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곽정은 "인정 받았는데 왜 공허했을까"...명상에 빠져 박사까지 된 사연

조태성 2026. 1. 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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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기자로 13년 살았다. 2013년 '마녀사냥'이란 방송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아슬아슬 선을 잘 타넘으면서 야한 얘기도 곧잘 해 남자들의 짓궂은 농담까지 다 받아칠 수 있는 여자, 개방적인 스타일로 연애 상담 잘해주는 언니 캐릭터였다.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사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던 시절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저기서 알아봐주기 시작하더니 돈도 쉽게 벌었다. 어디가나 마이크를 쥐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원래도 "내가 좀 똑부러진 면이 있지"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이런저런 대접까지 이어지니 구름 위를 노닐 듯 살아가던 시간이었다.

지난달 서울 성수동 LCDC SEOUL 1층, 카페 이페메라에서 만난 작가 겸 칼럼니스트 곽정은. 명상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들여보는 경험 자체가 인간을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그러다 슬럼프가 왔다. 월간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프리랜서 방송인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연애도 엉켜들었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일어났다. 잘 된다 싶더니 뭐가 이래, 싶던 2016년 그 때 만난 게 명상이었다. 친구가 너무 권하니까 따라가긴 하는데, 속으론 '가만히 앉아 눈 감고 숨만 쉬는 게 뭐라고' 싶었다.

그런데 정신차리고 보니 엉엉 목 놓아 울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를 평가하는 입장에 서 있었을 뿐, 있는 그대로의 나와 제대로 연결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그 몇 분 사이에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6년 첫 명상, 엉엉 울었다

이게 뭔가 싶어 곧바로 인도에 가서 명상학교를 등록했다. 2018년에는 아예 한양대에서 상담심리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현대의 상담심리를 공부하다보니 이 중 많은 부분이 불교에서 왔다는 걸 깨달았다. 내친 김에 동국대에서 선학(禪學)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한양대 등 몇몇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방송활동을 이어가면서도 "그래도 명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아 8년간 사부작사부작 어떻게든 꾸준히 공부를 이어간 결과"다.

방송인, 아니 명상인 곽정은이 낸 책 '어웨어니스'는 말하자면 그 공부의 중간 결산인 셈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진지한 책이다. 코 끝 호흡에만 주목하는 사마타 수행법을 시작으로 수행처로 가서 새벽 4시에서 밤 9시까지 하루에 18시간 이상 수행만 했던 경험 등 석박사 과정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직접 실천해봤던 것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꽤 괜찮은 경험이 될테니까 나 따라 한번 해봐요"라는 제안이다.

-명상, 어떻게 빠져들었나.

"2016년이었다. 나 스스로는 나를 똑부러지고 똑똑한 사람이라 믿었는데 '그게 다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 때 이틀짜리 명상 프로그램을 우연히 접해보곤 빠져들었다."

2013년 시직한 jtbc의 프로그램 '마녀사냥'. 곽정은은 이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얻었다. JTBC 제공

-그러다 불교에까지 도달하게 된건가.

"그렇다. 어머니가 여전히 독실한 권사님이신, 그 어머니를 따라 20년 간 교회를 열심히 다닌 딸이었는데 그렇게 됐다. 그런데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게 어떻게 보면 결국 불교에서 왔다. 그래서 그 근원을 쫓아가다보니 동국대에서 선학을 공부한 거다. 종교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마음의 부담은 없었다. 내가 초기 불교 공부한다고 스님이 될 것도 아니고. 그보다는 심리학이나 철학 같은 학문으로 접근하는 거니까. 2,500여년 전 부처라는 사람이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였는가, 라는 관점이다. 어렵긴 했다. 불교 철학이나 용어도 낯설었고 초기 불교를 기록한 언어인 팔리어 공부를 하면서 원전을 읽어나가야 했다. 그렇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내 삶에서 괴로웠던 부분들이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독실한 권사님 딸, 초기 불교에 빠지다

-종교 이전에 철학이다?

"맞다. 물론 이게 선학이고 또 교수님들도 스님들이시고 그러니 종교적인 부분을 완전히 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저는 이게 종교 이전의 철학, 인간에 대한 철학이라 생각한다. 부처님조차 나를 신으로 모셔라, 불상을 만들어라 하신 게 아니다. 진리를 구하라, 너 자신을 믿으라, 라고만 얘기하셨다. 그런 차원의 공부인 거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와닿았는가.

"음. 그간 살면서 '고통'이라는 걸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생활 초창기 때 다들 비슷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알게 됐다. 인정받고 사랑받으면, 그 인정과 사랑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의 문제가 남는다는 걸. 어릴 때는 몰랐던 문제였다. 거기에 비해 불교는 아예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는 잘 모르고 와닿지 않다가 나이가 좀 드니까 무릎을 치게 되는 거였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풀렸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나.

"돌이켜보니 그랬다. 내가 기쁨이다 행복이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고통이었고, 내가 끊임없이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그러면서 더 고통스러워졌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남들에게 연애 조언을 한다면서도 '나를 인정해줘' 이런 생각으로 너무 가득 차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고통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갈애(渴愛)라고들 한다.

"그러니까 채워도 채워도 계속 소금물을 마시는 것 같은 그런 상태가 된다. 예기치 않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내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도 했는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던 내가 직업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건 얼추 다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공허하고 외로운가. 거기에 대해 명상이 답을 줬다."

서울 성수동 LCDC SEOUL 1층, 카페 이페메라에서 만난 곽정은 작가는 초기 불교에서 인간 심리와 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최주연 기자

-명상은 언제 하나.

"아침 30분은 기본적으로 한다. 온전히 스스로의 호흡만을 보려 한다. 졸리기도 하고 무릎도 아프고 잡생각도 나고 쉽지 않다. 흔히 이 세 가지, 그러니까 통증, 졸음, 망상을 '명상의 세 짝꿍'이라 부르는데 그걸 이겨내는 과정이 어렵다. 수행처에 들어가서 하루에 밥 두 번 먹고 하루 온종일 앉아 수행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뭣하고 있나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수행을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우리가 일상에선 머리를 쓴다. 똑똑하다, 지적이다 하는 현대인들은 모두다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행은 머리를 뺀 나머지로 살아가는 경험이다. 머리에 스쳐간 어떤 생각에 매몰되고 휩싸일 게 아니라 머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믿지 않고 그저 몸으로 모든 이 순간을 지나가는 경험이다. 이 수행을 2주 정도 하면 머리의 작용은 거의 멈춘다고 보면 된다."

-낯선 경험이겠다.

"물론 잡념도 일어난다. 하지만 생각이 사라지는데서 오는 평온함이 익숙해지고 거기에서 오는 희열도 느끼다가, 그 희열마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고나면 내가 똑똑하다고,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너희들에게 조언하는 언니라고 하는게, 이 모든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신비 체험 같은 건 없나.

"아, 그런 적이 한 번 있다. 명상을 깊게 하다보니 한번은 머리가 확 열리면서 우주가 내 안으로 다 쏟아져들어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안 잊혀지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런 걸 자주 겪나.

"물론 그런 경험은 경계하라는 게 스승님 말씀이다. 그런 걸 또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니까. 그런 신비경험을 자꾸 찾거나 구하는 것 또한 마음을 해친다. 좋았던 경험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다."

-어웨어니스라는 게 그런 의미인가.

"한국 말로 풀자면 '알아차림'인데, 그냥 지금 몇시인지 안다는 식의 리얼라이즈(realise)와는 다른 수준의, 수행을 통해 얻는 매우 깊은 상태의 자각 같은 걸 말한다. 고요함과 이완과 집중 같은 모든 훈련 뒤에 찾아오는, 완전한 현존을 깨달았을 때 도달하는 상태다. 궁극적 지혜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보자는 게 이번 책의 핵심이다."

초기 불교에서 배운 현대 심리학
현대 심리학이 말하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라는 게 있다.
대개 이런 과정을 거친다.

우선 내가 마음이 힘들 때 어떤 방법을 썼는지 떠올려본다.
자학하고 말았는지, 쇼핑이나 운동을 했는지 등등

그 다음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는다.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을 그 감정, 생각을 그 자체로 천천히 음미한다.

그리고 그 고통, 불안 등을 그 자체로 객관화시키는 인지적 거리두기를 한다.
'내가 화가 나'가 아니라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감정이 화야'라고 객관화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명상 과정과 동일하다.

-그렇게 되면 어떤 면이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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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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