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흔든 3대 역병, 바다가 차가워지면 어김없이 왔다

2026. 1. 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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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의 기후가 바꾼 역사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을 묘사한 15세기 말 네덜란드 화가 조세 리페랭크스의 그림. [사진 위키피디아]
“542년… 역병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 인류가 거의 전멸할 뻔했다… 비잔티움의 질병은 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처음에는 사망자가 평소보다 약간 더 많았고, 그 후 사망률은 더욱 높아졌으며, 나중에는 사망자 수가 매일 5천 명에 이르렀고, 다시 1만 명, 그리고 그 이상에 이르렀다…노예들은 주인 없이 남았고…많은 집들이 비어갔다.”

6세기 역사가 프로코피우스가 집필한 『전쟁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전쟁사』는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벌인 여러 전쟁들을 상세하게 기술한 책이다. ‘대제’로 불리는 유스티니아누스는 쇠퇴 조짐을 보이던 동로마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명철한 통치자였다. 또한 과거 로마 전성기 때의 고토를 대부분 수복할 정도로 영토 욕심이 많은 정복왕이기도 했다. 그의 넘치는 야망과 탁월한 능력은 기력을 잃어가던 제국에 한줄기 빛과 같았다. 동로마 제국은 다시금 옛 영광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기록엔 “6세기 역병에 인류 전멸할 뻔”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의 끝없는 팽창 욕구가 못마땅했던 것인지 하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동을 걸었다. 그가 맞닥뜨린 것은 적의 군대가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역병’이었다. 이른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다.

이 병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팔레스타인을 거쳐 지중해 서부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고열에 시달렸고 사타구니·겨드랑이·귀 뒤에 종기가 생겼다. 종기는 곧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깊은 혼수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의사들의 기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환자를 돌보던 이들마저 병에 걸려 죽어갔다.

치료를 받든 받지 않든 결과는 같았고,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죽은 자의 수가 너무 많아 산 자들이 더 이상 그들을 묻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리지 않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도 생사를 넘나들다 겨우 살아남았다.

이 역병의 정체는 뭐였을까? 프로코피우스는 병자들이 혼수와 광기에 시달렸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종기가 생겼다고 묘사했다. 이는 림프절 페스트(Yersinia pestis), 즉 흑사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우리는 흑사병에 대해 유라시아 전역에서 1억 명에 가까운 인명 피해를 가져오며 중세의 마침표를 찍었던 14세기의 감염병을 보통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약 800년 전에도 그에 필적하는 또 다른 흑사병이 덮쳐 유럽에 깊은 상흔을 남겼던 것이다. 누적 사망자 수로만 따지면 중세 흑사병보다도 그 규모가 더 컸을 거라는 추정까지 나온다. 이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541년 이후 약 200년 동안 20회 이상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역병의 잦은 반복은 식량 부족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영양 결핍으로 면역력 악화를 불러와 역병의 확산 규모를 키운다. 아니나 다를까 6~8세기는 저온 현상이 심했던 ‘고대 후기 소빙기(536년-660년)’를 포함한다. 낮은 기온 탓에 흉년이 들면서 흑사병이 대대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때 유독 기온이 낮았을까?

인위적인 지구 온난화 이전의 기후는 화산활동 그리고 (흑점 수와 관련있는) 태양 활동이 좌우하다시피 했는데, 고대 후기 소빙기가 그랬다.

536년 초 아이슬란드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한 후, 연이어 540년과 547년에 또 다른 화산이 분출했다. 화산에서 방출된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햇빛을 가로막았다. 여기에 태양 활동까지 점진적으로 약화되면서 유라시아 전역에서 기온이 곤두박칠쳤다.

유럽에서는 536년의 화산 폭발 이후 대기근이 3년간 이어졌고, 그 여파로 541년부터 역병까지 확산하면서 동로마제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 사망하는 죽음의 광풍이 몰아쳤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국가의 세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외침마저 늘어났다. 동로마제국은 역병이 돈 지 불과 100년도 되기 전에 제국의 역량을 모두 상실한 채 평범한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2024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는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전한다. 저자들은 바다의 ‘와편모조류’가 종별로 선호하는 바닷물 온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서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600년까지 800년의 해수면 온도 변화를 복원했다. 참고로, 와편모조류는 연안에서 적조현상을 일으키는 원생생물이다.

저자들은 바다퇴적물의 분석을 통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돌던 시기에 이탈리아 반도 주변의 해수면 온도가 뚜렷하게 낮았음을 확인했다. 낮은 바닷물 온도는 이 시기 대기의 온도 또한 낮았음을 의미한다. 저온 현상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이 자료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려준다. 로마 제국을 뒤흔든 또 다른 유행병들인 안토니우스 역병(165~180년)과 키프리아누스 역병(249~262년) 또한 해수면 온도가 크게 낮아졌을 때 발생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흔히 ‘로마 3대 역병’이라 불리는 전염병들이 하나같이 낮은 바닷물 온도와 관련 있다는 점은, 이들 모두가 기온 저하에 따른 식량위기로부터 촉발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안토니우스 역병의 병명은 철인 황제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년)가 속한 가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이 감염병은 천연두 혹은 홍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로마 제국이 겪은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으로 총 사망자 수가 대략 500만 명에 달할 만큼 파괴적이었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꼽으라면, 근대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말했듯이, 5명의 뛰어난 인물이 통치했던 2세기의 ‘오현제 시대’라 할 것이다. 특히 이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아우렐리우스는 현명한 황제로, 용감한 장군으로, 그리고 고결한 스토아 철학자로 당대와 후대에 많은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지닌 자질을 하늘이 시기라도 했는지 그는 재위 기간 내내 격무와 안토니우스 역병에 시달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180년 아우렐리우스가 사망에 이른 원인 또한 아마도 이 병의 후유증일 거라는 추측이 많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깊이 성찰한 데에는, 그가 직접 겪어야 했던 역병의 참혹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 전염병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항복하는 게르만족을 묘사한 조각. 로마 ‘오현제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아우렐리우스는 재위 기간 내내 격무와 안토니우스 역병에 시달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그리고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 또 다른 감염병이 로마를 덮쳤다. “창자는 끊임없는 설사로 녹아내리고, 구토는 체력을 고갈시키며 눈은 충혈되어 피로 물든다.” 이 글은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가 당시의 역병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249년에서 262년까지 로마 제국 전역을 휩쓸며 수백만 명을 사지로 내몰았다. 게르만족의 침입과 30명에 가까운 군인 황제들의 난립으로 이미 정국이 어지러웠던 상황에서 역병의 확산은 사회의 혼란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학자들은 235년부터 284년까지를 ‘위기의 3세기’ 혹은 ‘군인 황제 시대’라 부른다.

안토니우스 역병과 사투를 벌였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나, 키프리아누스 역병이 만연할 때 황제 자리를 놓고 다퉜던 군인들 모두 게르만족의 침입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때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의 국경에 자주 출몰한 이유는 분명했다. 기온 저하에 따른 흉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전쟁 빈도는 치솟았고 제대로 먹지 못한 서민층을 중심으로 역병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와 같이 로마 3대 역병과 중세 흑사병까지 모두 저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근 경험한 코로나19는 어떻게 그토록 위력적일 수 있었을까? 주지하다시피 현 시대의 걱정거리는 온난화이지 기온 저하는 아닌데 말이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 인간이다. 과거의 전염병이 기후 변화로 인한 흉작과 영양 부족, 즉 면역력 저하와 맞물려 발생했다면 현대의 전염병은 무분별하게 생활 공간을 확장하고 있는 인간 탓이 크다. 서식처 상실로 오갈 데가 없어진 야생 동물들이 인간과 접촉하는 빈도가 점차 늘고 있다. 전염병의 잦은 반복을 원치 않는다면 무엇보다 우리의 욕심부터 줄여야 한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UC 버클리에서 생물지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 『한국인의 기원』 『기후의 힘』 『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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