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제주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50년을 지었다... 그렇게 쌓인 시간, 우리는 그것을 제주체라 부른다

제주방송 김지훈 2026. 2. 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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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았습니다.

제주체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반복된 선택이 남긴 누적입니다.

2014년 출간된 '제주체'와 구술 아카이브,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 지속된 판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의 형식, 그것이 제주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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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윤의 건축은 왜 개념이 아니라 증언으로 남는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어왔습니다.

이론과 개념이 앞서기 쉬운 시대에도, 늘 먼저 땅의 결을 읽었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떻게 놓일 것인가를 고민해 왔습니다.

선택이 쌓인 시간이 어느덧 반세기를 넘겼습니다.
그 축적을 하나의 장면으로 불러내는 전시가 열립니다.

2월, 제주에서 시작되는 ‘제주체-김석윤(金石崙) 건축전’입니다.

전시는 한 건축가의 이력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어떤 질문을 붙들고 50년을 통과해 왔는지, 그 질문이 어떻게 공간으로 남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굳이 ‘제주다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말을 감당해 온 선택의 무게를 내놓습니다.
설명은 뒤로 물리고, 공간과 시간이 스스로 증언하게 합니다.

건축 드로잉 위로 사선으로 배치된 전시 일정. 건축을 결과가 아닌 시간의 누적으로 읽게 하는 전시의 기조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제주건축가회 공식 SNS)


■ 제주체, 양식이 아니라 축적된 판단의 형식

‘제주체(濟州體)’라는 말은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활에 가까운 언어입니다.

예술에서 ‘체(體)’는 외형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반복된 판단이 몸에 남긴 흔적을 뜻합니다.

전시는 김석윤의 작업을 따라가며 제주 건축이 무엇을 선택해 왔는지를 묻지 않고 보여줍니다.

김석윤은 오래전부터 “건축은 땅의 논리에 따른다”고 말해 왔습니다.

이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었습니다.

건물이 대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열려야 하는지를 먼저 읽고, 그 판단 위에서 구조와 형태를 쌓아 올려 왔습니다.

제주체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반복된 선택이 남긴 누적입니다.

전시 큐레이팅을 맡은 김지희 건축가는 “이 전시는 김석윤의 건축을 하나의 양식이나 개념으로 묶기보다, 어떤 판단들이 반복돼 왔는지를 따라가도록 구성했다”며 “제주체는 새로 정의된 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동선 구조도. 전시는 2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이어지며, 걷는 순서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된다. (제주건축가회 공식 SNS)


■ 공공성, 눈에 띄지 않게 작동하는 공간


김석윤의 공공건축은 과시적이지 않습니다. 상징을 앞세우지 않고, 위계를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머무는 구조를 택합니다.
공간은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고, 사용을 통해 의미를 얻습니다.

그래서 전시는 공공성을 메시지가 아니라 사용의 누적으로 읽게 합니다.
공공건축이 기념비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작동할 때, 그 공간은 오래 남습니다.

김석윤의 건축이 지금도 제주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공공성이 여전히 현재형임을 보여줍니다.

■ 미술관 안에서 건축을 다시 읽는다는 것

지역 공공미술관이 지역 건축가의 건축전을 기획하는 일은 드뭅니다.

더 나아가 그 장소가 건축가 자신의 대표작이라는 점은 이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완성된 건축 안에서 건축을 전시하는 이중 구조는, 공간이 스스로를 설명하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건축을 조형 예술로 전시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시간과 사용, 기억이 축적된 결과로서의 건축을 미술관이라는 맥락 안에서 다시 읽어내는 기획입니다.

때문에 전시는 해설보다 체험에 가깝고, 정보보다 감각에 먼저 닿습니다.

김석윤의 대표작인 제주현대미술관 전경. 완성된 건축 안에서 건축을 다시 읽는 전시가 열린다. (제주건축가회 공식 SNS)

■ 지역성, 형식이 아니라 삶의 조건으로

1970년대 이후 제주는 급격한 관광 개발과 함께 ‘제주다움’을 끊임없이 요구받아 왔습니다.
많은 건축이 이를 외형으로 재현하려 했던 시기, 김석윤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지역성을 드러내기보다, 지역의 생활 조건에 순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2014년 출간된 ‘제주체’와 구술 아카이브,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 지속된 판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기술이나 제도로만 다루는 흐름과 달리, 이 작업은 삶의 방식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제주의 기후와 생태, 생활 리듬에 맞춰진 건축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되고 있었습니다.

■ 주거, 완성보다 시간이 만드는 공간

전시에 소개되는 주택들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래 사용되며 변형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주택 도면과 사진, 그리고 건축주 인터뷰는 주거가 설계의 결과물이 아니라, 삶과 기억이 축적되는 과정임을 드러냅니다.

집은 지어지는 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또렷해집니다.

김석윤의 주거 건축은 그 시간을 견디는 구조를 전제로 설계돼 왔습니다.

건축 공간에서 무용과 영상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2026 제주체–김석윤 건축전’의 일부 프로그램으로, 건축을 ‘몸의 움직임’으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담겼다. (김지희 건축가 SNS 캡처)


■ 사진과 몸, 건축을 현재로 불러오는 방식


한국건축사진가회 소속 14인의 사진은 기록을 넘어 ‘재현재화(re-presencing)’의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마모된 바닥과 달라진 동선, 사용의 흔적은 건축이 이미 완결된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공간임을 드러냅니다.

사진은 과거의 형태를 고정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 속으로 건축을 다시 불러옵니다.

여기에 무용과 영상이 더해지며, 건축은 시각적 대상에 머물지 않고 몸으로 인식되는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전시 중간에 상영되는 영상 작업은 움직임을 통해 공간의 성격을 드러내며, 건축이 어떻게 감각으로 경험되는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킵니다.

■ 하나의 건축, 여러 개의 읽기


30인의 건축가들이 재료와 지붕, 지형, 은유와 상징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김석윤의 공공건축을 다시 읽습니다.

이는 찬사가 아니라 동시대의 응답입니다.
동일한 건축이 서로 다른 접속과 해석을 허용한다는 사실은, 그 작업이 특정한 시대나 의미에 고정되지 않았음을 확인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전시 공간 일부. 기록과 경험, 과거와 현재가 겹치며 건축은 하나의 진행 중인 문장으로 남는다. (제주건축가회 공식 SNS)


■ 끝나지 않는 문장

전시는 프롤로그 ‘제주체’를 시작으로, 건축 감각의 바탕과 시대적 만남, 사유에서 공간으로의 실천, 다시 장면들로 축적되는 언어, 그리고 ‘오래된 미래’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장면으로 구성됩니다.

관람은 빠르게 끝나지 않습니다.
머무를수록 더 많은 층위가 드러납니다.

기록의 장에서 관람객은 각자의 제주체를 남기며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이 자리에서, 제주의 건축은 여전히 진행 중인 문장으로 남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남는 것들.
그렇게 쌓인 시간의 형식, 그것이 제주체입니다.

전시는 2월 6일부터 3월 29일까지 제주현대미술관 제1·제2기획전시실에서 이어집니다.

오프닝은 2월 9일 오후 2시 세미나, 이어 오후 3시 개막식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건축가회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합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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