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마두로도 비트코인 대신 쓴다…불법 거래 대세 된 스테이블코인

북한의 무기 수출입 조직인 ‘221 총국’은 내전 중인 수단의 한 구매자에게 최근 1000만달러(약 145억원)를 받고 휴대용 대공 방어 체계를 팔았다. 구매자는 대금을 세계 최대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로 송금했다.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1달러’처럼, 코인의 가치가 달러 등 법정화폐에 안정적으로 연동되도록 설계한 가상화폐를 뜻한다. 지난해 북한의 또 다른 판매책은 군사용 통신위성 장비를 라오스에 있는 구매자에게 팔고 일부 자금을 테더로 받았다.
지난달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설명회가 열린 유엔 ‘다국적 제재 모니터링팀(Multilateral Sanctions Monitoring Team·MSMT)’의 북한 사이버 범죄 보고서에 공개된 북한의 스테이블코인 활용 사례 중 일부다. 유엔 제재에 따라 북한과 무기를 사고파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유엔 보고서는 “북한의 불법 거래에 스테이블코인이 쓰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금융 회사 서비스보다 빠르고 저렴하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스테이블코인이 돈세탁, 탈세, 불법 거래 등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와 달리 법정 화폐에 가치가 고정돼 있고 ‘돈 가방’ 주고받기가 필요한 현금보다 송금이 용이해 금융 거래가 막힌 ‘악당’들의 활용 빈도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코인 범죄 84%, 스테이블코인 활용
가상화폐 분석 회사인 ‘체이널리시스’가 최근 공개한 ‘2026 가상화폐 범죄 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돈세탁, 불법 거래 등 ‘지하 경제’의 거래 수단이 비트코인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추적 결과 지난해 가상화폐를 통한 불법 활동 중 84%에 해당하는 약 1540억달러(약 220조원) 규모의 범죄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이뤄졌다. 전년엔 이 비율이 63%, 2020년엔 15%에 불과했는데 수년 사이에 규모가 급증했다. 2020년엔 불법 코인 거래의 70%가 비트코인이었지만 5년 사이 스테이블코인이 지하 경제의 ‘대세 코인’으로 굳어졌다.

러시아·북한·이란 등에 대한 미국의 금융 제재가 점점 강화되면서 제재 회피를 위한 국가 차원의 암(暗)거래가 늘어난 점도 스테이블코인 불법 거래를 늘어나게 한 원인이다. 최공필 디지털금융센터 대표는 “범죄자나 북한 같은 제재 대상국은 가격이 급등락하는 비트코인에 비해 가치가 달러에 연동됐으면서도 개인 정보 추적이 어려운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원화 코인 도입 전, 범죄 방지책부터”
북한뿐 아니라 미국이 금융 제재를 가한 다른 국가들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불법 거래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9월 이스라엘 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가상 화폐 불법 거래를 적발해 공개했는데 테더 약 15억달러가 사용됐다. 가상화폐 분석 기업 일립틱에 따르면 제재로 금융 거래가 막힌 러시아는 지난해 출시한 루블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A7A5 최소 173억달러어치를 비제도권 거래소에서 테더로 바꾼 다음 이를 중국·인도 등과의 무역 결제 대금으로 썼다.

지난달 미 정부에 의해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테더를 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 정부 조사 결과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회사는 마약 밀매,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가해진 금융 제재로 글로벌 송금망 사용을 못 하게 된 후 석유 수출 대금의 약 80%를 테더로 받았다. 지난달 23일 미국 버지니아 동부지검은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스페인 국적 남성을 테더 10억달러 이상을 돈세탁한 혐의로 기소했는데 이 또한 마두로 정권과 연루된 범죄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적극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법제화 과정에서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돈세탁이나 불법 자금 송금 문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문제”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유통을 자금 추적이 비교적 용이한 허가형 블록체인 등으로 제한하는 식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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