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 7년 만에 유죄…“직권 없어 남용 없다” 1심 판단 깼다

사법부 권한을 키우기 위해 대법원장이 재판에 불법적으로 관여했다는 ‘사법 농단’ 사건에 유죄가 선고됐다. ‘양승태 대법원’의 조직적인 재판 개입에 대해 1심은 ‘직권이 없어 남용도 없다’는 논리로 면죄부를 줬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했다. 역대 대법원장의 범죄가 법원에서 확인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서울고법 형사14-1부(재판장 박혜선)는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2019년 2월11일 구속기소된 지 7년 만이다.
사법농단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법원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을 일컫는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대법원의 업무를 줄이고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고법원 설치를 숙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 사건은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던 이탄희 판사가 법원 내 개혁적 연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영향력을 축소하라는 취지의 업무 지시 등을 받은 뒤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론화됐다. 이후 법원은 세차례에 걸친 진상조사를 진행했고 사법행정권 남용이 의심되는 여러 사례를 찾았지만 사법 농단 연루 판사들의 반발도 거셌다.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야 했지만, 김 대법원장은 2018년 6월15일 대국민담화를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일벌백계의 칼을 검찰에게 넘겨준 꼴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고, 수사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였다. 대대적인 수사 끝에 검찰은 2019년 2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등 대법원 수뇌부를 47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의 혐의는 △‘박근혜 청와대’나 대법원의 이익을 위해 재판에 관여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줬으며 △조직 보호를 위해 판사 비위를 은폐·축소하고 △공보관실 운영비 3억5천만원을 법원장 격려금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특히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재상고심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 ‘박근혜 청와대’의 ‘관심 사건’ 재판에 관여하고 △헌법재판소 견제를 위해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 내 재직기간 산입 조항 사건을 심리하던 서울남부지법 재판부의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제청을 가로막았으며 △정당 해산 결정 이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에 관여하고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정보 및 동향을 수집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또 △국제인권법학회 영향력 축소 및 법관들의 비공개 인터넷 카페인 ‘이판사판야단법석’을 와해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서기호 전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등 비판적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심 재판부(재판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2024년 1월26일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 농단이 의심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직권 없이 남용도 없다”는 법리도 동원했다. 형법 123조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적용한다.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통상적으로 직권남용죄는 직권이 없는 이의 ‘월권’은 처벌하지 않는다. 1심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기 때문에 권한을 남용할 수도 없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서 “원심과 같은 구조로 접근하는 경우 법원에 계속 중인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대한 제3자의 관여 행위와 같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할 권한’은 애당초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제3자의 재판개입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어떠한 사안에서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성립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심의 논리대로라면 ‘재판 관여’라는 불법적 행태를 직권남용 혐의로 처벌하지 못해 “재판의 독립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헌재 견제를 목적으로 재판에 관여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우선 재판부는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 재판부가 교직원연금법의 사립학교 재직기간 산입 조항을 한정위헌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는데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이를 제지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한정위헌 심판은 대법원의 법률 해석에 대한 위헌 여부를 헌재에서 판단 받는 것이다. 이는 최고 법원이자 법률 해석의 최종적 해석권자로 자임해 온 대법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당시 법원행정처는 서울남부지법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취소하도록 했고, 실제 재판부는 단순위헌 취지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정당 해산 결정이 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헌재의 의원직 박탈 결정은 위법”이라며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사건에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관여한 혐의도 유죄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2015년 11월 “헌재가 헌법 해석·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으로 내린 결정이기에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사건을 각하(소송 요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 본안 판단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법원이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서울고법 재판부에 전달한 혐의도 인정됐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공무원이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그 위법성의 정도는 불법행위책임에 그치는 경우,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형사처벌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등으로 다양”할 수 있고 “형사처벌은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가장 무거우므로,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인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기본권 제한에 관한 최소침해의 원칙을 참작하여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며 그외 혐의는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사단’으로 대표되는 검찰 권력이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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