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구현과 진흙탕 사이 '을의 폭로', 언론이 잊지 말아야 할 기본은

정민경 기자 2026. 1. 3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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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로 시작되는 뉴스, 공방전으로 확대되며 자극성 늘어
"폭로의 끈인 '취재원' 확보하려면 한쪽 편에 서야 하는 환경"
"폭로는 취재의 시작이지 끝이 되면 안 돼"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요즘 주목받는 뉴스의 출발점에는 국회의원 보좌관, 연예인 매니저, 연구기관의 연구원 등 이른바 '을'로 불리는 내부자들의 폭로가 있다. 방송인 박나래의 전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하며 수면 위로 드러난 연쇄적 보도들과 최근 강선우·김병기 무소속 의원과 이혜훈 전 장관 후보자의 과거 보좌진들이 폭로한 갑질 의혹, '저속 노화'로 유명세에 오른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와 연구원 간 스토킹-성폭력 관련 공방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을들의 폭로에 기반한 취재는 현재 진행형이다. MBC 'PD수첩'은 지난 14일 공지를 통해 “국회의원 가족 또는 지인의 사적 업무 수행과 관련한 보좌진의 제보를 기다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명 '을의 폭로' 저널리즘은 권력형 갑질, 위계 폭력, 부적절한 관행을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왔으며 오래전부터 중요한 취재 방식이었다. 그러나 폭로 이후 사실관계가 충분히 검증되기 전에 뉴스가 이쪽 저쪽을 중계하는 형태를 띄고 논쟁이 장기화되는 양상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공방을 통해 폭로의 진위 여부가 가려지기보다 자극적인 자료를 공개하는 양상만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방송인 박나래의 전직 매니저들에 대한 갑질 의혹과 '주사 이모'를 통한 불법 의료시술 논란에 더해, 전 매니저들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박나래가 전 매니저들과 함께 있는 차량의 뒷좌석에서 동승 남성과 불쾌한 행위를 했다는 식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박나래가 매니저에 산부인과 대리처방을 받아달라고 했다는 의혹들도 마찬가지다. 전 매니저들이 가압류 신청 당시 주장했던 내용 중 공개되지 않은 부분들이 '공방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자극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 건에서는 '갑질' 프레임에 맞서 '을질'이라는 역프레임이 등장해 '을'을 향한 공격적 프레임도 등장했다.

“폭로의 끈인 '취재원' 확보하려면 한쪽 편에 서야하는 언론 환경”

이같은 폭로전이 지속되는 이유로 화제성을 위한 보도에 치중된 언론환경이 꼽히지만, 기자들의 '취재원 관리'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언론사들이 원하는 것이 사실 관계 파악 이후 좋은 보도를 하자는 게 아니라 '화제성을 끌 만한 폭로인가'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더해 기자들이 폭로의 끈인 '취재원'을 계속 확보하려면 한쪽 편에 온전하게 선 기사를 써야 해당 취재원을 통해 지속적인 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선명하게 편을 드는 기사를 써야 취재원을 붙들 수 있는 언론 환경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권 사무처장은 “예를들어 정희원 편에 제대로 서야 정희원 측 인터뷰가 가능하고, 정희원을 반박하는 반대편 취재원을 모두 활용해 기사를 쓴다면 다른 편의 취재원은 다른 언론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며 “언론사에서 사안마다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고, 많은 언론이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쓴다'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에 관한 주요 보도 이미지들. 그래픽=안혜나 기자

“폭로는 취재의 시작이지 끝이 되면 안 돼”

물론 모든 '폭로 보도'를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다. 내부 제보를 출발점으로 복수의 취재원 확인과 추가 검증을 거쳐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탐사보도와, 폭로 자체가 곧바로 기사화되며 여론이 형성되는 보도는 분명히 다른 층위다. 그러나 탐사보도에도 반격이 펼쳐지며 제보자, 즉 폭로를 한 '을'에 대한 공격이 펼쳐지는 것은 같다. 제보자가 순수하지 않고 악의를 가졌다는 프레임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환경에서 언론이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기준을 다시 상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지난해 9월 김병기 의원 차남 편입 관련 보도를 시작으로 보좌진 갑질 의혹을 연속 보도해온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는 22일 통화에서 “보좌진들이 순수한 제보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언론이 할 일은 '100% 순수한 제보자'의 말만 듣는 게 아니라, 그 제보 내용 중 '공익적 내용' 있느냐, 사실인가를 검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익적 보도와 폭로 공방 보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홍 기자는 “우선 폭로의 대상이 '공인'이느냐가 중요하고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 기준”이라고 했다. 또 “제보자와 당사자뿐 아니라 사건과 무관한 제3자나 기관 등을 통해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폭로는 취재의 시작점일뿐 마침표가 되어선 안된다. 익명을 요구한 언론법제윤리 전문가는 “폭로는 저널리즘에 있어서 매우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문제는 폭로를 들은 순간 취재가 끝난 것처럼 기사가 생산되는 구조”라며 “폭로는 취재의 출발인데, 마치 도착점처럼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중 '복수의 취재원'에게 사실을 검증하는 것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라며 “특히 한쪽의 녹음이나 카카오톡 자체로 '증거'라며 모든 사실 검증이 끝난 것인냥 기사를 쓰는 것은 문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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