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며 폰 대신 책 보는 영국 아이들…비결은 부모들의 ‘만 14세 서약’ [초보엄마 잡학사전]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6. 1. 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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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제미나이]
[초보엄마 잡학사전-243] 등굣길에 책을 읽으며 걸어가는 아이를 봤다. 스마트폰이 아닌 종이책을 읽으며 등교하는 아이를 보니 생경했다.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영국 초등학교 등·하굣길에 아이들은 주로 옆 사람과 얘기를 하며 걷는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걷는 아이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4학년 동급생 중 유일하게 스마트폰이 없었던 첫째는 영국에 와서 놀랐다고 한다. 같은 반 친구들 중 절반 가까이가 스마트폰이 없어서다. 첫째보다 두 살 어린 둘째네 반에는 스마트폰이 있는 아이가 한 명뿐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국에서는 어른들도 스마트폰을 덜 보는 것 같다. 하교 시간, 학교 정문에서 자녀를 기다리며 대부분의 부모는 교문 안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거나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학교 근처에서라도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해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려는 것처럼 말이다. 케임브리지에 사는 한 교포는 “여기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 진짜 안 써요.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서 그런지는 몰라도요”라고 말했다. 카페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책을 보는 사람이 한국에 비해 눈에 띄게 많다.

통계적으로도 영국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보다 스마트폰을 더 늦게 손에 쥔다. 영국 미디어 규제 기관인 오프콤이 2024년 발행한 ‘아동과 부모: 미디어 사용 및 태도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만 11세 기준 스마트폰 보유율이 61%다. 영국 중·고등학생 스마트폰 보유율은 95%를 넘지만, 적어도 초등학생 자녀에게는 스마트폰을 최대한 늦게 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집중력 저하는 물론 또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거나 충동성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초등학생은 10명 중 9.5명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한국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24년 한국미디어 패널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95.2%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인 만 10세의 스마트폰 보유 비율이 2022년 기준 96.5%에 달한다.

스마트폰 보유율이 한국보다 낮은데도 영국은 5년 전부터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금지해 왔다. 영국은 2021년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올해부터는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달부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포함해 교내에서 전자기기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학생들은 계산기나 연구 목적으로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 교육감시기구 오프스테드는 이 규칙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직접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도 오는 3월부터 초·중·고등학생이 학교 수업 중에 스마트폰을 쓸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됐다.

정부가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학부모 협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최대한 늦게 사주고 싶지만 우리 애만 없으면 소외될까 불안해 스마트폰을 사주는 경우가 많은데,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 스마트폰 구매 시기를 늦추는 영국의 ‘스마트폰 없는 어린 시절(Smartphone Free Childhood)’ 캠페인을 눈여겨볼 만하다. 자녀가 만 14세가 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기로 자발적으로 서약하는 캠페인으로, 영국의 약 18만 명의 학부모가 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옥스퍼드 지역에서만 약 4000명의 학부모가 서약했다. 지역 내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기로 합의할 수 있다면 또래 압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문제가 금방 해결된다는 주장인데, 한국도 참고해 볼만하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와 있다. 회사 연수자로 선발돼 1년 동안 영국에서 공부하며 아이들을 돌볼 예정이다. 초등학생 두 자녀와 좌충우돌하며 겪은 일들을 엄마의 시선에서 풀어내고자 한다. 영국에서도 나는 초보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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