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고별하는 반스… 40년 기억 담은 마지막 소설[북리뷰]
줄리언 반스 지음│정영목 옮김│다산책방
“작가로서 마지막에 다다랐다”
독자와 보낸 시간 감사인사도
픽션·논픽션·자서전 경계 사이
70대 중반 소설가 ‘나’ 시점서
20대에 헤어져 60대 재회한
남녀 두 친구 이야기 풀어내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줄리언 반스가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18개 나라에서 동시에 출간된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그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라는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또한 나의 마지막 책입니다. 실제로 이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하고 쓴 책이고, 그런 점에서 독자에게 건네는 감사의 인사이자 작별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원제 ‘Departure(s)’가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해야 할 말이 있을 때까지만 써야 하는데, 작가로서 이제 마지막에 다다랐다”는 그의 말을 더 명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30대 중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단에 나왔지만 문학과 저널리즘 글쓰기를 병행하며 세상과 소통했던 그는,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마지막 문단에서 독자와 함께한 모든 시간을 오롯이 기뻐했다. 그는 자신을 있게 해준 그 시간들이 모두 독자들 덕이라며 이렇게 헌사한다. “오랜 세월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기쁘게 여겼기를 바란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즐거웠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일러 줄리언 반스는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책”이라고 말한다. 20대에 만났으나 헤어지고, 다시 60대에 이르러 재회했으나 역시 파국으로 끝나는 남녀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친구이자 소설가인 70대 중반의 ‘나’는 미련도, 후회도 없이 풀어낸다. “두 사람 각자에게, 따로, 절대 그들에 관해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마지막 작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가 줄리언 반스 자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나’는 완치 불가능한 혈액암을 앓고 있는데, 줄리언 반스 역시 몇 해 전 희소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고 최근 밝혔다. 작품은 그의 전작들이 그렇듯 ‘기억’의 다름과, 다름이 일으킨 세월의 작용들을 열거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억의 다름, 즉 “40여 년의 기간” 동안 세 사람은 접점이 없었던 엄연한 사실에서 온 현실의 괴리다. 줄리언 반스는 “잊힌 기억들이 … 당신을 고속 공격하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말할 정도다. 1960년대 중후반 다닌 옥스퍼드의 기억은 “학부 과정을 망쳤다”고 할 정도로, 다소간 잿빛이다. 문학은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프랑스어 공부로 돌아가며, 문학을 배워야 했다. 다만 최우등은 못 하고 “우등에 그쳤다”는 말과 “망쳤다”는 말이 한 문단에 들어간 것만큼은 피했으면 좋았겠다, 혼자서 생각할 뿐이다.
스티븐과 진을 만난 건 그즈음이었다. 두 사람은 나를 통해 “서로를 발견”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스티븐은 “참을성 있고 친절”했다. 자유분방함이 없는 건 그 시절 젊은이들의 표본 같았다. 진은 약간은 화려하지만 다소 불안정한 집안 출신이었다. 다만 “사물, 생각, 사람들로 직진”해 들어가는 성격이었다. 이내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대리 로맨티시즘”이라 부를 만한 쾌감을 누렸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열여덟 달 남짓. 나는 결혼에 “찬성하는 쪽”이었지만, 두 사람은 나에게 각각 와서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결혼하거나 아니면 헤어져야 할 지점에 이른 것 같아”라는 말을 남겼고, 헤어졌다.
혈액암 투병 등 ‘나’의 이야기가 이어진 끝에 60대에 이른 스티븐과 진의 재회가 등장한다. 스티븐이 나에게 진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절대 돌이키려 하지 마라. 자는 개는 그냥 둬라, 등등”의 말로 만류했다. 나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주선했고, 두 사람은 두 번째 연애에 돌입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40년 전 그랬듯 각각 ‘나’를 찾아와 이별의 이유를 찾았다. 이유는 나와 스티븐, 나와 진의 대화로 독자들이 직접 확인하면 더 나으리라.
한 가지 분명한 건, 결별의 이유인 생활 방식의 다름이 결국 서로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줄리언 반스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작품이 여럿이기에, 줄리언 반스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독자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272쪽, 1만8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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