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남고, 계산대는 비었다… 요즘 팝업 리포트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먼센스] 주말마다 SNS에 쏟아지는 팝업 스토어 인증 사진. 형형색색의 공간, 굿즈를 들고 찍은 셀카, 전시를 연상케 하는 내부 풍경까지. 하지만 정작 계산대 앞에 섰다는 이야기는 드물다.
"재밌긴 한데, 살 건 없더라."
요즘 팝업 스토어를 다녀온 이들의 공통된 소감이다. 과거 팝업 스토어가 '한정 판매'와 '희소성'을 무기로 했다면 최근의 팝업은 분명히 달라졌다. 물건을 파는 곳이라기보다 브랜드를 체험하고 기억하는 공간에 가깝다. 왜 요즘 팝업 스토어가 이렇게까지 '체험'을 강조하게 됐을까?
물건은 온라인에서, 경험은 오프라인에서
소비 환경은 이미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됐다. 가격 비교, 후기 검색, 빠른 배송까지. 굳이 매장을 찾지 않아도 물건을 사는 데 불편함은 없다. 브랜드 입장에서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팝업 스토어 전문가 프로젝트 렌트 최원석 대표는 "팝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지지만 결국 브랜드는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는 노출의 시대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가 중요한 시대"라며 "많이 보이는 것보다 '멋지고 착한 브랜드'가 되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최근 팝업 스토어가 제품 진열 대신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 세계관을 구현한 공간 연출, 참여형 미션, 포토존, 간단한 클래스와 체험 프로그램까지. 소비자는 이곳에서 '구매자'라기보다 '참여자'가 된다.


투게더 팝업 스토어는 브랜드 세계관을 하나의 동선으로 체험하게 한 스토리텔링형 체험 팝업이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벽면 3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 영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환상적인 '투게더 세상'을 그려낸 이 영상은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프롤로그 역할을 한다. 영상이 끝나고 바닐라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투게더 세계관 속 참여자가 된다.
메인존에는 투게더 브랜드를 소재로 한 블록, 퍼즐 게임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부 프로그램은 협업이 필요해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함께 놀며 브랜드를 익히고, 투게더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매개체로 역할한다. 하나의 세계관과 놀이를 경험한 방문객에게 남는 것은 '무엇을 샀는지'보다 '어떤 세계를 다녀왔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방송작가 유병재가 직접 팝업 스토어 기획자로 나서며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은 '모리스&보리스 행운던전'은 기획 단계부터 구독자들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공간을 완성했다.
퀘스트형 체험 팝업 스토어로 방문객은 △행운 던전 거래소 △행운 빌런의 입 △멜로우 구출 룸 △행운의 네잎 클로버 밭 등 총 네 가지 퀘스트에 도전해 '운빨스톤'을 모은다. 팝업 전체가 하나의 게임 시나리오처럼 설계된 것.
특히 대형 네잎 클로버 밭은 가장 인상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빌런' 유병재에게서 멜로우를 구출한 참가자만 입장할 수 있는 이 공간에서는 실제 클로버 사이를 헤집으며 네잎 클로버를 찾고, 이를 활용해 나만의 행운 굿즈를 제작할 수 있다. 체험의 결과물이 곧 기념품이 되는 방식인 동시에 구매보다 참여를 유도하는 팝업 스토어였다.


러쉬코리아의 '팝업 씨어터: 무명배우의 욕실'은 성수동 일대를 무대로 삼아 브랜드 최초의 팝업 씨어터를 선보였다. 향기, 음악,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며 공간은 전시장이 아닌 하나의 서사적 경험 공간으로 변한다.
이야기는 99번째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신 한 무명 배우가 낡은 욕조와 고장 난 샤워기 앞에서 좌절을 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욕실은 몸을 씻는 장소를 넘어, 실패와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내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는 상징적인 무대로 재해석된다. 관객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게 된다.
참여형 거리극에서 러쉬의 비누와 배쓰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감정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대신 방문객에게는 감정이 남는다. '무명배우의 욕실'은 체험이 곧 메시지가 되고, 팝업 스토어가 문화 콘텐츠로 작동하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왜 우리는 '체험'에는 반응하고, '구매'에는 망설일까

체험형 팝업 스토어가는 구매 전환율이 낮다.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팝업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가격 경쟁력이 크지 않다. 한정 굿즈라는 이유로 가격대가 높거나, 온라인에서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체험 속에서 쌓은 몰입감 덕분에 굿즈는 보상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굿즈의 가격을 마주하는 순간 소비자는 계산을 시작한다. "이 굿즈가 지금 이 가격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체험의 여운은 빠르게 식는다.
다만 구매 전환은 집으로 돌아간 뒤로 이어진다. 체험형 팝업 스토어에서 소비자는 더 이상 '지금 사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즐겼고, 만족했으며, 사진과 기억까지 얻었다. 가격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단순히 비싸서가 아니라, 이미 체험으로 보상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체험 중심 공간에서 구매 동선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사진을 찍고, 전시를 보고,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지금 사야 할 이유'는 점점 흐릿해진다.
최 대표는 "온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물건이 팔리지만, 오프라인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 대비 판매 효율만 보면 절대 좋은 채널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팝업 스토어의 목적은 판매가 아닌 브랜드와의 릴레이션십 강화로 이동했다. 좋아해야 팔리는 거고, 궁금해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철들지마 레고들어 팝업 스토어'에서는 레고가 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성인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기획됐다. 공간 곳곳에는 '어른도 놀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으며 어른들은 직접 레고를 조립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놀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브랜드에 대한 거리감은 좁혀진다.
이와 같은 배경을 기반으로 레고코리아는 키덜트 대상 시리즈를 대폭 확대했다. 팝업 스토어에서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될 브랜드"라는 인식을 남긴 것. 판매가 아니라 관계를 남기는 전략이다.
그래서 요즘 팝업 스토어는 계산대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오프라인은 더 이상 물건을 설득하는 장소가 아니라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드는 장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소유'보다 '기억'을 중시하는 소비자들

팝업 스토어의 모습이 변한 또다른 이유는 소비자의 가치관 변화에 있다. 특히 30~40대 여성 소비자는 이미 충분히 많은 물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충동구매에 관대하지 않고, 새로운 소비에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다.
40대 소비자 김은비 씨는 팝업 스토어 소비를 '취미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는 "팝업 스토어는 지극히 취미의 영역이다. 생활 필수품은 지속적인 소비가 필요하지만, 취미는 그렇지 않다"라며 "생활용품은 되도록이면 계속, 많이 구매해 쟁여두는 반면, 취미 영역의 소비는 두 개 살 걸 고민하다가 하나로 줄이거나, 하나 살 것도 끝내 포기하며 지갑을 지키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더더욱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며 "팝업 스토어에서는 여러 브랜드와 제품을 직접 체험해보고, 그중 정말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른 뒤 온라인에서 더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 집중 구매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팝업 스토어는 체험을 통한 선별과 비교의 출발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왜 30~40대는 팝업 스토어를 선별하는 공간으로 인식했을까? 그들은 과거 '지름신'이나 '욜로(YOLO)'처럼 강력한 소비 트렌드를 직접 경험한 세대다. 이들은 물건을 추가로 소유하는 것이 더 이상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이지 않는다는 점을 체감한 동시에 반복된 충동구매와 그에 따른 비용 부담, 관리 스트레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소비에 보다 신중해졌다.
<소비단식일기>의 서박하 작가는 "지금의 소비는 '얼마나 갖느냐'보다 '왜 사는가'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 상태"라며 "경험은 하되, 소유는 늦추는 태도가 30~4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기준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이는 단순한 절약을 넘어, 자신의 삶과 자산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소비가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덧붙였다.

대신 이들은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취향을 기록할 수 있는 경험, 일상의 무료함을 환기해주는 이벤트에는 기꺼이 시간을 쓴다. 쉽게 대체 가능한 물건보다 기억으로 남는 소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소비는 단순한 소유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높이고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팝업 스토어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짧은 여행'이나 '전시 관람'처럼 인식되는 이유다.
MZ세대가 만든 팝업의 새로운 공식

반면 MZ세대는 팝업 스토어를 특별한 경험과 신선한 재미를 얻는 공간으로 본다. 희소성과 개성을 중시하고,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성향이 강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브랜드의 철학과 메시지를 공간 전체에 녹여낸 스토리텔링형 팝업 스토어가 특히 눈에 띄는 중.
최 대표는 "MZ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경험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감각이 예민하다"라며 "예전에는 유명하면 좋은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내가 존중할 만한가', '이 브랜드에 소울이 있는가'를 먼저 본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젠틀몬스터는 제품 판매보다 세계관·메시지·공간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며, 매장과 팝업 스토어를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기획해왔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제시하는 서사와 감각을 '체험'하기 위해 공간을 찾았고 이 과정에서 브랜드는 '취향과 태도가 분명한 브랜드'로 인식된다.
탬버린즈는 향수·핸드크림이라는 일상적 제품을 다루면서도, 팝업스토어를 통해 후각·시각·공간을 결합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제품 설명보다 '이 브랜드는 어떤 감정을 말하고 있는가'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MZ세대의 경험 중심 소비를 강화했다.

농심은 신라면 팝업 스토어를 통해 브랜드의 역사와 대중문화적 상징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분식집 콘셉트의 공간에서 소비자는 한 세대를 관통한 브랜드 경험을 체험한다. 이는 식품 팝업 스토어가 추억과 서사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하이트진로는 소주 브랜드 '진로'를 캐릭터 IP와 세계관으로 확장했다. 두꺼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팝업 스토어는 제품 홍보보다 브랜드가 지닌 유머 코드와 세대 공감 스토리를 공간 전반에 녹여내며, 젊은 소비자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혔다.

삼성전자는 제품 스펙 설명을 최소화하고, 기술이 적용된 일상의 맥락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라이프스타일 체험형 팝업 스토어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 장 줄리앙(Jean Jullien)과의 협업이 있다.
방문객은 제품의 기능을 학습하기보다, 기술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작동하는지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고가전과 IT 제품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삶의 일부이자 라이프스타일 요소로 인식하게 됐다.
팝업의 성공 기준은 매출이 아니다

브랜드들은 "얼마나 팔았는가?"보다 "얼마나 기억에 남았는가?"를 묻는다. SNS에 공유된 사진 수, 해시태그 노출량, 방문객의 체류 시간, 재방문 문의. 팝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최 대표는 "팝업의 성과는 오히려 팝업이 끝난 이후에 더 많이 나타난다"라며 "온라인 채널이 충분히 성장한 상황에서는 '우리 매장에서 얼마나 팔았나'보다 '사고 싶다는 인식을 남겼는가'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인식의 변화는 팝업 스토어 종료 이후 소비자의 행동을 통해 확인된다. 매출 대신 검색량 증가, 온라인 채널 방문과 체류 시간, 위시리스트 추가, 매장 재방문 및 추가 문의, SNS언급량 등이 주요 지표다. 즉, 브랜드를 떠올리고 다시 찾아보고, 사고 싶다는 인식이 남았는지를 판단한다.
팝업 스토어는 브랜드를 위한 공간이지만, 소비자에게는 '사지 않아도 되는 쇼핑 공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팝업 스토어를 찾는 이유는 재미있고, 예쁘고, 잠깐이나마 일상을 환기해주기 때문이다. 사진은 남았고, 물건은 사지 않았지만 그 경험은 기억에 남는다.
"마케팅은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라면, 요즘 팝업 스토어의 진짜 상품은 물건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생각의 변화인지도 모른다.
기획 김지은 기자
글ㆍ사진 김호이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