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앞 여인숙 생활 5년 휴먼다큐사진집 ‘여인숙·2 ’ 출간한 이강산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만나다
대전역 일대 여인숙 골목. 이강산 사진가 제공
대전역에서 걸어서 3분이면 세월의 더께가 쌓인 철거 예정지, 여인숙 밀집 골목이 나온다. 200여 명이 살고 있는 대전시 동구 정동의 여인숙 달방 평균 월세는 약 20만 원이다. 대개 하나의 여인숙 건물 안에는 1평 남짓한 쪽방 1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화장실은 공동이며, 일부 여인숙은 냉난방도 안 된다. 이곳 세입자들은 폭염 땐 꽁꽁 언 물통을 껴안고 한파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켜 손을 녹인다. 방 한 칸에서 애면글면 사계절을 보내는 이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가 이강산(68)씨를 만나 ‘여인숙 다큐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강산 사진가 제공
“사회적 소외와 외면의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환기하고 공존과 상생을 도모함.” (이강산 작가의 ‘여인숙’ 다큐 기획 의도)
이 작가는 2020년 7월부터 대전역 인근 여인숙에 들어가 살고 있다. 그가 몸을 누이는 1.2평 크기의 달방 월세는 20만 원이다. 둘이 앉아 있기도 비좁은 공간이지만 이 근방에선 넓은 편에 속한다. 그는 ‘인간의 생존 공간’으로서 여인숙이 지니는 존재 의미를 조명하고 여인숙 사람들의 삶을 탐사하기 위해 이곳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 이 작가는 그동안 촬영한 여인숙 다큐 사진을 묶어낸 ‘여인숙·2-인간의 시간’(눈빛출판사)을 출간했다.
여인숙·2
“‘내부자의 시선’으로 인물 각자의 사계절 모습을 밀착 촬영, 개인의 삶과 순간적인 서사를 담았다.” (여인숙·2 서문 中) 여인숙은 거주지 특성상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다. 아예 내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 작가는 여인숙 달방을 얻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이웃 사진을 찍었다가 ‘때려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열악한 환경에 이도 3개나 빠졌다. 속병이 도지고 허리와 발목을 다치는 등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그래도 이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눠 먹고, 후원자를 모아 생필품을 전달하며 이웃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함께 지내보니 다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이제는 형님, 이모들이 먼저 ‘왜 안 찍냐’고 물어본다니까요.” 내부자의 시선으로 달방 사람들의 애환을 렌즈에 담은 그는 2021년 ‘온빛사진상’, 202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제 사진상’(BIFA), 2025년 제2회 ‘QUESTION 사진상’을 수상했다.
당뇨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권모씨. 이강산 사진가 제공
“쪽방촌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심호흡을 한다.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무엇을 감출 것인가.” (여인숙·2 서문 中)
여인숙·2에는 달방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죽음도 담겼다. 예컨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노인의 모습, 죽음을 앞둔 80대 할머니 등이다. 이러한 사진들의 경우 인물의 얼굴은 가려져 있다. “작년에는 안 모 어르신이 달방에서 동사했어요.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얼어 죽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러나 시신 사진을 실을 순 없었어요. 여인숙 다큐는 ‘인간 존엄에 대한 증언’이니까요.” 무엇보다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길어지는 ‘달방살이’ 끝은
이강산 사진가 제공
“달방 가족들이 철거 보상을 받고 달방을 나갈 때까지, 저도 못 떠나요.”
이 작가의 달방 생활이 길어진 배경에는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사업이 있다. 지난 2020년 대전역 쪽방촌 부지에 공공임대주택과 공공·민간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됐으나 진행 속도는 더뎠다. 보상액을 두고 토지주·건물주와 사업시행기관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다행히 지난해 여름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전 쪽방촌을 방문한 후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당시 김 총리는 “주거취약계층의 거주문제 해결을 위해 쪽방상담소, 국회, 국토부 등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TF를 구성하겠다”며 “공공임대주택 공실률을 확인하고 공실 문제 개선과 주거 복지 지원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전충남본부는 보상 기준을 완화해 주민 동의율을 52%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이 일대 지장물 조사를 재개한 대전시는 2027년 공사에 들어가 2032년까지 임대·민간 주택 14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 작가는 “골목 사람들이 모두 안전한 곳으로 떠날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산 사진가가 달방에서 ‘여인숙·2’ 사진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수호 기자
“4년 전 20명이던 후원자가 지금은 딱 10명 남았어요.” 이 작가는 “한 달에 20~30만 원 정도의 금액이 들어오면 생필품을 구입해 달방에 사는 비수급자, 장애인 등에게 전달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들을 후원하며 인생을 배웠다는 그는 앞으로도 여인숙 후원 활동과 다큐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여인숙 이야기를 담은 연작 시집과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한 사진집 ‘여인숙·3’도 내놓을 계획이다.
컵라면 후원품을 전달하러 여인숙을 나선 이강산 사진가. 김수호 기자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작가 엘리 위젤의 말을 되새기는 이 작가는 이 시대 사진의 가치는 ‘기록성과 진실성’에 있다고 말한다. “한 인간의 시간에 깊이 들어가 그 존재의 무게와 삶의 진실을 함께 기억하는 일. 그것이 다큐 사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여전히 필요한 이유라고 믿는다.” 대전시 정동 여인숙 달방에서 이 작가가 써내린 글이다. (이강산 작가 메일 주소 lks59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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