퍼 아주머니의 선한 의도가 결국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고,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던 미진은 끝내 가장 잔인하게 죽음을 맞으며 그 시체마저 어항 속에 전시된다. 어느 인물도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으며 끝내 완전한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아 관객들의 기대를 일정 부분 배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도저한 부정성과 절망감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이는 나홍진 월드 특유의 비관주의적 세계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홍진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해 개봉한 작품은 20여 년간 <황해>(2010), <곡성>(2016) 등 총 세 편에 불과해 과작의 감독이라 할 수 있는데, 이후에 이어지는 위의 두 작품에도 이러한 부정적인 세계 인식은 지속된다. 나홍진 월드에서는 제도적 공권력은 무기력하고,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 경찰의 무기력함은 전직 경찰이 포주가 된 것만큼이나 도착적인 상황으로 드러나는데, 무능하고 부족한 수사력으로 일을 그르치면서도 성과주의에 목매는 안일함으로 묘사된다. 이는 허울 좋은 한국 사회의 이면에 오염이나 얼룩처럼 존재하는 사람들, 우연히(!) 불가항력적인 불행에 덜미를 잡혀 설명되지 않고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절망에 빠진 사람들과 상황들을 냉담하게 관조한다. 비탄에 빠진 개인은 결국 이를 사적 처분과 복수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곡성>의 종구 역시 경찰이면서도 결국 스스로 딸을 구해내지 못한다.)
이 어둡고 축축한 나홍진의 세계는 어둡고 좁은 골목에서 쫓고 쫓기는 인물들의 땀방울, 지열이 이글이글 올라오는 아스팔트 한가운데서 갈피를 잡지 못해서 절망한 중호의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죽어간 희생자들에게 튀는 핏방울에서 그 부정성을 점점 배가시키며 관객들의 숨을 조른다. 잦은 컷의 분절과 세밀한 편집점도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중요한 지점이다. 엄중호로서는 자신의 소유(“어디로 빼돌렸어?”)에 대한 이해관계 및 미진으로 인해 촉발된 사적인 복수심에서 시작된 추격의 과정이었으며 정의롭지 않은 방식을 동원하는 등 다소 한계를 노정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악인을 처단함으로써 영웅으로서의 의의를 획득하며 대중 서사로서의 기대에 어느 정도는 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스릴러의 장르적 완성도를 높여 그 쾌감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이나 ‘망치’같이 무자비한 도구(혹은 <황해>의 족발뼈처럼)의 폭력적 사용과 살해당하고 훼손된 여성 육체가 충격 효과로서 대비되어 제시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어물이나 슬래셔 장르의 선정성을 일부 차용해서 목도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이후의 범죄 스릴러 영화가 더욱더 강한 자극을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추격자' 이야기
하나,
지영민이 ‘정’과 ‘망치’를 주요 살해 도구로 쓴 것은 출소한 이후 망원동의 한 교회에서 십자고상을 만들었던 이력과 관련이 있었다.
둘,
이 작품은 신인 감독의 첫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외의 수상 실적이 매우 뛰어난데, 신인감독상,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외에도 두 주연 배우가 모두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셋,
하정우와 김윤석은 총 세 번 같은 작품에 출연했는데(<추격자>(2008), <황해>(2010), <1987>(2017)) 서로 쫓거나 강렬한 대립 구도를 일으키는 역으로만 매번 만났다.
넷,
미진의 딸인 은지역으로 등장한 아역 배우 시절의 김유정을 볼 수 있는데 이후 김윤석과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에서, 하정우와는 영화 <골든 슬럼버>(2018)에서 같이 출연했다.
글 : 영화평론가 이수향
https://news.kbs.co.kr/special/films2025/main.htm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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