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위협’과 밴스의 ‘경고’…쿠팡이 지렛대 됐나
‘로비 163억’ 쿠팡의 ‘미국 기업 차별’ 프레임, 워싱턴에서 힘 받았나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쿠팡 사태'로 촉발된 한국과 미국의 통상 마찰 불씨가 '분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켜졌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쿠팡의 투자사와 미 의회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재명 정부를 겨냥한 후속 대응을 검토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미국 부통령이 쿠팡 사태를 직접 언급하고 '예측불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 압박' 카드를 다시 꺼내들면서 한국 정부가 대미 외교와 통상 이슈에서 전례 없는 난제를 받아든 모양새다.

한미 '핫라인' 구축 직후 "관세 인상" 일방통보
이재명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인자'가 1월23일(현지시간)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동을 가졌다. 주요 동맹국과의 회담은 통상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 정부에서는 JD 밴스 부통령이 적극적으로 김민석 국무총리를 초청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이정표"라며 양국 관계의 밀착도가 더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김 총리는 당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41년 만의 국무총리 단독 방미를 위해 계획을 바꿨다. 그런데 첫 회담에서 김 총리를 향해 날아든 질문은 '쿠팡'이었다.
회담 현장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나 기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 총리는 회담 직후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밴스 부통령에게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잘 전달했고,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적 조치는 없다'는 점도 명시적으로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당국자 등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쿠팡 같은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와 규제를 추진하지 말라고 김 총리에게 경고했다(warned)"고 보도했다.
WSJ는 또 "밴스 부통령이 쿠팡 같은 기술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완화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밴스 부통령의 발언은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쿠팡과 쿠팡 경영진을 향한 한국 당국의 고강도 수사·조사를 조절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총리가 전한 내용보다 미국 측이 훨씬 강경하고 센 어조로 한국 측을 압박했다는 의미다.
김 총리와 밴스 부통령의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1월26일(현지시간) 자신의 SNS에 한국에 대한 관세를 무역 합의 이전인 25%로 다시 인상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총리가 미국을 떠난 바로 다음 날 한국과의 관세 협상 '판 깨기'를 기습적으로 선언했다. 경위 파악에 나선 한국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월27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찾아 대미투자특별법의 신속 처리를 요청하면서 가진 비공개 보고에서 "아무것도 파악된 게 없다.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대미 외교의 고차방정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총리와 부통령 간 상시 소통망인 '핫라인'을 구축해 대미 외교 채널을 추가했다고 했지만, 구축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청구서가 날아들며 '먹통'이 된 셈이다.
쿠팡 사태가 양국 간 통상 분쟁의 불씨가 될 조짐을 보이는 와중에 밴스 부통령이 한국 국무총리 면전에서 해당 사안을 되짚었고, 곧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 압박 카드를 꺼내면서 이번 사안이 쿠팡과 관련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쿠팡의 투자사 2곳은 최근 한국 정부에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동시에 미 무역대표부(USTR)에도 관세 등 제재를 포함해 무역 구제 조치를 해달라는 청원을 제기했다. 투자사 중 한 곳인 그린옥스의 닐 메타 대표는 2010년부터 쿠팡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들이 낸 청원서와 한국 정부에 보낸 서류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 규모나 범위, 내용이 반영됐다. 쿠팡Inc나 김범석 의장이 통상 분쟁화 시도를 사전에 공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만일 ISDS 절차가 현실화하고, USTR이 45일간 검토를 거쳐 공식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을 밝히면 통상 분쟁 국면이 전개된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복 조치가 전개될 수 있다.
일단 백악관과 우리 정부 모두 표면적으로는 쿠팡 사태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이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월28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언에 대해 "(미국) 국무부와 접촉한 바로는 쿠팡이나 온플법(온라인플랫폼 법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재인상 위협은 1월31일 현재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을 방문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월30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이틀째 논의를 했지만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한국 때린 美 의원들, 그 옆엔 '쿠팡 로비스트'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의 동시다발적인 한국 압박 배경에 쿠팡 사태가 하나의 '지렛대'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 한국법인의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모회사인 쿠팡Inc는 지난 5년간 미국 정·관계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 활동을 벌여왔다. 최근 쿠팡을 공개적으로 엄호하거나 "한국 정부가 미국 기술기업과 경영진을 마녀사냥 한다"고 주장한 미 상·하원 의원들의 움직임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 상·하원에 제출된 로비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쿠팡Inc는 지난해 4분기(10~12월) 89만5000달러(약 13억원·환율 1450원 적용)의 로비 자금을 집행했다. 2025년 연간 누적액은 341만 달러(약 49억4450만원)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쿠팡이 미 정계와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에 지출한 규모는 총 1129만 달러(163억7050만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21년 101만 달러 △2022년 145만 달러 △2023년 155만 달러 △2024년 387만 달러 △2025년 341만 달러를 로비에 투입했다.
2025년 기준 내부 대관팀과 별도로 쿠팡을 대리하는 로비 업체는 4곳으로, 모두 워싱턴DC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곳들이다.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2025년 하반기 3370만 건에 달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쿠팡이 그동안 축적해온 로비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술기업을 차별한다'는 입장을 한층 더 강하게 미국 측에 전달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밀착한 쿠팡의 '인적 네트워크' 범위는 더 넓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했는데, 워시는 2019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쿠팡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워시 후보자는 쿠팡 이사직 수행에 따른 보상으로 받은 쿠팡 주식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워시 전 이사는 지난해 6월 기준 쿠팡 주식 47만 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약 940만 달러(약 130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내 기업의 한 대관(對官) 관계자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쿠팡에 국한된 것이지만, 쿠팡Inc가 미국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할 때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단순히 개별 기업에 대한 조치가 아니라 '미국 테크 기업 모두를 겨냥한 것'이라는 프레임과 전선 확대 시도를 했을 것"이라며 "실제로 온플법의 경우에는 구글이나 메타 등 미국 기업이 영향권에 들기 때문에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구도가 먹혀들 수 있는 상황이고, 이는 공식·비공식 보고 라인을 통해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까지 공유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인 1.5세로 미 공화당 소속 3선인 영김 의원도 방미한 김민석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쿠팡 문제를 거론하며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차별당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영김 의원이 쿠팡을 엄호하는 발언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쿠팡은 지난해 4분기 로비 리포트에서 영김 의원이 발의한 'HR 4687' 법안을 주요 로비 쟁점으로 분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전문기술을 갖춘 한국 국적자들에게 연간 1만5000개의 고급 기술 비자(E-4)를 할당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한국의 전문기술 인력이 실질적으로 전개하는 사업이 없는 모회사인 쿠팡Inc로 건너가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해당 법안 통과 여부가 쟁점 사안은 아니다. 그런데도 쿠팡은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 이후 뜨거운 감자가 된 기업의 이민법 대응을 놓고 한미 양국에서 영향력 및 존재감을 넓히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1월 중순 미 하원의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의 청문회가 사실상 '쿠팡 청문회'로 전개되며 수위 높은 발언이 쏟아진 것도 로비 활동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캐롤 밀러 공화당 의원은 한국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검열법'이라고 맹비난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가 두 명의 미국 경영인을 상대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밀러 의원이 지목한 미국 경영인은 미국 국적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로 해석된다. 밀러 의원의 정책 설계를 총괄했던 조셉 포크너는 현재 '에이킨검프'에서 쿠팡을 대리하는 로비스트로 활동 중이다.

"트럼프, 정치적 위기 타개 위해 한국 겨냥"
미국 공화당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언이 나온 후 소셜미디어 X에 한국 정부를 겨냥한 글을 남겼다. 법사위는 "쿠팡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하면 발생하는 일"이라며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적 대우와 압박이 관세 인상 통보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하원 법사위를 이끌고 있는 짐 조던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조던 위원장의 정책 수석을 지낸 제임스 타일러 그림은 쿠팡이 2025년부터 로비 계약을 맺은 '밀러 스트래티지'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밀러 스트래티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제프리 밀러가 이끄는 곳으로,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 취임식의 재정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쿠팡Inc는 '트럼프·밴스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5000만원)를 기부했고, 김범석 의장은 2025년 1월 취임식에 초청을 받고 참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국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그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불법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미국 시민 2명이 사망하며 거센 역풍이 부는 등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곤두박질하고 있다. 여기에 미 연방대법원에서 상호관세 및 고율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된 국가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대한 판결을 오는 2월 중으로 내리는데, 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며 코너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1월23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도 한국과의 무역 합의 성과를 자랑하며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강조하는 등 '미국'과 '자국 산업·기업' 보호에 매진하는 점을 연일 설파하고 있다. 정치적 위기와 사법 리스크에 동시 노출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대미투자특별법이 지난해 11월 발의된 후 국회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장은 "만일 2월에 미 연방 대법원이 IEEPA를 위법으로 판단해 무효를 선고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 동력도 타격을 받게 된다"며 "무역 협상에 합의한 국가를 상대로 확실한 이행을 담보해 내는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인데, 법안 발의가 이미 진행된 한국은 '통과'만 남은 상황이어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고 그런 측면에서 타깃이 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쿠팡에 대한 한국의 고강도 조사와 동시다발적인 조치가 한미 간 통상 분쟁의 길목에서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정확한 예측을 하기 힘든 만큼 한국 정부의 전략적 대응과 일관된 메시지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 원장은 "정부의 움직임과 당국자의 발언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돼 미국 측에 전달될 수 있는 만큼 면밀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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