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야욕에 유럽 반발? 제국주의 부메랑이 돌아왔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6. 1. 3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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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견문발검]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flickr

그린란드 사태 앞에서 유럽 정치인들이 일제히 국제법 준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야욕과 별개로, 그 일사분란한 모습은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국제법이 그리 중요하다면, 왜 2년 동안 가자에서 국제법이 붕괴될 때 침묵했던 걸까? 영국과 독일 등은 되레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하고 왜 국제법 파괴에 앞장섰을까? 또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할 때는 왜 항의하지 않은 걸까? 내내 묵인하다가 그린란드가 위협받자 그제야 국제법 운운하는 모습에 '제국주의 부메랑'을 맞았다며 자업자득이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국주의 부메랑이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 가했던 폭력과 통치 기술들이 제국의 내부에 거꾸로 투사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들어 자주 소환되는 개념이다. 한나 아렌트와 미셸 푸코 같은 걸출한 사상가들도 이에 대해 언급했지만, 우리는 우선 흑인 시인 에메 세제르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 에메 세제르 (Aim Csaire). 사진=위키백과

세제르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독일 나치즘에 비명을 지른 이유는 희생자가 백인 유럽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열강은 수세기 동안 식민지 유색인종을 부단히 학살해 온 터였다. 사실 나치즘은 유럽의 식민 폭력을 본뜬 것뿐이다. 20세기 초 독일은 유럽 국가들을 모방하며 나미비아에서 끔찍한 집단학살을 자행했고, 그토록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폭력이 나치즘을 매개로 유럽 내부로까지 진격한 것이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억압이 결국 내부의 파시즘으로 이어진다는 세제르의 통렬한 고발은 오늘날에 더욱 빛을 발한다. 제국주의 부메랑이 그린란드뿐 아니라 미국 한복판에도 도착한 형국이다. 이민세관단속반(ICE)이 주도하는 폭력 사태는 가히 목불인견. 백주대로에 시민들을 처형하는 광경에 기함할 지경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민단속반의 무법성은 트럼프 정부의 예외적 특징이 아니라 미 제국의 군사적 패권의 반영이다. 기마 경찰 도입과 인종 파일링 등 20세기 초 필리핀에서의 식민 통치 기술이 미국 경찰 시스템에 고스란히 이식됐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작전 기술은 경찰의 군사화를 더욱 부추겼고, '테러와의 전쟁'은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는 대신 시민의 권리를 대폭 축소했다. 외부에서 전쟁과 갈등을 유발할수록 내부에서는 경찰이 고도로 군사화되고 감시와 진압 기술이 축적된 것이다. ICE 사태 이전에도 흑인들은 거리에서 경찰들에게 계속 죽어나가고 있었다.

한편으로 미국 정부는 초당적으로 국제법을 침식시켜 왔다. 최근에도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뒷배를 자임하며 무기와 돈을 제공하고 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강력하게 탄압했다. 제노사이드를 묵인하면서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정당성을 스스로 붕괴시켰던 것이다. 당연히 이런 위선은 트럼프의 권위주의를 위해 붉은 주단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다.

▲ 1월 10일, 미국 미네소타주 골든 밸리에서 트럼프 대통령 반대 시위대가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에 의해 르네 굿 살해 사건에 항의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flickr

다시 강조하자면, 나치의 갈색셔츠단처럼 초법적 폭력을 저지르는 저 ICE 요원들은 경찰의 군사화가 자초한 필연의 폭력이다. 또 미 군사제국주의가 외부에서 수행해 온 폭력의 기술이 내부에 이식되면서 발생한 파국이다. 예를 들어 미 연방기관들과 경찰은 수년간 이스라엘에서 훈련을 받아 왔다. 그것이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구사했던 군중 통제, 구금, 급습, 위협 테크닉이 그대로 미국 도시에서 재현되는 이유다. 무작정 쏘고 테러리스트라고 우기거나, 사상자 의료 지원을 차단하거나, 아동까지 구금하거나, 수용소 구금자를 살해하거나, 복면으로 신원을 가리는 것까지 모든 게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래서 IDF가 ICE를 직접 훈련시켰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미국으로의 이주 자체를 테러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수용소와 분리 전략 등 식민지 통치 기술을 완벽하게 모사한다. 즉, 미국 내부에도 식민지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이주민을 감금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시민들을 배제하기 위한 원대하고 치밀한 계획. 확실히 파시즘의 경로다.

▲ 1월1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린란드에 손대지 말라'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flickr (Christian Ursilva)

2023년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대통령이 가자 학살의 방관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유럽 정치인들은 귀담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에 우리는 전 세계와 미국 내부를 관통하는 파시즘의 군홧발을 지켜보는 중이다.

바로 이것이 제국주의 부메랑이다.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행위는 끝내 자기 자신을 비인간화하게 된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외면하는 세계에는 결국 파시즘이 닥치게 된다. 가자는 미니애폴리스의 어제였고, 조지 플로이드는 르네 굿의 어제였다. 트럼프와 ICE의 폭력에 저항하는 게 시급하지만, 이 폭력의 연쇄를 낳은 위선의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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