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이야기] 두쫀쿠가 가르쳐 준 사과의 기술

김태형 경남도민일보 고충처리인 변호사 2026. 1. 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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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 인정한 안성재 셰프 영상 큰 호응
사과는 내가 성장 중임을 인정하는 용기

새해 초부터 대한민국 디저트 지형도의 최상단에는 이름도 생소한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가 자리하고 있다. 카다이프의 바삭함과 피스타치오의 고소함을 결합한 이 디저트는 SNS를 점령하며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간식이 두바이 현지인들은 알지도 못하는, 한국식 재발명이 낳은 기묘한 유행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행의 한복판에서 세계적인 셰프 안성재의 개인 유튜브 채널이 대중의 뜨거운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발단은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이었다. 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한 것은 초콜릿 속에 마시멜로가 듬뿍 들어간 달콤하고 동그란 공 모양의 디저트였으나, 안성재는 요리사의 자부심과 아빠의 권위, 건강에 대한 염려를 앞세워 딸의 간곡한 요구를 외면했다. 딸은 조리 과정 내내 "진짜 이건 아니다"라며 불안과 걱정을 토로했지만, 그는 "네가 아는 게 다가 아니다"라며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자신의 철학만을 고집한 결과물은 딱딱하고 네모난 '강정'이었다. 전문가라는 견고한 자아에 갇힌 그는, 정작 대화의 대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은 채 자신의 정답만을 내놓았다. 그 결과는 소통의 실패였다.

대중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려 1만 3000명의 네티즌이 단결해 안성재를 '탄원'하고 나섰다. 이들은 사태를 '두쫀쿠 참사'로 규정하며 유쾌한 방식으로 그의 고집을 질타했다. '두쫀쿠가 아니라 두딱강(두바이 딱딱 강정)'이라는 별명부터, '치킨을 달랬더니 백숙을 해준 꼴'이라는 비유까지 쏟아졌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셰프라 할지라도, 상대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는 우습고도 씁쓸한 장면으로 남을 뿐이었다. 대중이 이 장면에 열광한 이유는 단순히 쿠키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소통 불능의 권위주의를 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안성재는 곧바로 'A/S 촬영'을 결정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두쫀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딸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그의 모습은 주방에서의 엄격한 카리스마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시청자에게 예상치 못한 반전과 미소를 안겼다. 결국 혼잣말처럼 내뱉은 "아빠가 미안해, 잘 몰랐어"라는 짧은 고백. 자신의 전문성이 언제나 정답일 수 없음을 인정한 이 투명한 사과는, 1차 시도의 오만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울림을 지녔다. 이 영상은 조회수 80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우리 주변의 수많은 '전문가'와 '리더'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과오가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 뒤에 숨거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태도는 낯설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상보다 스스로 쌓아온 경력과 무결함을 우선시하며, 스스로 만든 방어의 벽 뒤로 숨어버린다.

안성재에게 사과는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딸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자존심보다 상대의 눈높이와 대중의 상식을 앞에 두었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마주하는 경직된 태도는 '사과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과도한 방어 본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틀리지 않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류를 지적받았을 때 그것을 수용하고, 기꺼이 다시 시작하는 유연함에서 나온다.

사과는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성장 중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용기다. 딱딱한 '강정'을 내려놓고, 타인의 동그란 '두쫀쿠'를 함께 굽기 위해 다시 오븐 앞에 설 줄 아는 사람. 완벽함을 고집하기보다 "내가 몰랐어,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의 뒷모습이, 요즘 유난히 귀해 보인다.

/김태형 경남도민일보 고충처리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