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쟁”…‘한동훈 제명’ 후폭풍 일파만파, ‘보수 내전’에 “자멸의 길” 우려도
韓 “YS의 길 간다”…‘반드시 돌아온다’ 선언, 지지층 결집
친한계 추가 징계설 확산…‘심리적 분당’에 지방선거 빨간불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우리가 이 당과 보수의 주인이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 기다려 달라. 반드시 돌아온다." 1월29일 오후 국회 소통관, 당 지도부로부터 '제명'을 통보받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저를 제명할 수는 있어도 국민을 위한 좋은 정치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굳은 표정의 한 전 대표는 '향후 계획' 등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국회를 나섰다. 그의 뒤에 선 지지자들은 성난 목소리로 "장동혁을 제명하라" "진짜 보수 한동훈"을 외쳤다.
'보수 내전'의 서막일까. 한동훈 전 대표 제명 후폭풍이 정치권을 강타한 모습이다. 단식을 마친 장동혁 대표가 당무 복귀와 동시에 한 전 대표에게 제명이라는 '레드 카드'를 빼든 가운데, 국민의힘 친한(親한동훈)계 의원들은 장 대표를 위시한 당권파의 '정적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전 대표를 따르는 '10만 팬덤'이 벌써부터 대규모 '장동혁 퇴진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민심의 역풍을 우려하며 '장동혁 퇴진'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양 계파의 충돌이 격렬해지면서 국민의힘이 사실상 '심리적 분당 상태'에 직면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보수 내전의 결과, 나아가 차기 지방선거의 판은 '무소속 한동훈'의 행보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대여(對與) 대표 저격수 한동훈의 총부리가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옛 친정' 국민의힘을 향할 경우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강제 하선을 통보받은 한동훈, 그리고 정적을 제거한 뒤 국민의힘 방향타를 잡게 된 장동혁, 이들의 명운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수는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한동훈 "우리가 보수의 주인, 반드시 돌아온다"
국민의힘은 1월29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당원게시판 여론 조작'을 이유로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처분을 내린 것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제명 처분을 내린 지 16일 만이다. 이날 20분가량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에는 의결권이 있는 9명만 남은 채 안건이 거수 표결됐다. 친한계 우재준 청년최고위원은 반대 의사를 표명한 뒤 자리를 떴고, 나머지는 거수로 찬성 의사를 밝혀 '찬성 7명, 기권 1명(양향자 최고위원), 반대 1명'으로 제명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12·3 비상계엄 후 이어진 '한동훈의 암흑기'는 더 길어지게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 직후 당권을 잃었던 한 전 대표다. 이후 원외에서 잠행했지만, 그의 시선은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한 전 대표도 관련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내가 왜 불출마를 선언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출마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위의 제명 결정으로 국민의힘 후보로서의 한 전 대표의 재기 계획은 수포가 됐다. 한 전 대표는 향후 5년간 최고위 의결 없이는 재입당이 불가해 6월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는 물론, 다음 총선과 대선에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할 수 없다.
한 전 대표가 정치적 벼랑 끝에 몰리면서 국민의힘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당장 그를 따르는 친한계 의원 16명이 "장동혁 지도부는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집단 성명을 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고동진 의원은 "명확한 사실관계와 논리도 없이 감정적으로 전직 당 대표의 정치 생명을 끊는 건 정당사에 유례없는 일"이라며 "무엇보다 그동안 당원게시판 문제에 대해 '정치적 찍어내기다. 문제 될 게 없다'며 적극 방어했었던 장동혁 대표가 이번 사태를 주도한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지적했다.

'중립' 지키던 오세훈 "장동혁, 처참한 결정"
국민의힘 현직 원외당협위원장들도 장 대표를 향해 반기를 들었다. 김경진 국민의힘 동대문을 당협위원장 등 24명은 성명을 내고 "장동혁 대표 체제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배제와 숙청은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명백한 퇴행"이라며 "장 대표는 당의 미래를 위해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장 대표를 향한 반발은 당내 친한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한 전 대표의 제명 결정을 "자멸의 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절망하는 국민과 지지자들의 마음을 단단히 세우고 힘차게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 할 때, 장 대표는 우리 당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처참한 결정을 했다"며 "(장 대표는) 절체절명 위기 속 대한민국의 제1 야당의 대표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한동훈 제명'에 대한 맞불로 '장동혁 퇴진' 구호가 확산하면서, 국민의힘이 사실상 '내전' 상황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장 대표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16명의 친한계 의원도 줄줄이 징계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실제 국민의힘 윤리위는 당 지도부를 모욕하는 언행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게도 '탈당 권유' 처분을 내렸다. 당시 국민의힘 윤리위는 결정문에서 "당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이라며 장 대표를 흔드는 행위가 '해당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한 전 대표 제명을 도화선으로 국민의힘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의 충돌도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모습이다. 취재에 따르면, 1월29일 오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송석준 의원은 한 전 대표 제명에 대해 "왜 제명을 하느냐" "차라리 수사 의뢰를 해 진상 규명을 했어야 한다"고 지도부를 강하게 질타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에 맞서 정희용 사무총장은 "당내 문제여서 기존의 경찰 수사협조요청에도 자료제공을 안 하고 있고, 당에서 수사 의뢰를 안 하고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갈등이 확산하면서 국민의힘의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단일대오에도 금이 가는 모습이다. 당장 한 전 대표 제명 발표 당일 그의 지지자들이 당이 '쌍특검'을 요구하며 국회 본관 앞에 설치한 천막 농성장으로 몰려가 "지도부 사퇴" "장동혁 어딨냐"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농성이 거세지면서 당직자들은 결국 천막 입구를 폐쇄했다. 이들은 1월31일 대규모 '장동혁 퇴진 집회'도 예고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과 특검 공조에 나섰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특검 공조와 같은 중차대한 일들이 이런 일(한 전 대표 제명)에 가려져 안타깝다"고 밝혔다.
지방선거를 불과 4개월가량 앞두고 국민의힘이 '심리적 분당' 상태로 치달으면서, 차기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주자들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의 근심도 커져가는 모습이다. 논란 끝에 낙마했으나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범보수 주자들을 영입하고 있는 여권과 달리, 국민의힘이 당내 '왼쪽 주자'들을 축출하는 '뺄셈 정치' 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불만과 우려다. 국민의힘 한 당협위원장은 한 전 대표 제명에 대해 "배에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공이 없으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며 "지금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할 시기에 한때 배의 선장이었던 사람을 마음에 안 든다고 바다로 던져버린 꼴"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TK 빼고 모두 졌던 '2018 악몽' 재현되나
당 지지율이 20%대 박스권에 갇힌 상황에서 내홍까지 벌어지자, 야권 일각에서는 '2018년 지방선거 참패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계열)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2석(대구·경북) 확보에 그치며 보수 정당 역사상 전례 없는 참패를 당했다. 실제 아직까지 TK(대구·경북) 외 지역에서 출사표를 던진 국민의힘 주자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시사저널TV에 출연해 "한동훈 전 대표 제명은 장동혁 대표가 친윤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 던진 희생양이자 땔감"이라며 "길게 보면 (경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장동혁의 대권 플랜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문제는 탄핵에 반대한 세력이 탄핵에 찬성한 사람을 쫓아낸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라며 "과연 이 상태에서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치를 수 있겠나. 중도층이 볼 때는 석고대죄할 사람들이 반성하자는 사람을 쫓아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의 내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전장 한복판에 선 '무소속 한동훈'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전 대표가 과연 출사표를 던질지에 정치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에 치명적인 시나리오는 한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하고 친한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별도 세력을 구축해 지방선거에서 '한동훈 신당 후보'를 내는 것이다. 다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친한계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의원들은 일단 당을 지키고 기다리고 있어야 된다. 한 전 대표가 다시 돌아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한 전 대표가)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플랜B'는 한 전 대표가 보수 텃밭 TK나 PK(부산·울산·경남) 등 격전지에 무소속으로 출마, 3파전에서 승리해 원내 집입에 극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의 정치적 위기는 가장 큰 '정치적 기회'로 탈바꿈할 수 있다. 앞서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21대 총선 과정에서 탈당한 뒤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 후보로 당선돼 1년3개월 만에 복당한 전력이 있다.
다만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한국 정치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 전 대표가 광야에서 정치적 활로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부당한 제명을 당하면서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말씀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국민을 믿고 계속 가겠다"는 한 전 대표의 각오와 달리, 그가 YS처럼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장은 "한 전 대표가 'YS의 길'을 말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YS와 계엄 반대 외에는 정치적 자산이 적은 한 전 대표의 입지는 큰 차이가 있다"며 "당을 떠나 독자 행보를 하기에는 개혁신당이라는 또 다른 경쟁자가 있기에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결국 한 전 대표가 복당을 노리려면 무조건 국민의힘과 다툴 수도 없다"며 제명 후 국민의힘 당권파와의 '거리 조절'이 '무소속 한동훈'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침, 언제 병원에 가야 할까 - 시사저널
- 키가 작년보다 3cm 줄었다고?…노화 아닌 ‘척추 붕괴’ 신호 - 시사저널
- 은밀함에 가려진 위험한 유혹 ‘조건만남’의 함정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시사저널
- 소음 문제로 찾아온 이웃에 ‘끓는 기름’ 뿌린 60대의 최후 - 시사저널
- “갈아탄 게 죄?”…‘착한 실손’이라던 4세대 보험료의 ‘배신’ - 시사저널
- ‘가난과 질병’이 고독사 위험 키운다 - 시사저널
- “너네 어머니 만나는 남자 누구냐”…살인범은 스무살 아들을 이용했다 [주목, 이 판결] - 시사
- 통일교부터 신천지까지…‘정교유착 의혹’ 수사 판 커진다 - 시사저널
- 오심으로 얼룩진 K리그···한국 축구 발목 잡는 ‘심판 자질’ 논란 - 시사저널
- 청소년 스마트폰 과다 사용, 건강 위험 신호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