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들은 사라지고 김정은만 남았다…북한 ‘1호 사진’의 변화[청계천 옆 사진관]
● 얼굴이 사라지는 순간, 사진의 성격이 바뀐다
신문 한 개 면을 사람 얼굴로 가득 채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목과 광고 없이 사진만으로 한 면을 채운다고 해도, 독자가 개별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최대치는 대략 5000명 안팎일 것입니다. 신문 한 면에는 보통 200자 원고지 약 25장 분량의 기사가 들어갑니다. 신문의 활자 크기는 독자가 인식할 수 있는 최소 단위에 맞춰 설계돼 있기 때문에, 얼굴 역시 그 정도 크기 이상은 되어야 ‘인물’로 인식됩니다.
만약 정말로 5000명의 얼굴을 한 페이지에 모두 담으려 한다면, 얼굴만 보이도록 몸을 최대한 잘라내고, 단상에 빽빽하게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장면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행사에서 참가자 개개인의 얼굴을 남기려면, 애초에 촬영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계를 넘는 순간, 얼굴은 더 이상 인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점이나 패턴에 가깝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5000명을 넘어서면, 기념사진은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진’이 아니라 ‘규모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김정은 시대에 등장한 대규모 집단 기념사진들은 바로 이 경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장관이지만 개별 얼굴은 사라집니다. 동원되는 인원 규모 커졌지만 사진이 남기는 개인적 기억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는 외부 독자뿐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도 이런 사진이 더 이상 특별한 ‘기념’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은 북한 선전 이미지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참석자 개인이나 가족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신문 일부 지면에 여백과 함께 실린 이 사진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일성 시대에는 기념사진이라고 해야 기껏 수십 명, 김정일 시대에는 최대 몇 백 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해 연단에 서게 함으로써 함께 역사 만들기에 나선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게 해줬습니다.
● “또 기념사진이네”라는 감각
집단 기념사진은 원래 ‘증명’의 장치였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남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북한에서 1호가 등장하는 사진이 특별한 의미를 가져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지지도나 정치 이벤트가 끝난 뒤 촬영된 기념사진은 각 가정에 전달됐고, 액자에 넣어 집 안에 걸렸습니다. 기념사진은 국가가 개인에게 남기는 흔적이었고, 가문의 영광이자 가보였습니다. 이 관행은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김정은 시대 역시 기념사진은 북한 사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 1년 6개월(2012년 1월~2013년 5월) 동안 175장의 단체 기념사진을 통해 약 12만 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2년 7월 26일자 노동신문에는 6개 면에 걸쳐 28장의 기념사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권력의 존재를 빠르게 시각화하기 위한 김정은식 해법이었을 것입니다.
같은 속도로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단순 누적으로 계산해 집권 14년 동안 기념사진에 등장한 인원은 약 100만 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를 4인 가족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00만 명으로, 전체 650만 가구 가운데 상당수가 한 차례 이상 기념사진 경험을 공유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과 함께 찍은 사진’이 더 이상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1~2년 사이,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이미지 정치의 핵심이었던 집단 기념사진의 위상과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소한 노동신문 지면에서는 기념사진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닙니다. 김정은 권력 초창기에 전체 사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던 위상과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입니다. 물론 김정은이 2022년 열병식에 참가한 군인 전원을 다시 평양으로 불러들여, 1주일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기념사진을 찍고 이를 노동신문에 게재하는 등 ‘사랑의 기념사진’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늘어난 대규모 군중 동원형 ‘1호 행사’의 빈도를 함께 고려하면, 집단 기념사진의 위상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북한 내부에도 생겼을 ‘사진 피로감’
![2026년 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한 시민이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노동신문은 ‘일반자료’로 전환돼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등 전국 도서관에서 별도의 절차없이 볼수 있다.[서울=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31/donga/20260131130241514wwpl.jpg)
또 다른 가능성은, 김정은을 부각시키기 위한 대규모 행사가 반복되면서 더 이상 참가자 개개인을 보여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집단은 커졌지만, 그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화면 속에서 점점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 ‘사진이라는 영수증’이 사라질 때
5000명이 등장하는 기념사진은 집단 기념사진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듭니다. 규모는 극대화됐지만 개인의 식별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념사진은 더 이상 개인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사진은 개인에게 귀속되기보다 국가가 소유하고 전시하는 장면에 가까워집니다.

오늘은, 점점 화려해지는 북한 사진 속에서 인민의 얼굴이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 사진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셨나요? 좋은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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