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이냐 ‘독자생존’이냐…한동훈, 정치생명 가를 세 갈래 길
대구 보선 출마설 솔솔…비례대표 중심 친한계는 ‘신당’ 선긋기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2023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보수진영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마운드에 올랐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게시판 논란'이라는 변수에 발목을 잡혀 그라운드 밖으로 밀려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후광 속에 정치권에 들어와 비대위원장, 당대표까지 초고속으로 치고 올라간 한 전 대표는, 자신이 직접 발탁했던 장동혁 대표에 의해 끝내 국민의힘에서 축출당했다.
'정치적 사형선고'처럼 보이는 이 순간에도 그의 앞에는 몇 갈래 길이 열려 있다. ①'백의종군' 후 당권 교체를 노리는 복귀 시나리오 ②6월 지방선거·보궐선거라는 실전 무대에서 생존을 증명하는 길 ③새로운 판을 짜는 창당의 길이다. 문제는 한 전 대표 입장에서 어떤 길을 택하든, 이제 '야인'이 된 그의 앞에는 긴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재기 도모하나
법적 대응은 한동훈 전 대표가 당에 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 중 하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다. 법원에 징계 효력을 멈춰 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하는 것이다. 친한(親한동훈)계로 꼽히는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월28일 시사저널TV 《정품쇼》에 출연해 "한 전 대표 본인이 최종 결정을 하겠지만 아마 할 수 있는 것들은 할 것"이라며 "가처분이든 뭐든 윤리위의 잘못된 행위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기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친한계 내부에서) 더 많다"고 전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손익계산은 분명하다. 가처분 신청을 할 경우 법원이 한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법적 판단을 통해 사법적 결백을 입증할 수는 있겠으나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적잖다. 한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이기든 지든, '쟤는 또 법으로 하느냐'는 인식이 국민에게 남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처분 신청 없이 당내 복귀를 기다리는 길도 있다. 이 시나리오는 세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우선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고, 그 책임을 지고 장동혁 지도부가 총사퇴해야 하며, 이후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가 최고위 의결을 통해 한 전 대표의 제명을 취소해야 한다. 이 과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의힘 당규에 따라 그는 제명일로부터 5년 동안 재입당이 불가능하다.
한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오는 6월 지방·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제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가 주요 광역자치단체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풍문이 빠르게 퍼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1월29일 최고위 후 기자들과 만나 "(한 전 대표에게) 조언한다면 서울시장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정도가 본인의 변수를 키울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부산시장 출마도 하나의 선택지로 거론되지만 현실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보수 강세 지역에서 야권 후보끼리 표를 나눠 갖는 구도가 형성되면 오히려 여권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40% 가까이 얻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 우리가 제3 지대에서 득표하기가 쉽겠느냐"며 "결과적으로는 '민주당만 도와줬다'는 욕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상징성은 있지만 실익이 없는 승부라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그는 지방선거보다 보궐선거에 더 무게를 두고 출마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배지'를 달지 못하면 정치적 체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총선 출마를 거듭 시도했지만 끝내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결과 정치권 내 입지도 확보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야인에 머물러야 했다. 한 전 대표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를 국회로 향하게 하는 동력 중 하나다.
친한계 "신당 만들 생각 전혀 없다"
이 경우 핵심 변수는 '어디에 출마하느냐'다. 취재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 지역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진영에 비교적 안전한 승부처에서 정치적 재기를 노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미 대구 지역의 지방선거 판이 짜이고 있다. 추경호 의원이 지난해 12월29일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을 떠나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화했고 윤재옥(달서을)·유영하(달서갑) 의원 역시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세 곳 모두 현역 의원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보궐선거 대상이 되는 지역이다.
다만 이 시나리오 역시 한 전 대표에게 결코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의 심장이라 해도 지역 기반 없는 정치 신인에게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PK 지역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저널에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그 현역 의원의 사실상 '지원사격'이 필요하다"며 "현역들이 다져놓은 지방 조직과 인적·물적 자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과연 그들이 한 전 대표를 위해 움직이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전 대표에게는 '창당'이라는 길도 존재한다. 국민의힘에서 '당원권 정지'라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준석 대표가 걸었던 길이다. 당내 복귀도, 보궐선거 출마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창당은 독자 노선을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거론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의 기성 정치에 실망한 중도층과 청년층의 표심을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다면 그가 파괴력 있는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한 전 대표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형성한 이른바 '10만 팬덤'은 정치적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창당은 정치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시나리오지만 동시에 가장 큰 위험을 동반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직과 자금, 인재라는 정당의 기반을 단기간에 갖추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다. 특히 '인재'가 최대 난관이다. 창당이 현실화하려면 국민의힘 내 친한계 의원들의 동반 이탈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들 상당수가 초선이거나 비례대표 신분이라 정치적 결단에 제약이 따른다. 이미 친한계 정성국 의원도 1월28일 BBS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한동훈 전 대표가)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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