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려야 선생님이지”...성형외과 의사들 100여년 전엔 신이었다 [Book]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6. 1. 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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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 사이에서 피부과·안과와 함께 '3대 인기 과'로 꼽히는 성형외과.

강남의 빌딩 숲을 메운 수많은 성형외과 간판은 생과 사의 갈림길보다는 미용의 증진과 기능의 개선, 그리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참호전과 화학무기, 화염방사기, 탱크와 전투기까지.

'얼굴 만들기'는 이 절망적인 시대에 등장한 선구적 외과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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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무참히 훼손된 얼굴
기적적인 의술로 복원시켜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인게이지먼트’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의대생들 사이에서 피부과·안과와 함께 ‘3대 인기 과’로 꼽히는 성형외과. 강남의 빌딩 숲을 메운 수많은 성형외과 간판은 생과 사의 갈림길보다는 미용의 증진과 기능의 개선, 그리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성형외과의 출발점은 참혹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장이었다. 참호전과 화학무기, 화염방사기, 탱크와 전투기까지. 살상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의료 기술의 진화를 아득히 앞질렀다.

전례 없는 무기들은 상상하기 힘든 부상자들을 만들어냈다. 가까스로 생을 부지했지만 코와 귀, 눈과 턱이 파괴된 채 돌아온 병사들이 속출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 독일·프랑스·영국에서만 얼굴 외상을 입은 병사는 28만명에 달했다.

‘영혼의 창’이라고도 불리는 얼굴은 인간의 정체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위다. 표정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얼굴을 잃은 병사들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뒤에도 또 다른 싸움을 이어 가야 했다. 약혼녀와의 파혼, 가족의 외면, 거리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혐오. 전쟁은 끝났지만 이들의 삶은 또 다른 형태의 전쟁에 놓여 있었다. 이들이 ‘가장 외로운 병사’로 불린 이유다.

‘얼굴 만들기’는 이 절망적인 시대에 등장한 선구적 외과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성형외과가 하나의 전문 분야로 성립하기 이전, 얼굴 재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기. 길리스와 동료 의료진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영역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얼굴을 복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살을 이어 붙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길리스는 의료와 예술, 기술과 상상력이 결합된 새로운 팀 의료의 형태를 실험했고, 이는 훗날 현대 성형외과의 기본 구조가 된다. 저자 린지 피츠해리스는 전쟁이 낳은 새로운 형태의 상처가 의료 현장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다만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성형 수술의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의학사는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전장에서 얼굴을 다친 병사를 위험을 무릅쓰고 들것에 실어 옮겼던 동료 병사들,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간호사와 의사들의 사명감이다.

아울러 책은 환자들이 겪어야 했던 심리적 외상에도 깊이 들어간다. 얼굴을 잃은 병사들은 육체적 상처를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느낀다. 거울이 없는 병동, 가면을 쓴 채 외출해야 했던 일상,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장치들. 이들에게 성형 수술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다시 세상과 마주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다.

의사의 헌신과 환자들의 간절함을 비추는 ‘얼굴 만들기’는 묻는다. 성형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책을 덮고 나면,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성형’과 ‘미용’이라는 단어의 무게도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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