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곰은 잘 놀라고 불안행동… 먹이 감량 계획 세워 줄여가니… 암곰·살찐 곰부터 겨울잠 들어[최태규의 동물 돌봄]

2026. 1. 30. 09:2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최태규의 동물 돌봄 - (2) 곰을 굶기다… 공존 실험의 시작
12월, 행동 느려지고 친근하던 활동가에 겁먹기도
3주 식단 감량 플랜… 13마리중 일부 자러 들어가
연말돼도 말똥말똥한 몇은 예민 반응, 항우울제 처방
1월중순 결단… 약 끊고 굶기니 짚 끌어모아 늦은 동면
게티이미지뱅크

# 불안한 결단

2021년부터 우리가 곰을 돌보기 시작한 두 해 동안은 겨울에 곰을 재우지 않았다.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른 종이지만 불곰의 연구에서 곰의 체온은 물과 먹이를 끊고 나서 5주 동안 천천히 떨어졌다. 곰이 잠에 드는 과정과 체온 하강이 같은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곰이 겨울잠에 드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먹이를 끊고 나서 일주일 동안 잠들지 못하고 배고파서 먹이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물단체가 동물을 겨울잠 재우기 위해 굶기는 것은 학대인가, 아닌가? 곰이 느낄 그 허기는 인간이 아니라 곰이라서 견딜 만한 것일까? 아니면 일정에 쫓겨 고작 두 끼를 굶고 어지럽다며 쩔쩔매는 오늘날 나의 스트레스와 비슷할까?

동물을 돌보는 일은 언어를 아직 쓰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과 비슷한 점이 있다. 대개 돌봄은 사랑의 노동으로 포장된다. 돌보는 이의 선의나 돌봄 받는 이의 행복을 안일하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돌보는 이와 돌봄 받는 이의 권력 차이가 클수록, 돌봄 받는 이의 필요가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울수록 돌봄은 기대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기 쉽다. 돌보는 이가 충분히 감응하지 않고 돌봄 노동의 방향과 질을 결정해 버리면 동물은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밥을 하루에 한 번 주면 한 번 먹고, 두 번 주면 두 번 먹는다. 웬만한 폭력적 대우에도 누군가 나서서 구해 주지 않는다. 동물 돌봄은 대단한 위험을 품고 있는 일이다. (인간) 사회가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는다. 동물은 나름대로 의사 표현을 하지만 사회가 인지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동물은 이미 크게 다치거나 죽은 뒤다. 그래서 동물 돌봄은 동물의 표정과 행동을 읽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동물의 표현을 제대로 읽지 못해 본의 아니게 동물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사건은 어디에서나 늘 일어나고 있다. 겨울잠을 재우는 일도 어쩌면 하나의 나쁜 사례가 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결단은 불안을 떨치게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몸을 움직일 방향을 정하고 행동이 시작되면 머물던 과거의 자리에 불안도 덜어 놓고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다만 우리 돌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애쓰면 되는 것이다. 곰을 돌본 지 삼 년째 겨울, 우리는 곰을 재워 보기로 결정했다. 온전히 인간의 판단이다. 농장에서 웅담채취용으로 길러지던 시기에도 겨울잠을 잔 경험이 있는 곰들이 있었고, 겨울잠 자는 중에 병들어 죽은 적은 있어도 굶어 죽는 곰은 없었다는 농장주들의 증언도 도움이 됐다. 지리산에 곰을 복원하는 국립공원공단 야생생물보전원을 찾아가 곰의 겨울잠에 대해 배웠다. 그들은 20여 년 동안 야생곰의 겨울잠을 연구했다. 야생 재도입에 실패한 곰들을 회수해 시설에서 기르며 겨울잠도 재우고 있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먹이량을 줄이다가 적절한 순간에 먹이를 끊으면 대부분 바로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남 구례까지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정확히는 마음을 조금 놓기로 했다.

곰을 겨울잠 자게 하려는 다른 중요한 이유는 돌보는 일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강원 화천의 겨울은 제법 차다. 곰을 통제하는 철제 시설물은 매일 밤 얼어붙어서 아침마다 토치로 녹이고 정을 대어 망치로 땅땅 때려야 열렸다. 여닫는 철문은 스무 개가 넘는다. 아침에 문을 다 여는 데만 수십 분이 걸렸다. 정 소리에 깬 곰들은 ‘밥을 주려면 빨리 주지 저러고 있네’ 하는 표정으로 뱅뱅 돌았다. 곰이 깨어 있다면 물도 매일 갈아 줘야 한다. 계곡에서 끌어올리는 펌프는 겨울에 쓰지 못해서 양동이로 곰이 마실 물을 데우고 길어 와야 했다. 돌봄활동가들은 곰을 챙기려다 자꾸 다쳤다. 곰을 재울 수 있으면 재우고 사람도 살아야 했다.

# 곰을 재웠다

그해 12월, 우리 곰들은 점점 느리게 행동하고 더 많이 자기 시작했다. 재우기로 하고 나서 곰이 졸려 하는 행동에 우리는 더 민감해졌다. 곰이 졸려 하든 말든 사람이 하는 돌봄 일과를 이어 갈 때보다 작은 변화를 더 잘 알아채게 되었다. 졸린 곰은 쉽게 놀라고 불안해하는 행동을 보였다. 평소 친근하게 지내던 돌봄활동가와 옆 칸의 곰에게도 겁을 먹었다. 야생동물에게 잠을 자는 상태는 위협으로부터 취약해진다는 의미가 있으니 곰의 공포 반응은 논리적인 행동이다. 빈틈없는 통계는 아니지만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암곰들부터 겨울잠에 들어가고, 살이 많이 찐 곰들이 쉽게 겨울잠에 드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야생 상황을 떠올려 보면, 먹이 경쟁에서 물리적으로 수곰에 밀리는 암곰이(일본 아종 반달가슴곰은 수곰이 암곰보다 두 배 가까이 크다) 먼저 자 버리는 게 속 편하다. 체내 지방을 충분히 쌓았으면 더 먹으려고 애쓸 필요 없이 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문헌과 망상을 오가며 무사히 곰이 잠들기를 빌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무사히 깨기를.

우리는 3주의 식단 감량 계획을 세우고 먹이를 줄여 나갔다. 열세 마리의 곰 중 몇은 먹이를 끊지도 않았는데 자러 들어갔다. 또 몇은 줄어든 먹이에 항의하듯 정형행동을 보이며 배고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말이 되어도 해가 바뀌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해 보이는 곰들이 남았다. 오히려 허기가 져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항우울제를 먹이고 갖은 애를 썼지만 주먹만큼만 주는 먹이를 먹으며 며칠을 버텼다. 우리는 미안하고 두려웠다. 1월 중순이 되었고 또 한 번 결단이 필요했다. 눈 딱 감고 아예 굶겨 보자. 약도 끊자. 그랬더니 그 곰의 행동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부자리 격으로 넣어 준 짚을 끌어모아 잠자리에 모으기 시작했고 잠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이틀 후부터는 나오지 않았다. 열세 마리는 모두 늦은 겨울잠에 들어갔다.

# 공존하기 실험

올해 우리는 세 번째 겨울잠을 준비한다. 두 번의 겨울을 무사히 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곰을 살찌워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 조절할지, 유독 먼저 졸려 하는 곰을 어떻게 대할지도 감을 좀 잡았다. 잠자는 공간을 고르는 취향도 곰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누구는 CCTV가 없는 굴에 들어가 잠들어 겨우내 또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누구는 겨울잠용으로 넣어 준 물탱크에 들어가 짚에 푹 파묻혀 자는 모습을 화면에 드러낸다. 돌봄활동가들은 그들의 24시간을 각각의 방에 달린 CCTV로 돌려보고 기록하고 공유한다. 사람에게라면 스토킹에 가까운 감시지만 곰들은 감시가 이루어지는지도 모르고 불쾌함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과 다른 존재를 돌보는 방법이다.

우리가 돌보는 곰들은 야생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는 곰이다.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사람에게 의존해 사는 삶만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야에는 곰이 살 공간도 마땅찮다. 한반도에서 50년 동안 이어지며 야생곰을 멸종시킨 웅담채취산업은 이렇게 끝나 간다. 그 과정에서 온전하지 못한 야생동물로 우리에게 남겨진 동물이다. 처분 연령이 지나 남겨진 곰을 사람이 다 도살하고 끝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곰들이 늙어 죽기 전까지는 당분간 함께 살기로 했다. 내년 봄에 곰이 깨면 우리는 또 혹한에 웅크리고 자느라 시큰거릴 그들의 관절을 걱정할 것이다. 동물과 공존하는 것은 내내 신경 쓰이는 실험이다.

■최태규 프로필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 성공회대 ‘동물권과 사회 연구’ 전공 초빙교수. ‘도시의 동물들’, ‘동물의 품 안에서’(공저) 등을 썼다.

■ 용어설명 - 아종

현대 분류학의 시조로 불리는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는 생물의 형태를 기준으로 위계적 분류의 틀을 만들었다. 그는 우리가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워 익숙한 ‘종(Species)-속(Genus)-과(Family)-목(Order)-강(Class)-문(Phylum)-계(Kingdom)’의 기초를 제안했다. 19세기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등의 등장으로 종 아래에 더 세분할 수 있는 변종, 아종, 신종 등의 개념이 등장했다. 다윈은 종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변한다고 믿었으며, 아종 개념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20세기 현대 분류학은 기존에 가장 중요했던 형태뿐 아니라 진화와 유전을 기반으로, 지리적으로 벌어지는 번식 격리를 고려해서 아종을 구분하기로 약속하고 지금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아종 간에는 서로 번식도 가능하고 유전적으로 완전히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합의로 이합집산이 이루어진다. 얼마나 달라야 서로 다른 아종인지는 계속 바뀐다. 한국의 사육 곰은 대부분 반달가슴곰이라는 종에 속하지만, 1960∼1970년대 아시아 각국에서 수입되어 온갖 아종이 섞여 있다. 한반도에 원래 서식했고 지리산에 복원된 우수리(Usuri) 아종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보호받지만, 그 외 아종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보호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