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적인가? 라클라우 “정치적 구성의 원리” [.txt]
“배제된 요구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려”
경제결정론 넘어선 ‘포스트 마르크스’ 결정판

‘포퓰리즘’은 오늘날 가장 흔하게 쓰이면서도 가장 오용되는 정치 용어다. 합리적 대화보다 대중의 분노와 욕망에 기생하고, 비이성적 선동에 기대며, 민주주의 타락을 부추기는 ‘병리적 현상’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뚜렷이 합의된 정의가 없이 ‘대중적 인기 영합주의’ 정도로 통용된다. 그 부정적 이미지는 나와 다른 상대를 배제하고 비난하는 정치적 낙인으로 악용된다. 그런데도
포퓰리즘이 좌에서 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작동하는 현상은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르헨티나 출신 정치이론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1935~2014)의 후기 대표작 ‘포퓰리즘 이성’(원제는 On Populist Reason, 2005)은 이런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가 아니라, 정치가 성립하는 논리로 재정의한다. 애초 포퓰리즘이 엘리트 관료주의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나온 사실을 환기하자.
책을 열면, 서문도 나오기 전 한 페이지 전체에 딱 2행의 짤막한 헌사가 눈길을 끈다. “샹탈에게, 30년이 지난 지금”. 라클라우의 학문 여정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문구다. 샹탈은 그의 아내이자 평생의 학문적 동반자 샹탈 무페(영국 웨스트민스터대 교수)다. 30년 전, 그러니까 1975년은 두 사람이 결혼한 해다. 앞서 라클라우는 아르헨티나 사회당 중심의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군부 정권의 탄압을 받았으나, 영국 역사학의 대가 에릭 홉스봄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건너와 에식스 대학 교수로 안착했다. 라클라우와 무페의 운명적 만남과 학문적 동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은 1985년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번역서는 2012년 출간, 후마니타스)을 출간했다. 현대 정치철학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힌 문제작이었다. 이들은 노동계급 중심의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이라고 비판하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확장해 급진적이고 다원화한 민주주의 담론을 주창했다. ‘포스트 마르크스’의 탄생을 알린 선언문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나온 ‘포퓰리즘 이성’은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 열어놓은 정치적 공간에서 어떻게 ‘인민’이라는 정치적 주체가 만들어지는지를 포착한 후속작이자 이론적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라클라우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포퓰리즘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으로 ‘포퓰리즘 이성’을 통한 민주주의의 재구성 가능성을 탐색한다. 근대 자유주의 전통은 정치의 이상을 합리적 토론과 제도적 중재에서 찾았다. 포퓰리즘은 대중적 정동에서 비롯한 ‘비이성적’ 정치 왜곡이라는 혐의로 폄하됐다. 라클라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묻는다. 정치는 정말로 ‘합리적 관리’로 환원될 수 있는가. 그리고 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포퓰리즘 이성’의 핵심은 포퓰리즘을 하나의 정치적 구성 원리로 설명하는 데 있다. 사회에는 수많은 개별적 요구가 고립된 상태로 존재한다. 라클라우는 이를 ‘민주적 요구’로 개념화한다. 임금 인상, 주거권, 지역 불균형 해소처럼 서로 다른 요구들이 제도적 정치 과정으로 해결되지 못할 때, 이 요구들은 단절된 상태를 넘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라클라우는 이런 연대를 ‘등가적 접합’이라 부른다. “수많은 ‘민주적 요구’는 등가적 접합을 통해 더 넓은 사회적 주체성을 구성”하는데, 바로 이런 접합을 라클라우는 ‘인민적 요구’라고 정의한다.

개별적이고 고립된 ‘민주적 요구’가 ‘인민적 요구’로 전환하고, “인민이 잠재적인 역사적 행위자로 구성되기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정치가 출현한다. 앞서 1993년 샹탈 무페가 ‘정치적인 것의 귀환’(번역서는 2007년, 후마니타스)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평등에 방점을 찍는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정치 과정의 본질적 상태라고 갈파한 것과도 맥락이 닿는다.
라클라우는 고립된 민주적 요구가 등가적 접합에 따른 인민적 요구로 전환되는 동력을 ‘비어 있는 기표’, ‘공허한 보편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유·정의·민중 같은 말은 구체적 의미가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요구를 담아낼 수 있다. 이 공허한 기표를 둘러싸고 의미를 채우는 투쟁이 벌어질 때 정치적 헤게모니가 형성된다. 정치란 결국 의미를 고정하려는 시도와 이를 전복하려는 시도의 끊임없는 충돌이라는 것이 라클라우의 관점이다.
이런 분석은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바꿔놓는다. 완전히 합의된 사회, 갈등이 제거된 정치는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정치의 실종에 가깝다. 라클라우에게 포퓰리즘은 갈등을 가시화하고, 배제된 요구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다. 이 지점에서 라클라우의 이론은 그의 오랜 동료이자 파트너였던 샹탈 무페가 말한 ‘적대적 다원주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무페는 라클라우와 사별한 지 4년 뒤 출간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번역서는 2019년, 문학세계사)에서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급진화가 의제가 되는 순간 데모스(demos, 인민·민중)를 민주주의의 본질적 차원으로 강조하는 포퓰리즘은 충분히 적합한 정치 논리가 될 것”이라며 라클라우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의 이론은 실제로 유럽에서 스페인 ‘포데모스’와 그리스 ‘시리자’ 같은 정치 운동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라클라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부터 자크 랑시에르가 말한 ‘인민’ 개념의 재구성, 슬라보이 지젝과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의 좌파 정치사상까지 두루 검토한 뒤, 이제는 “‘계급투쟁’과 같은 상투적이고 거의 의미 없는 공식들을 넘어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포퓰리즘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회피해온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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