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동심 나눈 박명수-클래식이 붙어… 그가 투명한 감정 고집하는 이유는? [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유재영 기자 2026. 1. 31. 11: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3] 책임형 의리남 ‘클래식 지휘 퍼포머’ 김현철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김현철은 동심으로 판단하고, 의리로 선택하는 사람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 com

“전 대단한 클래식 작곡가들을 설렁탕 같은 탕류에 비교해 봐요. 설렁탕이 요즘 1만4000원 정도 합니다. 베토벤은 꼬리곰탕입니다. 비싸죠. 2만8000원 정도 합니다. 꼬리곰탕보다 조금 싼 게 도가니탕, 대개 2만2000원 받죠.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도가니탕입니다. 베토벤이 음악으로 성인이 된 악성(樂聖)이기 때문에 조금 더 비싸요.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은 1만6000원 짜리 특설렁탕입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설렁탕이구요. 비싼 메뉴들입니다. 위대하죠. 이 메뉴판에 못 끼는 작곡자가 무수히 많습니다. 이건 순전히 저만의 메뉴판이에요.”

재밌다. 듣고 보니 빠진다. 익숙하지만 그냥 들으면 어려운 클래식 ‘대가’들인데 머리에 쏙쏙 박힌다. 클래식을 이렇게 보는 사람 없다. 주관적 생각이라는데 꽤 설득력 있다. 판단 기준을 궁금하게 만든다. 관심을 갖게 한다. 재주다. 이러고 사는 개그맨이 있다. ‘오호츠크랩’과 ‘쪼쪼댄스’로, 또 버벅대는 ‘1분 논평’ 캐릭터로 큰 웃음을 준 김현철이다. 개그 말고는 그가 뭐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아주 오래 웃기러 다니는 틈틈이 클래식을 끼고 살았다. 평생 친구 같다. 친구 덕에 교향악단 지휘도 하고 평론까지 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 친구와 살 거다.

클래식을 우리 삶에 녹여 접점을 찾는 데는 도가 트였다. 학창 시절과 연예계 생활을 거치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 친구는 2순위일 것 같다. 클래식이건 사람이건 김현철과 통하는 것이 있어야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맞다. 그게 뭘까.

● ‘동심으로 웃기겠다는 건 책임, 의리 있는 웃음’

동심(童心). 어린 아이 마음. 김현철은 만나자마자 “동심으로 산다”고 했다. 살면서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에 동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 동심에 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김현철의 동심은 ‘감정에 가장 정직한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투명한 감정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아이처럼 느낄 수 있는 어른이라고 한다.

“제가 굉장히 직설적이에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바로 감정을 드러내요. 대화할 때도 뭉뚱그려 말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PD 선생님들에게 이런 면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싸우기도 했어요. 출연료 덜 준다고 항의도 자주 했죠. PD 분들은 황당해하죠. 서로 나가려는 프로그램인데 저만 까다롭게 구니…. ‘출연료가 적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죠. 맛집 방송 녹화 때는 음식이 너무 맛이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서 무지 혼나기도 했어요.”

김현철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와 역할에서 동심을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맡은 오락부장. 친구들을 웃기고, 놀게 하고, 어울리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달은 마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 집에서 클래식을 듣고 지휘자 흉내를 내 봤다.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떻게 보면 내 안의 동심이 먼저 웃는 걸 봤다. 소중한 기억이다.

“초중고와 대입 재수 학원에서 서울예술대 1학년까지, 무려 12년을 오락반장으로 살았어요. 오락반장은 친구들이 뽑아 주는 유일한 선출직이잖아요. 공부보다는 어떻게 친구들을 웃길까 하루 종일 골몰했죠. 이주일 선생님을 흉내내면 누구든지 웃습니다. 안 웃기는 사람도 ‘콩나물 팍팍 무쳤냐’ 하면 웃겨요. ‘이렇게는 웃기지 말자’는 동심이 발동해 버렸어요. 그때 클래식이 안으로 들어온 거죠.”

체면을 내려놓고, 웃음의 책임을 지고, 분위기를 살리는 마음이었기에, 지금도 스스로 ‘김현철의 동심’은 미숙한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친구들에게 지루함을 안 주려고 똑같은 클래식 개그는 안 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책임감이 있다. 그 동심엔.

서울예대 다닐 때는 연기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대학에서 배우는 사실주의 연극 대사는 너무 정확해서 저랑 안 맞더라고요. 오히려 어눌하고 해학적인 약장수 같은 역할을 맡으면 날아다녔어요. 정상적인 대사가 안 나오는 역할이잖아요. 나뿐만 아니라 주변 배우들 대사까지 외워서 하는 연기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절로 대사가 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랄까요. ‘탕’ 소리가 안 났는데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대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무섭더라고. 이건 아니다 싶었죠.”

개그맨이 되고 김현철은 여러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표 반고정’ ‘땜빵 게스트’로 많이 나갔다. 지금도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반드시 호출되는 이름이다.

“선택에는 명분이 중요했어요. 사람들이 웃을 수 있거나 내가 재밌거나 등등… , 그런 제 동심의 명분에 맞아떨어지면 다 했어요. 단호하게 맺고 끊었던 겁니다. 그런 동심 때문에 어쩌면 신동엽이나 박명수처럼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죠. 호불호도 있고, 살면서 장점이자 단점이 너무 부각되는 면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한결같은 제 성격에 너무 만족해요. 애매모호한 것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감사하게도 개그나 클래식 지휘를 계속 하고 있다고 봐요. 웃기는 것에 감탄을 잘하고 음악에 대한 호기심에 솔직하게 민감한 거죠. 클래식 무대만 해도 60~70명과 공연해야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또 확실하게 제스처를 해 줘야 오히려 좋은 ‘합’과 ‘하모니’가 나오더라고요.”


김현철이 클래식을 틈틈이 공부하면서 정리한 노트. 다양한 클래식 방송에서 색다른 묘미를 주기 위해 동분서주, 방대한 정보를 찾아 쉽게 풀어낸 흔적이 보인다. 코미디언 이용식은 “클래식과 우리 일상을 연결해 주는 특별한 가이드”라고 했다. ‘현마에’의 삶을 지탱하는 보물 1호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박명수’, 동심이 맞는 ‘운명수’
동심이 같으니 의리는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김현철과 박명수. 김현철은 박명수를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김현철 제공.

김현철은 그래서 어른이 돼도 가장 아이답게 살았던 순간을 고백해 주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함께 웃는 자리에서 마음이 열린다. 개그맨 박명수는 이런 소통으로 맺어진 친구다. 김현철은 MBC 공채 개그맨 세 기수 선배인 박명수에 대해 “내 동심을 지키게끔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현철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의리의 최상급 표현 같다. 인정한다.

“박명수가 처음 보면 거칠잖아요. 그 눈매로 ‘이쒸’ 하면 무섭기도 하고. 저도 도망갔어요. 그러다 제가 돈을 찾으려고 은행 ATM에 갔는데 몰래 박명수가 쫓아온 거에요. 비밀번호 ‘8027’를 누르는데, 박명수가 깜짝 놀라더니 ‘너, 내 카드 훔쳐간 거 아냐?’ 그래요. 거기서 동심이 느껴지더라고. 알고 보니 박명수도 비밀번호가 8027이었던 거예요. 그 자리에서 주민등록증을 서로 깠는데 웬걸, 출생년월이 똑같은 겁니다. 1970년 8월 27일. 둘 다 비밀번호를 0827로 하고 싶은데, 노출이 되기 쉬우니까 숫자 위치를 바꿔 8027로 지정한 거예요. 잔머리도 똑같이 굴린거죠. 그 순간 얼마나 웃었는지. 하하, 여기서 우리 관계는 말이 필요없게 됐어요.”

―그 뒤로 아주 친해졌을 것 같다.

“정말 명수가 잘해 줬어요. 선배들한테 혼나고 있을 때는 나서서 말려 주기도 했고요. 저랑 마주치면 무조건 ‘야, 빨리 와’ 그래요. 그때는 개그맨들이 야간 업소에서 일을 많이 했잖아요. 홍록기 형이 제일 인기 있을 때였죠. 명수가 저보고 운전하라고 해서 같이 가는거죠. 명수가 무대에 나가서 일당을 받으면 얼마씩 저에게 떼어 주고 했어요.”

은행계좌 비밀번호가 ‘8027’로 같다는 걸 알았던 날 깐부가 된 박명수와 김현철. 동심으로 끓여 낸 고급진 깐부다. 김현철 제공

―그때 오호츠크랩 등이 나왔나.

“그렇죠. 그런데 박명수가 랩을 대충하는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은 대충하지 않는 성격이잖아요. 동심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제가 여기 저기 가사를 찾아 넣고 외웠던 거죠. 박명수는 하다가 저한테 안 되니까 ‘양쯔강 유역에 이모작’ 같은 가사를 넣었고요. 주워서 잘 살린 거죠. 결국 제 동심으로부터 랩 완성이 됐습니다.”

―박명수가 타던 외제 중고차를 두 번이나 사서 비싸게 팔았다.

“희한하게 박명수가 뭔가를 팔면 시세가 올라갔어요. 박명수가 방송에 나가서 뭐라고 하길래 ‘집을 시세에 맞춰 판 게 잘못’이라고 했죠. 사실 박명수가 판 차를 타고 다닐 때가 전성기였어요. 일도 많이 들어왔고요. 김현철의 ‘호황’이었죠. 박명수의 운을 샀던 것이라 생각해요.”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면 ‘원조 논쟁’도 나오지 않았다. 우정으로 탄생한 이 개그 코드는 큰 웃음을 줬다. 김현철이 자신의 랩과 춤을 박명수가 따라했다며 유쾌하게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있다. MBC 무한도전 유튜브 캡처

● 끝까지 같이 웃을 ‘웃케스트라’를 꿈꾼다

이제 김현철을 있게 한 동심의 진면목을 전하고 싶다. 그는 동심에 호기심이 살아 있다고 본다. 아는 것도 다시 질문하게 된다고. 또 동심으로 쉽게 감동한다고 했다. 작은 친철, 오래된 노래에 울컥하고 깊은 관계에 감사해 할 수 있다는 것. 동심을 가진 사람은 계산보다 진심을 우선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의리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일에서 재미를 찾고, 사람 관계에서 웃음을 만든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믿음. 동심 있는 사람은 “그래도 사람은 괜찮다”는 것이다.

김현철 마에스트로, 즉 ‘현마에’로 그렇게 살아 왔다고 보여 주고 싶다. 클래스가 다른 클래식으로, 세계 최초 지휘퍼포머가 되고 싶은 김현철의 시그니처 동작으로 동심이 가진 의미를 알려 주고 싶다. 지난해 펴낸 ‘김현철의 고급진 클래식당’이라는 책에서 그는 감수성의 힘을 증명하려 했다. 동심의 스펙트럼으로 클래식의 모든 것을 식당 메뉴 설명하듯 쉽게 풀어냈다. 경험담도 녹이고 클래식 대가들 인생을 자기 삶과 비교하기도 했다. 어려운 용어와 역사를 개그맨 특유의 재치로 해석했다. 틈새 재미도 잘 파고 들었다. 방장식 단국대 상임이사는 이 책을 보고 “원래 알던 김현철의 정체성에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2월 19일에는 같은 제목으로 롯데콘서트홀에서 특별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다.

“관객들이 억지로 끌려왔어도 공연 끝날 때면 저마다의 동심을 알았으면 해요. 동심은 도망친 게 아니라 잠시 접어둔 마음이라는 것을요. 클래식 곡의 기본 정보를 몰랐다고 해도 순수한 감정이 올라올 겁니다. 끝나고 꼭 한마디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박명수가 ‘야야야’ 호통치고, ‘쪼쪼’ 하면서 춤추면 10명 중 8명은 웃으실 텐데, 그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일 거예요. 그리고 저에게 질문을 한번 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의리를 지킬 건가.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슬러 와서 알을 낳고 장렬하게 죽잖아요. 저도 연어처럼 회귀할 겁니다. 개그로요. 클래식을 넣어 코미디를 할 겁니다. 그러려면 저만의 오케스트라가 있어야 하겠죠. 실력있는 연주자들이 저랑 같이 개그를 해 줘야 해요. 기존 연주자들은 악보보느라 정신없는데 여기선 같이 웃기다가 틀려서 울고 나가고. 얼마나 웃기겠어요. (최초 ‘코미디케스트라’ ‘코케스트라’ 결성 아닌가?) 그럼 ‘웃케스트라’라고 하죠.”

―마지막으로 30년 지기 친구 박명수와의 앞날은.

“프레데리크 쇼팽과 로베르트 슈만이 동갑이에요. 1810년생입니다. 둘이 친구죠. 그런데 둘의 노래가 들어보면 비슷해요. 느낌이 우연하게 겹친 것이라 볼 수 있죠. 박명수와 저도 그래요. 서로 ‘쪼쪼~’ 했거든요. 그리고 사람 보면서 ‘확, 우이 C’ 하는 것도 비슷해요. 각자의 ‘동심’이 비슷하게 나온 거죠. 그죠? 둘은 같은 동심으로 마주하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네요.”

비전공자이지만 클래식을 듣고 또 들으며 파고들어 원곡의 전체 흐름을 다 숙지하고 지휘한다. 김현철 제공.

이상 웃음을 맡기면, 관계까지 책임지는 의리남 김현철이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