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복 입은 고인이라니, 이렇게 다른 호주의 장례 [.txt]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장의사를 떠올렸던 것이 나만의 편견인지 알아보려고 인터뷰 뒤에 챗지피티에 한국 장의사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더니 흰머리가 비치는 남자가 나타났다. 이 남자가 몇살쯤이냐고 되물었더니 50대 중반이라는 답변이 왔다.
나는 준비했던 질문을 제쳐놓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장의사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람이 왜 죽는지, 죽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책을 즐겨 읽었죠.”
이씨는 한국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휴학하고 장의사 면허를 땄다. 실습으로 장례식장에서 2주간 일하며 확신을 얻었다.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는 염습을 했는데 누군가의 마지막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지 느꼈어요.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죽음을 돕는 직업으로 뛰어들었다.

한국에서 장의사로 일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무렵, 이씨는 우연히(지금 돌이켜보면 필연적으로) ‘관짝 밈’을 보게 되었다. 아프리카 가나의 장례식 문화에서 비롯된 영상으로, 관을 든 상여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이씨는 지구 어딘가에 있을, 정반대의 장례 문화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호주(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직접 선택한 만큼 ‘다름’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호주에서 장의사로 일하며 당황하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지만, 호주에서는 유가족이 원하는 옷을 입히거든요. 보통 고인이 살아생전 많이 입었던 편한 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아요. 응원하던 축구팀 운동복부터 줄무늬 티셔츠, 슬리퍼까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옷이죠.”
관 속의 고인에게 인사하는 장례식을 떠올려보니, 낯선 정장이나 의복이 아닌 익숙한 모습으로 보내고 싶은 유가족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생전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고 편하게 누워 있는 고인에게 인사하고 싶을 테다.
장례식장의 조문객들 역시 편한 차림이 많다고 했다. 그의 장례식장이 바닷가 근처에 있어서인지 반바지에 맨발로 오는 이들도 흔하다고.
“장례식 조문을 맨발로 간다고요?”
놀라워하는 내게 그는 설명을 보탰다. 호주의 장례식은 엄숙한 의식이라기보다 고인을 기리는 파티에 가깝다는 것이다.
“호주의 장례식은 고인의 죽음을 축하해주는 자리예요. 고인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나누며 웃고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를 함께 불러요. 편하게 입고 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죠.”
나의 호주 친구 중에 지난해 어머니를 잃은 이가 있다. 그 친구는 장례식에서 많이 웃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는지 미처 몰랐다고. 어머니의 오래된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전하며 그의 얼굴에 잔잔한 행복이 번졌다. 장례식에서 틀었던, 어머니가 좋아했던 노래를 내게도 들려주었는데 노래가 밝아서 놀랐다. 과연 나도 엄마가 즐겨 듣던 트로트를 들으며 조문객들과 웃고 떠들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장례가 밝지만은 않다. 아이의 장례식에서는 대부분 눈물을 참지 못한다. 이씨 역시 눈물을 삼킨 장례식이 여럿 있었다.
“모든 사람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방식이 다르니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해요.”
그는 장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공감을 꼽았다.
“위로가 이 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잠시라도 그 사람 곁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해요. 물리적으로 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함께하고 힘이 되어주는 거죠. 업무 설명을 할 때도 유가족의 눈을 보면서 최대한 쉬운 말로, 천천히 말하려고 합니다. 힘든 시간을 잘 통과하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믿고 있어요.”
호주에 아무리 즐거운 장례가 많다고 해도 상시로 죽음을 다루고, 직업적으로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일이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죽음과 상실을 자주 접하다 보면 감정이 가라앉을 때가 있지 않냐고 물었다.
“슬픔은 전염성이 강한 것 같아요. 일이 끝나면 산책하고 운동하고 명상을 해요. 일과 삶을 구분하는 루틴이 있어야 장의사라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씨는 장의사라는 일이 너무 좋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오래 장의사로 일하고 싶다고.

‘장의사라는 일’
그제야 나는 이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며, 그것을 물어보러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일을 하세요?”가 뒤늦게 나왔다.
그는 호주의 장의사 업무가 한국과 다르다는 말부터 꺼냈다.
“한국은 염습부터 장례식을 준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례 절차 전부를 장의사 한명이 다 한다고 보면 돼요. 그러나 호주는 일이 세분화되어 있어요. 사무실에서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고 장의사와 유가족을 연결해 줘요. 장의사가 유가족을 직접 만나 전체적인 일정을 조율하는 동안 운송팀에서 고인 운송을 하고, 영안실 팀에서 고인을 씻기고 의상을 입히고 메이크업을 합니다.”
사무실과 영안실, 운송팀, 장의사까지 네개의 팀으로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보다 하는 일이 간결하다. 장례식 시간의 차이도 한몫한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부터 장례가 시작되어 사흘간 지속되는 한국과 달리 호주에서는 고인의 사망일로부터 일주일 내외로 날짜를 잡아서 두시간 내외의 짧은 장례를 치른다. 그 덕에 장의사는 출퇴근 시간을 지켜서 일할 수 있다. 이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다. 평일에 근무하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다.
“장례식은 보통 주말에 치르지 않나요?”
날짜를 임의로 정할 수 있고, 손님을 많이 초대하는 예식이니만큼 결혼식처럼 주말에 열 것으로 생각했던 터였다.
“주말에는 추가 금액이 붙어요. 평일의 1.5배죠. 그래서 보통 평일에 장례식을 치러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데, 곧 수긍이 갔다. 장례 역시 노동의 결과물이다. 장례를 준비하는 일꾼, 장의사들도 쉬어야 하니 주말에 일을 시킨다면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어쩌면 추가 금액 때문이 아니라 장의사의 노동인권을 배려해서 평일에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호주의 장례식은 부의금을 받지 않고, 결혼식처럼 떠들썩하게 많은 이들을 부르기보다 가까운 친인척들과 치르기에 평일을 선택할 수 있을 테지만.)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한 2주 휴가를 쓴다. 보통 겨울에 노인의 사망이 늘어나기에 여름에 휴가를 내고 다른 나라나 도시로 떠난다. 내가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도 멜버른에 휴가를 가 있었다고 했다.
“한국은 유가족이 중심이라면 호주는 유가족과 장의사가 함께 존중받는다고 느껴요.”
장례를 이루는 모든 조각의 삶을 온전히 인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에게 생전 즐겨 입었던 옷을 입히며 고인의 지난 삶을 존중하고, 조문객들이 편한 옷을 입고 와 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남겨진 사람들이 이어 나갈 삶을 존중하고, 분화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휴일과 휴가를 제때 가지며 장의사의 일하는 삶 역시 존중한다.
장례에는 얼마나 많은 이의 삶이 들어 있는가. 우리는 이 사실을 잊는다. 장례를 다루는 장의사 역시 삶을 영위하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 때문인지 그가 직업을 밝히면 상대는 보통 멈칫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장의사를 시체 만지는 일이라고 여겨서 꺼리죠. 사람들은 죽음을 무서워하니까요.”
그는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고 여러번 말했다.
“죽음은 정말 가까이 있어요.”
그는 인터뷰한 날로부터 2주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당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주의 12월은 여름이기에 다른 계절에 비해 죽음이 적고, 이씨의 회사 역시 자연스레 한가해진다. 그럴 때는 장의사 이씨가 운송팀의 일을 돕는다. 그날 이씨는 대기 근무(on call) 중이었고, 자택에서 숨진 노인을 운송하러 갔다.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죽음이 완연한 환자가 뿜어내는 어두운 기운이나 죽음이 깃든 으스스한 분위기 따위는 없었다. 도리어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잠옷 차림의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운송을 지켜보았다. 중년의 부인이 작은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었고, 식탁에는 먹다 남은 과자 봉투가 있었다. 고인은 84살, 보라색 꽃무늬 이불을 덮고 있었다. 온기 넘치는 일상에 고요히 자리한 죽음을 바라보며 이씨는 다시 한번 느꼈다고 했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에요.”
장의사가 되기 전에는 그 역시 죽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한 책을 그렇게 찾아보았으리라. 그러나 천명이 넘는 장례를 지켜보면서 죽음이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는 것.
“저는 죽음을 ‘갑작스러운 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미리 준비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어떻게 떠날지 고민하며 자신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죠. 어디에서 죽고 싶은지, 어떻게 죽고 싶은지, 어떤 장례를 치를지 등등이요.”
나는 그도 자기 죽음을 생각하는지 물었다.
“화장한 뒤 바다 안에 작은 조각상으로 남고 싶어요. 대학생 때 창업경진대회를 나갔을 때 발전시킨 아이디어인데요. 유골을 단단한 물질과 섞어서 조개껍질 모양으로 만드는 거예요. 죽어서 바닷속 조개가 되고 싶거든요.”
그는 불쑥 인공지능(AI) 장의사에 대한 말을 꺼냈다.
“로봇이 제 장례를 치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치러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에이아이 시대에도 장의사는 사람의 직업으로 남을 것 같아요.”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 장의사의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많은 사람에게 생소한 직업인 탓이다. 죽음을 터부로 기피하고 멀리하는 문화와 연관이 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둡고 무서운 사고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마땅히 축하한다면 이씨처럼 우리의 죽음을 온 마음으로 돕는 젊은 장의사가 늘지 않을까.
소설가 서수진
서수진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 ‘올리앤더’ ‘다정한 이웃’, 중편소설 ‘유진과 데이브’, 단편소설집 ‘골드러시’를 출간했다. 2020년 ‘한겨레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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