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AI 경쟁 알고리즘 아닌, 전력망이 결정
수도권 송전망 ‘계통 포화’ 한계 봉착
대한민국 디지털 경쟁력 퇴화 예고

“AI의 다음 병목은 전기와 변압기다.”
일론 머스크의 이 경고는 초지능 시대의 성패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구동하는 물리적 인프라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AI) 경쟁의 본질은 이미 소프트웨어를 넘어 에너지 인프라 경쟁으로 이동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는 국경을 넘어 빛의 속도로 이동하지만 전기는 여전히 낡은 규제와 관료적 절차에 묶여 있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AI는 혁신이 아니라 전원이 꺼진 모니터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AI 산업의 핵심 축인 경기도는 이 모순이 가장 먼저 터져 나오는 최전선이다. 수도권에 반도체, AI, 데이터센터가 밀집된 경기도의 전력 병목은 고밀도 기술 경제가 직면한 전 세계적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첨단 데이터센터 한 곳이 상시 필요로 하는 100MW 이상의 전력은 수십만 가구의 연간 소비량과 맞먹는다. 그러나 수도권 전력망의 구조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설계에 멈춰 있다. 남·동해안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나르는 송전망은 이미 ‘계통 포화’라는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다. 실제로 수도권의 신규 전력 수전(受電) 신청의 상당수가 거절되거나 유예되는 ‘전력 경색’은 이제 상수가 됐다. 전력 공급 확답을 받지 못해 공장 착공조차 못하는 오늘의 현실은 대한민국 디지털 경쟁력의 고사(枯死)를 예고한다.
문제의 본질은 발전소의 숫자가 아니다.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제때 전달하지 못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병목이 진짜 원인이다. 이제 AI 산업의 경쟁력은 서버 성능이 아니라 그 서버로 들어오는 변압기와 송전선에서 결정된다. 전력망은 더 이상 공공 유틸리티가 아니다. 국가의 연산 능력과 기술 주권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며 21세기 디지털 경제를 떠받치는 기반시설이다.
여기서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시간의 비대칭’이다. 1, 2년 주기로 세대를 교체하는 AI 기술 속도를 인허가부터 완공까지 평균 13년이 걸리는 전력망 행정이 따라잡을 수 없다. 전력망 구축이 1년 지연될 때마다 해당 부지에 들어설 첨단 산업이 창출할 수조원의 부가가치는 증발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이전을 넘어 경기도의 미래를 지탱할 고부가가치 일자리와 세수 구조의 영구적 잠식을 의미한다. 인프라의 병목이 국가 자산의 소리 없는 유출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송전 갈등을 단순한 ‘님비(NIMBY)’로 치부하는 태도는 문제 해결을 늦출 뿐이다. 필요한 것은 도덕적 설득이 아닌 갈등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설계다.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 간의 거리를 가격에 반영하는 지역별 한계 가격제(LMP)를 전격 도입하고 대규모 수요처에는 ‘계통 기여도’에 따른 인프라 분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 기간망 확충을 위한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가동하되 발생한 편익을 인근 주민들에게 ‘에너지 연금’ 형태로 되돌려주는 표준화된 보상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AI 시대의 에너지 전략은 선명해야 한다. 국가 기간망은 전략자산으로서 건설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동시에 소비지 인근에서 전력을 관리하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과 실시간 계통 운영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다.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결단하지 못하는 제도의 속도다.
AI 시대의 경쟁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전기가 먼저 도착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국가 운영의 기본조건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정의 결단이다. 이 결단은 기술 부처의 설명으로 대신될 수 없으며 정부와 정치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문제다. 송전망 하나를 두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기업과 일자리는 조용히 국경을 넘는다. 전력이 흐르지 않는 도시는 지능적일 수 없고 결단하지 않는 행정은 미래를 설계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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