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화재 참사, 어쩔 수 없는 사고 아니었다 [평범한 이웃, 유럽]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2026. 2. 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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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휴양지에서 대형 화재 참사가 벌어졌다. 가연성 방음재, 불충분한 비상구 등 여러 요인이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안전한 나라’라는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도 함께 타격을 입었다.

크랑몬타나는 스위스 남서부의 칸톤(주) 발레에 속한 작은 도시다. 면적 약 60㎢에 인구는 1만명 남짓해 한국으로 치면 서울 서초구만 한 땅에 울릉도 인구가 모여 사는 셈이지만, 최고의 인프라를 갖춘 이 알프스 휴양지를 매년 30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배우 로저 무어가 2017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고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가 자주 방문하기도 했던 이곳을 재난의 배경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25년 12월31일에서 2026년 1월1일로 넘어가는 밤, 새해맞이 파티가 벌어지던 주점 ‘르콩스텔라시옹’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40명이 사망했고 116명에 이르는 부상자 상당수는 위독한 상태다. 사망자 중 절반은 미성년자였다.

당국은 폭죽이 화재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푀 드 벵갈(feux de Bengale)’이라고 불리는, 동네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흔한 폭죽을 샴페인 병에 넣어 불을 붙였고, 높이 쳐든 병에서 나온 불꽃이 술집 천장의 가연성 방음 소재에 튀었다. 사고 당시 촬영된 화면에 따르면 불은 시작된 지 3~4분 만에 지하공간 전체로 번졌다. 화재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플래시오버(Flashover)’라고 진단했다. 한국어로 ‘섬락(閃絡)’이라고 부르는 플래시오버는 밀폐된 곳에서 모든 가연성 물질이 거의 동시에 발화점에 도달해 국지적 화재가 순식간에 공간 전체로 번지는 현상을 뜻한다.

술을 마시며 춤을 출 수 있는 지하공간에 있던 수백 명이 화재 직후 탈출을 시도했지만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폭이 좁아 병목현상이 생겼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1월5일 “위로 올라가는 계단 폭이 의자 두 개 너비밖에 되지 않았다”라는 현장 목격자의 증언을 인용했다. 안전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술집의 1층과 지하 1층의 수용 인원이 각각 최대 100명으로 적시돼 있었지만, 당시 건물 안에는 약 400명이 밀집해 있었다. 발레 칸톤 조례상 최대 수용 인원이 200명인 업소는 90㎝ 폭 비상구 3개, 또는 90㎝ 폭 비상구 1개와 120㎝ 폭의 비상구 1개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 주점의 출입구는 지하에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1층의 주 출입구 하나뿐이었다. 다른 비상구가 있긴 했으나 잠겨 있었고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일간지 〈일지오르날레〉는 수사관들의 말을 인용해 지하 계단 아래쪽에서 사망자 40명 중 34명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1월11일 보도했다.

1월1일 크랑몬타나 화재 장소인 르콩스텔라시옹을 현지 경찰이 수색하고 있다. ⓒAFP PHOTO

르콩스텔라시옹 소유주는 프랑스 국적 부부인 자크 모레티(49)와 제시카 모레티(40)다. 이들은 10년 전인 2015년 이 건물을 매입해 개조했다. 당시 6개월에 걸친 리모델링 과정을 페이스북에 상세히 올리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개조”했다고 썼다. 문제의 천장 방음재 설치 과정도 포함돼 있었다. 현재 그 포스트는 삭제됐다. 1월9일 경찰은 과실치사, 과실치상, 과실방화 혐의로 모레티 부부를 소환했다. 하지만 책임은 이들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발레 칸톤에서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건물이 매년 화재 안전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주점은 2019년 이후 당국의 검사를 받은 바 없음이 드러났다.

크랑몬타나 화재는 저가의 가연성 방음재, 수용 기준을 초과한 인원, 불충분한 비상구, 안전 검사 부재 등 여러 요인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아니었다. 1월3일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처럼, 규정만 준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비극(Avoidable Tragedy)’이다. 반성과 책임이 따라야 하는데, 책임 주체 중 하나인 크랑몬타나시의 대응은 그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1월6일 기자회견에서 니콜라 페로 크랑몬타나 시장은 “우리 시가 누구보다도 큰 피해를 본 당사자”라고 발언해 여론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페로 시장의 발언은 크랑몬타나가 많게는 수억 스위스프랑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에 직면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의료와 재활은 물론 간병과 가사도우미 비용,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 등이 모두 배상 청구 대상이라 시의 파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가장 어린 사망자는 14세 여성 청소년

이번 화재가 특히 참담한 것은 사망자 절반이 미성년자라는 점 때문이다. 가장 나이가 어린 사망자는 14세 여성 청소년이었다. 스위스에서 법정 음주 연령은 맥주와 와인이 16세, 그보다 도수가 높은 술은 18세다. 주점 출입 연령 규정은 스위스 칸톤별로 다른데, 발레 칸톤의 경우 오후 10시 이후 16세 미만 청소년이 술집이나 카페에 들어가려면 성인 보호자를 동반해야 한다. 업소 관리자는 출입자의 나이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5만 스위스프랑(약 9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영업허가가 취소되거나 업소가 폐쇄될 수도 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절차는 종종 무시된다. 보호자 대신 나이 많은 친구와 동행하거나 위조 신분증을 제시하기도 한다. 규정을 무시한 대가는 컸다.

화상은 전문 치료센터로 얼마나 빨리 옮겨지는지가 관건이다. 스위스 전역에는 화상 전문병원이 세 곳 있다. 취리히 대학병원, 로잔 대학병원, 그리고 취리히 어린이병원이다. 평상시 이 세 병원에서 치료하는 중증 화상 환자는 연간 약 350명인데, 이번 사고에서 사망자를 제외한 부상자는 116명이다. 연간 환자 수의 약 30%에 해당하는 인원이 하룻밤에 몰린 셈이다.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힘이 되어준 것은 유럽연합 시민보호기구(UCPM, Union Civil Protection Mechanism)였다.

UCPM는 2001년 유럽연합(EU)이 설립한 민방위 기구로 재난이나 전쟁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활동을 한다. EU 회원국에 더해 노르웨이·튀르키예·우크라이나 등 10개국이 추가로 가입해 있고, 가입국이 아니라도 어느 나라든지 비상사태 발생 시 UCPM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비가입국인 스위스도 UCPM의 지원을 받았다. 화재 다음 날부터 환자 38명이 프랑스·벨기에·독일·이탈리아의 전문병원으로 이송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화상 전문가들이 스위스로 와서 의료진을 지원 중이다. 네덜란드에서는 9.3㎡에 달하는 피부를 기증해왔다. 사고 직후 스위스가 네덜란드 장기은행에 도움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스위스에서는 기증 장기 목록에 피부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피부 기증이 가능하다.

연대가 필요한 순간 기꺼이 손을 내밀지만, 사고를 막지 못한 스위스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가차없다. 사망자 40명 중에는 스위스인(21명) 말고도 프랑스인(9명), 이탈리아인(6명), 그리고 포르투갈인과 벨기에인·루마니아인·튀르키예인이 각 한 명씩 포함되어 있다. 자국민이 희생된 나라의 분노는 납득할 만하다. 가장 혹독한 비난은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잔 로렌초 코르나도 주스위스 이탈리아 대사는 “르콩스텔라시옹 같은 주점은 이탈리아에선 절대 영업허가를 받지 못했을 것(스위스 공영방송 RTS 인터뷰)”,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프랑스 뉴스 채널 BFMTV 인터뷰)”라고 격한 감정을 나타냈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1월6일 논평에서 “르콩스텔라시옹 참사는 문화적 패배(una disfatta culturale)”라며 “아무리 윤리적인 국가라 할지라도 경계를 늦추거나, 신뢰라는 수사(레토릭)에만 의존하거나, 개인의 책임을 집단적 위임으로 착각한다면 실패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비판은 스위스 내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동네 이웃의 새해 첫인사는 “어떻게 스위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Wie ist das möglich in der Schweiz)?”였다. 사고 이틀 뒤인 1월3일 스위스 공영방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기 파르믈랭 스위스 대통령은 “스위스에 ‘잘못된 안도감(un faux sentiment de sécurité)’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표현이다. 안전하고 깨끗하며 위기관리에 능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뼈아픈 깨달음이자 스스로에 대한 경고다. 파르믈랭 대통령은 “우리는 이러한 경험에서 배우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제로 리스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부상자 상당수가 위독한 현 단계에서, 조심스럽게 언급되는 또 다른 쟁점이 있다. 당시 현장에서의 스마트폰 촬영 행태다. 플래시오버로 분류되는 이 화재에서는 초기 3~4분이 탈출의 결정적 기회였고, 이후 치명적 상황으로 변했다. 그런데 탈출이나 구조 대신 화재 장면 촬영에 몰두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고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을 우선했을 수 있다. 청소년 전문 심리학자이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 필리프 자페는 “소셜 네트워크에 지나치게 몰두해 진짜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특정 젊은 세대의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술이나 축하 분위기에 휩싸여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재단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1월5일 스위스 공영방송 RTS 인터뷰).

1월2일 스위스 시민들이, 알프스 휴양지 크랑몬타나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 애도하고 있다. ⓒAFP PHOTO

안전한 나라는 ‘국뽕’이 만드는 게 아니다

수전 손태그는 2003년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현대사회는 전쟁·재난·질병 등의 참상을 사진이나 영화 등의 이미지로 쉽게 접하지만 이것이 스펙터클, 즉 일종의 오락물로 소비되며 감각을 둔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미지가 현실 인식을 왜곡하는 현상은 소셜미디어 시대에 훨씬 더 심각해졌다. 최소한의 편집 윤리조차 없는 영상의 악영향은 물론이고, 누구나 스스로 쉽게 영상을 찍으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 차이에서 비롯되는 최소한의 경계심이 사라졌다. 크랑몬타나에서 탈출구를 찾거나 구조를 돕는 대신 화재 장면을 촬영하던 이들은 그 순간 스스로에게 ‘피해자’나 ‘구조자’가 아닌 ‘기록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맨눈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보는 화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아니라 소비될 영상으로, 팔로어의 폭발적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로 느껴졌을 수 있다. 그곳에 존재했던 것은 화재 방벽이 아니라 ‘스크린 방벽’이라는 가짜 안전감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스위스 여러 매체는 “세계에 혼란이 닥쳤을 때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는 스위스”라는 제목의 기사를 자랑스럽게 내보냈다. 컨설팅 기업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위험 및 회복력 등급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였다(한국은 20위였다). 이후 두 달 만에 스위스의 평판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도마 위에 올랐다. 스위스만의 문제는 아닐 터이다. 안전한 나라는 ‘국뽕’이 만드는 게 아니다. 진부해 보이는 규정이 오늘도 지켜지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세가 만든다.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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