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편의점이 '바퀴' 달고 달리는 이유 [저출생 고령화]

손유지 2026. 1. 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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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손으로 달리는 ‘CU이음가게’ 탄생
찾아가는 유통...공익과 데이터가 만난다
고령사회에 피어난 유통의 새로운 실험

[지데일리] 도심의 밤거리를 비추는 편의점 불빛은 이제 한국 사회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익숙한 풍경이, 정작 가장 필요한 곳에서는 사라진다.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벽촌과 섬마을, 대중교통이 끊긴 시골길 끝자락에는 편의점의 불빛조차 닿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달걀 한 판, 우유 한 통을 사기 위해 차로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한다. 젊은 세대는 도시로 떠났고, 남겨진 노인들은 불편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누구나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라지만, 그 ‘누구나’의 범주에는 여전히 빠진 사람들이 있다. 
BGF리테일이 시니어가 운영하는 ‘CU이음가게’를 기반으로 식품 사막화 지역을 찾아가는 ‘이동형 편의점’ 사업을 시작했다. 노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생필품 접근이 어려운 주민에게 생활 편의를 전하는 공익 모델로, 기업·지자체·시니어가 함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유통 실험이다. AI생성

BGF리테일이 이 현실의 틈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해법을 들고 나왔다. ‘시니어의 손으로 굴러가는 이동형 편의점’, 바로 ‘CU이음가게’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사업의 출발점은 명료하다. “편의점을 움직이자.” BGF리테일은 그 한 문장으로 ‘식품 사막화’ 문제를 바라봤다. 식품 사막화란, 도시의 윤택한 소비망 밖에서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을 의미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농촌’이지만, 실상은 쇼핑의 사각지대다. 

 

편의점 본사가 이 문제에 직접 뛰어든 이유는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유통의 공공성을 다시 정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해법의 축을 ‘시니어 일자리’와 ‘생활 복지’라는 두 키워드로 묶었다.

BGF리테일은 지난해 4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노인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단기적 지원이 아닌 구조적 고용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노년층이 직접 점포를 운영하는 ‘CU이음가게’다. 이곳의 점주는 대부분 60세 이상 고령층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동시에 지역 주민과의 연결망을 유지한다. 이 사업의 이름인 ‘이음’은 세대와 지역을 잇는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다섯 곳의 시범점이 운영 중이다. 그리고 올해, ‘CU이음가게’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았다. 바로 휠이 달린 새로운 형태, ‘이동형 편의점’이 출범한 것이다.

첫 시범 사업지는 충남 공주시다. 공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CU 공주신관로점’이 거점 매장으로 선정됐고, 지난 1월 22일 이동형 편의점이 처음으로 계룡면에 들어섰다. 평소엔 마을에 상점 하나 없던 곳, 그날 유일하게 밝은 트럭 안에서 진열대마다 빵, 음료, 라면, 일용품이 차곡차곡 빛났다. 

 

트럭 문이 열리는 순간, 마을 사람들의 표정엔 놀라움이 피어났다. “도시에 가야만 살 수 있었던 걸 여기서 바로 사네.” “추운 날씨에 와줘서 고맙다.” 주민들의 말은 곧 이 사업의 존재 이유를 웅변했다. 판매행위 이상의 의미, 이것이 ‘찾아가는 유통’의 본질이었다.

이동형 편의점의 구성은 단순한 이동 판매 차량과는 다르다. 차량 내부는 진열과 냉장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판매 품목은 계절과 지역 수요에 맞게 달라진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과 냉음료, 겨울에는 온즙류와 즉석국, 라면, 담요류가 중심 제품으로 올라온다. 

 

주민 의견을 수집해 상품을 조정하며, 행사 기간에는 지역축제와 연계하기도 한다. 시니어 점주들은 BGF리테일의 교육을 통해 물품 관리, 판매, 고객 응대까지 직접 담당한다.
시니어 이동형 편의점. BGF리테일 제공

BGF리테일은 본사 차원에서 사업 전체를 지원한다. 지역별 담당자가 매달 운영 데이터를 분석해 ‘판매 최적 상품 리스트’를 제안하고, 물류센터에서는 트럭 이동 경로에 따라 배송 일정을 조율한다. 

 

현장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공급이 가능한 것도 BGF리테일의 전국 물류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품 분석, 재고 관리, 고객 응대 서비스 등은 본사가 직접 컨설팅한다. 민간 자본과 공공의 목적이 조화를 이룬 모델이라 평가받는 이유다.

이 사업에는 한국부동산원이 기부한 재원이 투입됐다. 단순 기부금 형태가 아니라, 공익적 목적을 지닌 사회적 투자에 가깝다. 공주시니어클럽은 인력 운영을 맡고, BGF리테일은 시스템을 제공했다. 세 기관이 한 축으로 이어진 결과, 지역과 기업 양쪽 모두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성과를 얻게 됐다.

이동형 편의점은 월 1회 이상 공주시의 식품 사막화 지역을 정기 방문한다. 하지만 단순한 ‘정기 이동 판매소’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BGF리테일은 장기적으로 이 모델을 재난대응형 ‘생활 인프라 차량’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폭설이나 폭우로 도로가 끊겼을 때, 가장 먼저 마을에 식료품을 공급하는 긴급 유통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이 사업의 사회적 가치는 노년층 고용 창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일할 수 있는 고령층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일자리는 체력이나 기술의 제약으로 접근이 어렵다. ‘CU이음가게’는 그 틈을 메웠다. 

 

시니어들은 본인 능력에 맞는 역할로 매장에서 활동하며, 정년과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물건을 진열하고, 정산을 하며 지역사회와 다시 연결된다. 한 근로자는 “아침에 문 여는 일이 이렇게 기쁜 줄 몰랐다”며 웃었다.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존중 속의 노동이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편의점은 지역 생활의 맥박을 읽는 장소”라며 “시니어들이 이 사업의 주체로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느끼게 되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유통 구조의 혁신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유통 기업이 매출 효율보다 지역 접근성을 우선시하는 실험은 업계에서도 드물다.

 

BGF리테일은 이를 ‘사회형 유통 플랫폼’으로 정의하며, 데이터 기반 운영을 통해 경제적 지속성을 확보하려 한다. 판매 데이터, 계절별 수요, 이동 동선 등을 AI로 분석해 장기적으로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비용 문제다. 이동형 편의점은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이 우선된다. 하지만 차량 유지, 인건비, 물류비를 감당하려면 추가적인 지원금 또는 제도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협약, 공공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니어 인력의 역량과 안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거나, 장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령 근무자가 이를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안전 운전 교육, 체력 보강 프로그램, 젊은 보조 인력 투입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맞춤화다. 지역마다 필요한 상품과 구매력은 달라 일률적 모델로는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가 마을에서는 건어물이나 생필품 수요가 크고, 내륙 농촌 지역에서는 즉석식품이나 반찬류가 인기다. 현지의 소비 특성을 반영해 맞춤형 물류를 구축하는 과정이 필수다.

BGF리테일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사회적 기업 등과 다자 협력체를 꾸리고 있다. ‘CU이음가게’의 모델을 일반 가맹 체계와 병행하지 않고, 독립된 ESG 브랜드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이 사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 초고령사회의 유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편의점 업계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넘어, 공익적 기능을 내재화하는 미래형 모델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BGF리테일은 이동형 편의점을 도서·산간지역 외에도 도시 외곽의 주거형 고령화 마을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고령층이 많은 아파트 단지나 퇴직 인구가 집중된 신도시 지역에서도 이동형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실험 중이다. 또, 지역 농가의 특산품을 함께 판매하는 상생형 유통 모델을 통해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편의점 산업은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에는 ‘24시간 불빛’이 혁신이었지만, 이제는 ‘어디든 찾아가는 온기’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CU의 이동형 편의점은 그 상징적인 변화다. 노년층의 손길로 움직이는 작은 트럭이지만, 그 안에는 지역의 잊힌 삶과 연결된 사회의 의지가 담겨 있다.

편의점의 불빛이 이제 도시를 넘어 마을까지 스며든다면, 이는 사업 확장일 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사회로의 귀환’일 것이다. 기업의 이익과 공익이 맞닿는 지점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가 전국으로 퍼질 때, 한국 사회의 유통 지도가 새롭게 그려질지 모른다. 

 

이 이야기의 본질은 누군가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일상 속에 공평하게 불이 켜지는 세상으로 그 불빛을, 조금 느리게라도, 꾸준히 그리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