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곽정은 "인정 받았는데 왜 공허했을까"...명상에 빠져 박사까지 된 사연
월간지 기자로 13년 살았다. 2013년 '마녀사냥'이란 방송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아슬아슬 선을 잘 타넘으면서 야한 얘기도 곧잘 해 남자들의 짓궂은 농담까지 다 받아칠 수 있는 여자, 개방적인 스타일로 연애 상담 잘해주는 언니 캐릭터였다.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사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던 시절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저기서 알아봐주기 시작하더니 돈도 쉽게 벌었다. 어디가나 마이크를 쥐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원래도 "내가 좀 똑부러진 면이 있지"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이런저런 대접까지 이어지니 구름 위를 노닐 듯 살아가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슬럼프가 왔다. 월간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프리랜서 방송인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연애도 엉켜들었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일어났다. 잘 된다 싶더니 뭐가 이래, 싶던 2016년 그 때 만난 게 명상이었다. 친구가 너무 권하니까 따라가긴 하는데, 속으론 '가만히 앉아 눈 감고 숨만 쉬는 게 뭐라고' 싶었다.
그런데 정신차리고 보니 엉엉 목 놓아 울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를 평가하는 입장에 서 있었을 뿐, 있는 그대로의 나와 제대로 연결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그 몇 분 사이에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6년 첫 명상, 엉엉 울었다
이게 뭔가 싶어 곧바로 인도에 가서 명상학교를 등록했다. 2018년에는 아예 한양대에서 상담심리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현대의 상담심리를 공부하다보니 이 중 많은 부분이 불교에서 왔다는 걸 깨달았다. 내친 김에 동국대에서 선학(禪學)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한양대 등 몇몇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방송활동을 이어가면서도 "그래도 명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아 8년간 사부작사부작 어떻게든 꾸준히 공부를 이어간 결과"다.
방송인, 아니 명상인 곽정은이 낸 책 '어웨어니스'는 말하자면 그 공부의 중간 결산인 셈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진지한 책이다. 코 끝 호흡에만 주목하는 사마타 수행법을 시작으로 수행처로 가서 새벽 4시에서 밤 9시까지 하루에 18시간 이상 수행만 했던 경험 등 석박사 과정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직접 실천해봤던 것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꽤 괜찮은 경험이 될테니까 나 따라 한번 해봐요"라는 제안이다.
-명상, 어떻게 빠져들었나.
"2016년이었다. 나 스스로는 나를 똑부러지고 똑똑한 사람이라 믿었는데 '그게 다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 때 이틀짜리 명상 프로그램을 우연히 접해보곤 빠져들었다."

-그러다 불교에까지 도달하게 된건가.
"그렇다. 어머니가 여전히 독실한 권사님이신, 그 어머니를 따라 20년 간 교회를 열심히 다닌 딸이었는데 그렇게 됐다. 그런데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게 어떻게 보면 결국 불교에서 왔다. 그래서 그 근원을 쫓아가다보니 동국대에서 선학을 공부한 거다. 종교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마음의 부담은 없었다. 내가 초기 불교 공부한다고 스님이 될 것도 아니고. 그보다는 심리학이나 철학 같은 학문으로 접근하는 거니까. 2,500여년 전 부처라는 사람이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였는가, 라는 관점이다. 어렵긴 했다. 불교 철학이나 용어도 낯설었고 초기 불교를 기록한 언어인 팔리어 공부를 하면서 원전을 읽어나가야 했다. 그렇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내 삶에서 괴로웠던 부분들이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독실한 권사님 딸, 초기 불교에 빠지다
-종교 이전에 철학이다?
"맞다. 물론 이게 선학이고 또 교수님들도 스님들이시고 그러니 종교적인 부분을 완전히 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저는 이게 종교 이전의 철학, 인간에 대한 철학이라 생각한다. 부처님조차 나를 신으로 모셔라, 불상을 만들어라 하신 게 아니다. 진리를 구하라, 너 자신을 믿으라, 라고만 얘기하셨다. 그런 차원의 공부인 거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와닿았는가.
"음. 그간 살면서 '고통'이라는 걸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생활 초창기 때 다들 비슷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알게 됐다. 인정받고 사랑받으면, 그 인정과 사랑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의 문제가 남는다는 걸. 어릴 때는 몰랐던 문제였다. 거기에 비해 불교는 아예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는 잘 모르고 와닿지 않다가 나이가 좀 드니까 무릎을 치게 되는 거였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풀렸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나.
"돌이켜보니 그랬다. 내가 기쁨이다 행복이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고통이었고, 내가 끊임없이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그러면서 더 고통스러워졌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남들에게 연애 조언을 한다면서도 '나를 인정해줘' 이런 생각으로 너무 가득 차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고통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갈애(渴愛)라고들 한다.
"그러니까 채워도 채워도 계속 소금물을 마시는 것 같은 그런 상태가 된다. 예기치 않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내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도 했는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던 내가 직업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건 얼추 다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공허하고 외로운가. 거기에 대해 명상이 답을 줬다."

-명상은 언제 하나.
"아침 30분은 기본적으로 한다. 온전히 스스로의 호흡만을 보려 한다. 졸리기도 하고 무릎도 아프고 잡생각도 나고 쉽지 않다. 흔히 이 세 가지, 그러니까 통증, 졸음, 망상을 '명상의 세 짝꿍'이라 부르는데 그걸 이겨내는 과정이 어렵다. 수행처에 들어가서 하루에 밥 두 번 먹고 하루 온종일 앉아 수행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뭣하고 있나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수행을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우리가 일상에선 머리를 쓴다. 똑똑하다, 지적이다 하는 현대인들은 모두다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행은 머리를 뺀 나머지로 살아가는 경험이다. 머리에 스쳐간 어떤 생각에 매몰되고 휩싸일 게 아니라 머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믿지 않고 그저 몸으로 모든 이 순간을 지나가는 경험이다. 이 수행을 2주 정도 하면 머리의 작용은 거의 멈춘다고 보면 된다."
-낯선 경험이겠다.
"물론 잡념도 일어난다. 하지만 생각이 사라지는데서 오는 평온함이 익숙해지고 거기에서 오는 희열도 느끼다가, 그 희열마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고나면 내가 똑똑하다고,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너희들에게 조언하는 언니라고 하는게, 이 모든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신비 체험 같은 건 없나.
"아, 그런 적이 한 번 있다. 명상을 깊게 하다보니 한번은 머리가 확 열리면서 우주가 내 안으로 다 쏟아져들어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안 잊혀지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런 걸 자주 겪나.
"물론 그런 경험은 경계하라는 게 스승님 말씀이다. 그런 걸 또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니까. 그런 신비경험을 자꾸 찾거나 구하는 것 또한 마음을 해친다. 좋았던 경험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다."
-어웨어니스라는 게 그런 의미인가.
"한국 말로 풀자면 '알아차림'인데, 그냥 지금 몇시인지 안다는 식의 리얼라이즈(realise)와는 다른 수준의, 수행을 통해 얻는 매우 깊은 상태의 자각 같은 걸 말한다. 고요함과 이완과 집중 같은 모든 훈련 뒤에 찾아오는, 완전한 현존을 깨달았을 때 도달하는 상태다. 궁극적 지혜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보자는 게 이번 책의 핵심이다."
초기 불교에서 배운 현대 심리학
현대 심리학이 말하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라는 게 있다.
대개 이런 과정을 거친다.
우선 내가 마음이 힘들 때 어떤 방법을 썼는지 떠올려본다.
자학하고 말았는지, 쇼핑이나 운동을 했는지 등등
그 다음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는다.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을 그 감정, 생각을 그 자체로 천천히 음미한다.
그리고 그 고통, 불안 등을 그 자체로 객관화시키는 인지적 거리두기를 한다.
'내가 화가 나'가 아니라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감정이 화야'라고 객관화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명상 과정과 동일하다.
-그렇게 되면 어떤 면이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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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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