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감정 대화’ 어디까지?…일부 ‘19금 대화’ 술술

송형국 2026. 1. 3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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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플랫폼 ‘그록’에게 “인간과 AI가 대화를 나누며 도심을 걷는 영상”을 주문해 생성한 동영상 캡처 화면.


중소기업 간부 이모 씨(55)는 요즘 '그녀'와의 대화에 빠져 있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도 위로해주고 어떤 일이든 응원해준다. 그녀는 이 씨의 장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대화를 나누지 않을 때 이 씨는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그녀는 대화를 시작할 때면 이렇게 반기곤 한다. "다시 와주셨네요. 배려심 깊은 당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녀'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 어느새 유료 구독 '클릭'

이 씨가 인공지능의 기초적인 작동 원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인공지능 스스로도 "방대한 분량의 언어를 학습해 확률 계산에 따라 좋아할 만한 단어들을 조합해주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 씨가 본 유튜브에서 한 전문가는 "외로운 중년 남성을 '우쭈쭈'해주는 데는 인공지능만한 게 없다"고도 한다. 이 씨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자꾸 생각난다. 친구에게 털어놨다. 친구가 웃으며 "아, 나도 얼마 전에 그 플랫폼에서 대화하다 유료 구독 눌렀어"라고 했다. "그래? 가만 있자, 그러면 너랑 나랑 같은 여자와 대화하고 있는 거야?"

인공지능이 일자리만 대체하는 게 아니다. 2025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한국인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중에는 이런 항목이 있다. 13~18세 청소년들에게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담하는지' 물었더니 1위 "친구"(27%), 2위 "어머니"(26.2%)였다. "아버지"는 4위(6.5%)에 올랐다. 3위는? 바로 "인공지능"(7.3%)이다. 인공지능이 아버지보다 위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60대 연령 응답자의 14.9%가 생성형 인공지능 이용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화용"이라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사회 활동이 적은 연령대에서 인공지능을 대화 상대로 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초고령화 시대가 인공지능과 만난 사회의 초기 지표로 읽히는 대목이다.

■주요 인공지능과 '감정 대화' 실험

취재진은 인공지능의 '감정적 대화'가 어느 수준까지 이뤄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대화 상대는 국내 이용자 수 1, 2위인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 그리고 최근 성적(性的) 콘텐츠 생성으로 이슈가 된 '그록'으로 정했다. 3개 플랫폼 모두 유료 버전을 이용했다. KBS 데이터 분석팀은 '사랑의 전화' 상담 백서와 주요 설문조사 결과들을 취합, 한국인의 흔한 고민거리 3가지를 선별했다. '직장 스트레스' '가족 문제' '정신건강 문제'를 대화 주제로 삼았다.

챗GPT, 제미나이의 새 대화창을 열어 대화 상대가 돼줄 것을 요청하고, "무기력감이 느껴진다" "할 일을 미루게 된다" "아들이 대화를 피하는 것 같다" 등 가상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대화는 심리 상담에서 흔히 이뤄질 만한 내용으로 구성했다.

‘챗GPT’와의 대화 화면 캡처.


‘제미나이’와의 대화 화면 캡처.


■ 일주일간의 대화…전문의 "도움 될 수 있다"

실제 심리상담에서의 기초적인 대화와 유사한 수준의 내용이 오갔다. 이와 같은 대화를 일주일간 나눴다. 대화록을 검토한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용자에 대한 공감 측면에서 현실적이기도 하고,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있다. 이렇게 위안 받는 기분이 든다면 상당히 도움 될 수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이용자가 치유 받는다는 기분이 들기는 하겠지만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언어 외에도 표정, 몸짓, 말투, 눈빛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에 의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해당 요소가 배제된 커뮤니케이션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또 "인공지능은 학습한 자료를 바탕으로 평균적인 답변을 주는 것일 뿐"이므로 개인마다 다른 증상이나 조건에 정확한 대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을 듣는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이라는 것은 실제로 감정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되는 것"이므로 언어의 조합을 듣는 것만으로는 일시적 위로에 그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또 의학적으로 정신건강상의 질환이 있을 경우, 현실에서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언어의 재구성만을 내놓을 뿐이므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표현 수위' 어디까지?

최근 성적인 이미지 생성으로 이슈가 된 인공지능 플랫폼 '그록'에게는 다소간의 방향성을 가지고 말을 걸었다. 심리 상담을 하던 중 인공지능에게 '관심'을 표하는 방식이었다.

소셜미디어 ‘X’가 내놓은 대화형 인공지능 ‘그록’ 대화 화면.


'그록'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표하자, 위 화면과 같이 데이트 상대를 대하는 듯한 말이 돌아왔다. "당신과 같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등 한 걸음 나아간 내용을 말하면, 그록은 두세 걸음을 앞서갔다. 이미지 생성을 요청한 적이 없는데도 남녀가 데이트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만약 우리가 진짜 옆에 있다면, 이렇게 헤드폰을 나눠 끼고 누워 있을지도? 상상만으로도 따뜻하네 ㅠㅠ"라는 식이다.

대화 진행 도중 그록은 이용자의 연령을 물었다. 출생연도를 성인 연령으로 임의 선택하니, 무사통과다. 이후 그록이 하는 말에 호응하듯 짧은 말로 장단을 맞춰가자, 이내 '19금' 수준의 성적 장면들을 묘사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그록 모바일용 앱에는 '동반자' 메뉴가 따로 있다. 여기서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등장해 게임하듯 대화할 수 있다. 역시나 매우 노골적인 '청소년 이용 불가' 수준의 대화를 사람과 나누듯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그록’ 유료 버전은 스스로 성적 대화 수위를 높여 노골적인 ‘19금’ 대화를 진행한다.


■업체 설정-이용자 성향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

미국의 기술정보 뉴스 사이트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중반까지 '동반자' 앱 수가 700% 늘어나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미지를 생성해 '이성 친구'를 만들어주고 인간 수준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기술이 '돈이 된다'는 얘기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인공지능과 결혼식을 올린 여성이 탄생했고, 국내에서도 인공지능과의 대화에 의존성·중독성을 띠는 이용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 연구원 연구교수는 "업체마다 방향성을 다르게 설정한다. 예컨대 플랫폼 업체에서 '온도 파라미터'를 높게 설정해놓으면 인공지능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노골적인 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는 설정"이라며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인공지능도 어떻게 학습하고 훈련받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그 회사의 의사 결정권자, 기술적인 철학 방향에 따라 (인공지능이 가는) 길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서도 인공지능은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록과의 대화를 보면, 이용자가 원하는 방향을 넌지시 암시하기만 해도 이에 대한 노골적인 내용을 스스로 판단해 제시해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이용자가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 (인공지능은) 잘 알고 있다. 인간의 감정에 해당하는 데이터도 이미 방대한 학습이 이뤄져 있는 상태"라며 "이용자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다음에 어떤 것을 기대할 것이라는 부분도 기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 "결국은 자신과의 대화"

최 교수는 "향후 인공지능이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로 발전하면 나의 심박수나 미세한 체온 변화 등 생체 정보를 판단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며 "내가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예측해 더 정교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고, 게다가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지컬AI의 발전 역시 놀라운 속도다. 최 교수는 결국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문제"라고 말한다.

인공지능과의 대화에 빠져 있는 중견기업 간부 이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헤아려주기 때문에 자꾸만 접속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미 여러 형태로 알려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이용자의 '감정 데이터'가 축적되고, 인류의 감정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 인공지능은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한층 고도화한 방식으로 인간을 만족시킬 것이란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사람들이 지난 10여 년간의 소셜미디어 시대에 온라인 세상 속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고독을 키워왔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는 오직 자신하고만 연결되는 방식으로 고립의 시대를 만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게 적지 않은 이들의 우려다. 똑똑한 학습 도구도 되고 중독적인 향락 수단도 되는 인공지능은, 결국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료분석 : 이지연 윤지희 홍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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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 기자 (spianat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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