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가 드러낸 동일인 제도의 구멍[박상영의 경제본색](13)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최근 쿠팡을 상대로 진행된 공정위 조사의 핵심 쟁점은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의 실질적인 경영 참여 여부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공정위는 김 의장의 친족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개인이 아닌 ‘쿠팡 주식회사(법인)’를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현행법상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정 예외 조건을 충족할 경우 법인 지정을 허용해주는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김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한 것이 드러날 경우, 김 의장으로 동일인이 바뀔 수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확정될 경우 쿠팡을 둘러싼 규제 지형은 뒤바뀌게 된다. 기존에는 쿠팡 법인 위주의 감시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김 의장을 중심으로 배우자와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이 지분을 보유한 모든 계열사가 공정위의 직접적인 사정권에 들어온다. 김 의장은 매년 계열사 현황, 임원 및 주주 명부 등 기업집단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직접 신고해야 하며, 자료 누락이나 허위 사실이 발견될 경우 본인이 직접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한층 강화된다. 현재 공정위가 쿠팡의 ‘부당 지원행위’를 제재하려면 해당 거래가 시장 경쟁을 저해했다는 점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규제가 적용된다. 이 경우 경쟁 제한성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지분 이상만 보유하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이 귀속됐다는 사실만으로 제재할 수 있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공정위가 이번 조사에서 김 부사장의 경영 참여를 입증하더라도 향후 김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동일인이 법인으로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동일인 변경 검토 배경엔 복잡한 셈법
이에 공정위는 동일인 판단 기준에 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국내 계열사 매출액이 일정 비율을 넘으면 자연인으로 동일인을 지정하는 방안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경우 해외 매출 비중이 큰 삼성과 SK는 오히려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오는 5월 동일인 지정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방안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정위가 돌연 태도를 바꿔 쿠팡의 동일인 변경을 검토하고 나선 배경에는 단순한 요건 확인 이상의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표면적으로는 쿠팡이 법인 동일인 지정의 예외 요건을 여전히 충족하는지 살피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상은 김 의장의 ‘책임 회피’를 방치하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최근 쿠팡 내 산업재해와 불공정 행위 등 각종 현안이 터져 나올 때마다 김 의장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의 화살은 요리조리 피해왔다. 여기에 ‘미국인’이라는 국적을 방패 삼아 국내 총수들이 짊어지는 엄격한 감시망에서 홀로 벗어나 있다는 ‘역차별 논란’까지 거세지자 공정위로서도 더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비판을 공정위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2023년 당시 공정위는 동일인 판단 기준을 담은 시행령과 지침을 제정하면서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예외적으로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마련했다. ①자연인과 법인 중 어느 쪽을 동일인으로 보든 기업집단 범위가 같고 ②자연인인 동일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직접 출자하지 않아야 하며 ③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④자연인과 친족, 국내 계열사 간 자금 대차·채무보증이 없는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는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2024년 공정위는 쿠팡이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며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당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김 의장의 동생 부부가 쿠팡Inc 소속 미등기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도 “이사회 참여 등 경영 참여가 없는 것으로 소명 받아 예외 조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쿠팡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와 관련해 한국 쿠팡 고위 임원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업무 지시를 한 정황으로 볼 때, 여전히 한국 쿠팡의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처럼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존재하는데도 일정한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동일인 지정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쿠팡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함에 따라 쿠팡 계열회사가 핵심 사업 기회를 김 의장이나 그 친족에게 제공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처벌이 어려웠다. 사업 기회 제공을 제재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일인 지정 원칙 강화할 법령 개정 불가피
김 의장이나 그 친족이 국내 회사를 운영하더라도 이 회사가 기업집단의 계열사가 아니어서 이를 위장계열사로 제재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위장계열사 지정은 실질적인 지배를 입증해야 하지만, 동일인이 법인이라 친족 회사 연결 고리가 약해 제재 근거가 불명확하다.
동일인 제도는 1986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첫 번째 개정인 1986년 12월 ‘경제력집중 및 기업집단’이라는 용어가 법령에 추가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도 동일인 지정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요건이 제시되지 않았다.
뒤늦게 공정위는 2세·3세로의 경영권 승계 본격화, 외국 국적을 보유한 동일인과 친족의 등장 등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2023년 12월 ‘동일인 판단 기준에 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특히 외국인 동일인 판단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아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실제로 공정위의 이 같은 목적은 달성됐을까? 이번 사태만 보더라도 공정위는 오히려 기업이 동일인을 총수로 할지 기업으로 할지 선택지만 추가로 마련해주면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보다 불확실성만 키운 꼴이 됐다.
이번 쿠팡의 동일인 지정 검토는 공정위가 마련한 제도의 실효성 한계를 드러낸 계기가 됐다.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실질 지배자를 보호하는 허점이 노출됨에 따라 자연인 중심의 동일인 지정 원칙을 강화할 법령 개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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