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수사권 쥐고 공공기관 비켜 가…금감원 얼마나 더 세질까 [Deep Spot]
공공기관 지정 논의, 유보 조치로 한숨 돌려
권한 키우고 자율성 지킨 ‘이중 승리’ 평가
감독 전문성 증명할까, 권력남용 우려 살릴까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헤럴드DB]](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31/ned/20260131110840670irms.jpg)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영화 ‘돈’에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수석은 우연히 포착한 주가조작 단서를 쫓아 대형 증권사의 비리를 파헤친다. 밤낮없이 증거를 모아 범죄의 실체를 드러내 시장의 혼란을 막는다. 반면 드라마 ‘더 뱅커’에서는 금감원이 은행 표적감사를 지시하며 고압적인 태도로 ‘갑질’을 일삼는 모습이 그려진다. 겉으로는 감독 명분을 내세우지만 제 이익만 챙기며 부패한 권력을 휘두른다.
이처럼 금감원의 힘은 ‘돈’의 정의로운 추적처럼 시장을 수호할 수 있지만 ‘더 뱅커’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통제되지 않으면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
최근 금감원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은 금감원이 가진 강력한 권한이 이롭게 쓰여야 한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아직 논쟁이 끝나진 않았지만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는 인지수사권를 부여하기로 의견이 모아졌고 통제 강화 카드로 언급된 공공기관 지정은 유보됐다. 사실상 금감원의 권한은 커지면서 자율성은 지키는 조치다.
시장은 금감원의 힘이 더 강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더 세진 칼날이 시장 수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만들지, 과도한 권한 집중과 권력 남용의 우려를 되살릴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빅 스피커’인 이복현 전 원장이 떠난 뒤 시장은 금감원이 조용해질 거라고 봤지만 이는 빗나갔다. 조직 분리 위기 속 취임한 이찬진 원장은 소비자보호 강화 등 내부 개혁으로 현행 체제 유지 결론에 사활을 걸었고,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등 현안에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금융권 이슈를 선점했다. 특사경 권한 확대 논의의 불씨를 지핀 것도 이 원장이었다.
특사경 인지수사권 쟁취는 금감원의 숙원이었다. 현재 금감원 특사경은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 중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은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를 개시·진행할 수 있다. 범죄 혐의를 인지하더라도 검찰 승인 없이는 수사 착수가 불가능한 구조다. 이는 특사경 도입 당시부터 약점으로 지적됐는데 사건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인지수사 권한이 필요하다고 금감원은 주장해 왔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이 문제를 꺼내 들었고 국회 국정감사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지수사권을 공개 요구했다. 그는 특사경을 ‘절름발이’에 비유하며 “형사소송법상 특사경의 인지수사 권한을 제한한 규정이 없음에도 금융위가 감독 규정으로 인지수사를 제한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여러 차례 일갈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서는 인지수사권 필요성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감을 얻어내며 판을 뒤집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인지를 해야 수사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특사경 권한 범위 등 보고를 지시했고 최근 국무회의에서 인지수사 권한 부여를 지시하는 데 이르렀다.
금감원을 지도·감독하는 금융위는 물론 관계기관인 법무부가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대통령의 지시는 결정타였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특사경에 인지수사 권한을 주기로 했다. 금감원이 도입을 준비 중인 민생금융범죄 특사경의 수사 범위나 그 외 특사경 확대 추진에 대해선 여전히 이견이 많지만 인지수사권 부여 결정만으로도 일단은 금감원이 승기를 거둔 모양새다.
앞서 금감원은 인지수사권 부여와 함께 특사경 직무 범위를 현재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서 민생금융범죄, 회계감리, 금융회사 검사 등으로 넓혀야 한다는 취지의 ‘특사경 활용도 제고 방안’을 마련해 금융위 등에 전달했다. 특히 민생범죄 범위를 불법사금융, 보이스피싱, 보험사기 등으로 넓게 둬야 한다는 입장인데 금융위 등은 과도한 권한 집중 등을 이유로 불법사금융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도 일정 기간 유보됐다. 공공기관 지정 요구는 금감원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반면 외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서 출발했다. 2017년 채용 비리와 방만 경영, 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시 감독 미흡 등이 핵심 근거가 됐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9월 금융당국 조직개편의 하나로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계획을 발표하고 조직개편안을 철회하면서도 공공기관 지정 카드는 열어두면서 2009년 지정 해제 이후 17년 만에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될 가능성은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지정 유보 결론을 내렸다. 공공성·투명성 제고 효과보다 자율성과 전문성 훼손이라는 비효율적 결과가 초래될 우려를 더 크게 봤다. 공공기관은 공운위 운영 지침에 따라 예산·인사·조직·경비 등 전반적인 경영 사항을 엄격히 운용해야 하기에 이미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는 금감원으로서는 공공기관 지정 시 통제·압박 수준이 훨씬 커지게 된다. 이 원장의 표현대로라면 ‘옥상옥 구조’가 되는 것인데 금감원은 그 위기를 당분간 해소한 셈이다.
특사경 인지수사권 부여 결정과 공공기관 유보는, 말하자면 금감원의 ‘이중 승리’다. 수사 권한은 키우면서 민간기구로서 운영 유연성은 사수했다. 금감원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지수사권은 금감원의 시장 대응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사 착수와 관련한 행정 프로세스를 밟는 데에만 3개월여 걸렸다면 앞으로는 자본시장 범죄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사후 대응을 넘어 선제적 수사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금감원은 여러 금융 현안에 대해 깊숙이 개입하며 시장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감독 영향력이 강한 상황에서 수사 권한이 확대되면 금융시장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의 힘이 강해지는 만큼 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위는 인지수사권 부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적절한 공적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특사경 수사 범위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외에는 불법사금융 정도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공운위가 공공기관 지정을 유보하는 대신 경영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금융감독 업무에 대한 쇄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금융위가 주관하는 경영평가도 공공기관 관리체계에 준하게 실시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강화 방안 실천과 함께 업무 투명성·공정성을 쇄신하기 위한 노력을 충실히 이어갈 방침이다. 권력 남용 우려를 불식시키고 자정 능력을 증명해 신뢰받는 감독기구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동시에 민생범죄 특사경 수사 범위에 보이스피싱·보험사기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지속 추진하는 등 금감원의 독자적 위상을 키우는 행보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 등 자체 통제장치를 마련해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금감원이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실행력에 달렸다”면서 “확대된 권한을 적정하게 행사한다면 시장 신뢰를 굳건히 하겠지만 자정 노력이 형식에 그치면 권한 축소 주장과 공공기관 재지정 압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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