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14] 손에 넣으면 잊어버리는 것들

정수윤 작가·번역가 2026. 1. 3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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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곳은 산 아래 옥탑방. 아침마다 투명한 유리창에 얼음이 끼어 저 너머 마을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태양이 떠오르길 기다린다.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얼음 알갱이만큼 아름다운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금보다 은보다 순수하게 반짝이며 조금씩 물방울로 변해 맺혔다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멍하니 감탄하며 바라보다 스스로 묻는다. 그래, 이 좋은 걸 가졌으면서 넌 뭐가 그리 불만이고 불안해. 글쎄, 이 집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거? 여전히 쓸쓸한 통장 잔액?

겨울 아침의 창문 풍경. 살얼음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빛의 알갱이들을 만들어낸다. /정수윤 작가·번역가

그때가 생각난다. 30대 때 여럿이 월세를 나누어 내는 공용 작업실. 주인장이 방 세 칸짜리 한옥을 빌렸는데, 처음엔 야심 차게 방 하나에 책상 세 개씩 구겨 넣었다가 하나씩 빼고 여섯 명이 썼다. 겨울이면 툇마루에 앉아 눈 내리는 걸 구경하고, 봄이면 마당에 모여 차를 마시고, 여름이면 해산물이고 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고, 가을이면 감을 깎아 처마에 매달아서 곶감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 좋았는데, 그땐 또 혼자 쓰는 작업실이 그렇게 갖고 싶었다. 옆 사람 타자 소리나 마루에서 나는 수다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 곳 말이다.

20대 때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컵을 씻고, 커피를 내리고, 테이블을 닦으며, 혼자 노트북 가져와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러워했다. 저런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내놓을 텐데. 물론 지금은 그 시절 젊음이 가장 그립다. 며칠 전 강아지와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데 올라오던 할머니가 말한다. “나도 강아지가 있었어요, 16년 살다 갔는데, 그때 정말 행복했는데, 그땐 그걸 몰랐어요, 행복하세요.” 순간 울컥했다. 이제 창문에 낀 얼음이 다 녹고,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겨울 아침 햇살 아래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흐르고 있어요. 고요히 하늘을 가르는 새 한 마리가 우리 모두를 쓰다듬는다.

얼어붙은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 /정수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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