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은둔 청년, 지역사회와 함께 문턱을 넘다”

이현희 기자 2026. 1. 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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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사니다] 56. 양산 청년활동가 안현수
취업 실패·가족 갈등 등으로 은둔 생활 시작
정신의학과 진료 후 현실 속 자신의 모습 인정
청년 희망 하이패스사업으로 회복 동력 마련
성공 사례 아닌 회복 과정 보여주는 모델 목표
7년간 은둔·고립 생활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안현수(39) 씨는 이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청년과 함께 넘어졌던 경험을 숨기지 않고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실천하고 있다. /이현희 기자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스스로 '전직 7년차 은둔형 외톨이'라고 소개하는 안현수(39) 씨는 현재 양산시민통합위원회 복지교육위원, 주민자치회 위원, 청년센터 동아리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와 청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예비 사회복지사이자 청년활동가인 그는 은둔·고립 청년 지원 핵심을 '속도를 존중하는 구조'라고 강조한다.

안 씨는 "은둔·고립 청년 문제는 의지 부족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소진된 상태에서 더 빠른 변화를 요구받아 왔다는 데 있습니다"라며 "'당장 취업', '당장 사회 복귀'와 같은 목표 중심 접근은 오히려 또 다른 좌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관계 형성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며 "선택권이 존중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며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받는 환경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안현수 씨가 지난해 7월 열린 양산가족포럼에서 오랜 은둔과 고립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지역사회와 함께 회복을 경험한 일을 솔직하게 발표하고 있다. /양산시

반복되는 좌절, 멈춰버린 7년

그는 대학 진학 이후 반복된 좌절과 관계 단절로 은둔 생활에 빠졌다. 공무원 시험 탈락과 가족 갈등, 중증 우울증 진단까지 이어진 긴 시간은 그를 고립시켰다.

"처음엔 외부 자극이 사라진 생활이 오히려 평온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잠시 쉬는 시간이라 여겼지만 점차 현실과 단절된 삶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7년이 지나 있었습니다."

은둔 생활 동안 그의 일상은 게임이 지배했다. 온라인에서 그는 상위 랭크에서 유명세를 떨치며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아니었고 딜리트(Delete) 키를 한 번만 누르면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불안은 커졌고, 불안을 잊으려고 다시 게임에 몰두하다 지쳐 잠드는 일상을 되풀이했다.

그러던 2023년 11월 어느 날, 온몸이 벌레에 갉아 먹히는 듯한 환각과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극한 공포가 찾아왔다. '평온'이라 속여온 은둔의 삶이 실체를 드러낸 순간, 그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모에게 처음 도움을 청하고 그제서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스스로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것은 중증 우울증으로 말미암은 무기력 때문이었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극심한 불안장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더는 탓하지 않고 약물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며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고, 쓰레기장 같았던 방을 치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아버지 농장에서 농사일을 돕다 지자체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면서 무너진 삶의 시간은 사회와 연결됐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안현수 씨는 지난해 12월 열린 '제1회 경남청년 성장스토리 콘테스트'에서 7년간 고립·은둔 생활을 극복하고, 나아가 직업상담사와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며 또 다른 고립·은둔 청년 사회 적응을 도와온 공로를 인정받아 버금상을 받았다. /경남도

연결의 힘으로, 다시 사회로

그는 보건소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처음 공공근로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두려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였습니다"라며 "오랜 은둔 이후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볼까 봐 두려웠고, 당시 맡았던 업무가 많은 민원인을 직접 응대하는 일이어서 부담도 컸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향 '양산'은 회복의 기반을 준 소중한 지역이었다.

"양산은 대도시처럼 익명성이 강하지도, 소규모 지역처럼 관계가 과도하게 밀착되지도 않았습니다. 실패해도 낙인이 남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이후 그가 청년센터와 정신건강센터, 주민자치회 등 지역 공공자원들과 차례대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에게 자연스럽게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더는 '도움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주민'으로 바뀌는 경험은 그가 일상을 회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양산은 나를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나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손을 내밀어준 도시였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가 청년센터 '청담' 청년 희망 하이패스사업에 참여한 것은 단지 은둔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갖게 해줬다. '청년 희망 하이패스 사업'은 지역 은둔·고립 청년을 대상으로 전문 상담과 청년 멘토와 관계 형성 등을 바탕으로 단계적 회복과 사회 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또래와 교류하고,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펼치며 사회성과 소속감을 회복해갔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청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청년센터에서 만난 은둔청년에게서 공통으로 느낀 점은 능력이 부족해서 멈춰 있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부분 청년은 이미 여러 차례 도전했고, 반복된 실패와 관계 단절을 경험하며 스스로 과도하게 책임지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라며 "많은 청년이 자신의 어려움을 성격이나 의지 문제로 해석하면서 강한 자기 비난과 낮은 자존감, 사회적 불안을 함께 안고 있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그는 은둔청년이 '다시 시도해도 되는지', '한 번 더 실패하면 회복할 수 있는지'를 두고 두려움이 커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포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회복되는 데 보통 1년 이상, 길게는 2년 정도가 필요하지만 대부분 지원 사업은 1년 단위로 설계돼 막 관계가 형성될 즈음 지원이 끊기는 일이 많았습니다"라며 회복에 필요한 시간과 지원 구조 간 불일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안현수 씨가 '제1회 경남 청년 성장스토리 콘테스트'에서 버금상과 함께 받은 상금 50만 원 전액을 지역청년을 위해 기부했다. 기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이라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당사자가 다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또 다른 청년을 돕는 '선순환 회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양산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진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회복 경험을 개인 서사로만 남기지 않고, 지역자산으로 축적하는 일이다.

그는 "한 사람의 회복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다음 사람의 회복을 돕는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라며 "무엇보다 회복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재 지원 체계는 실제 회복 과정과 어긋나는 일이 많은 만큼 회복 기간의 현실을 반영해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지원모델을 현장과 제도 안에서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양산에서 시도해온 회복경험자 멘토와 청년 동아리 중심 모델을 경남 전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물론 고립·은둔 청년을 돕고 싶은 청년들과 함께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설립도 구상하고 있다.

이제 그는 은둔 청년에게 완벽한 조언자나 성공 사례가 아니라 넘어졌던 경험을 숨기지 않고 회복의 과정을 함께 보여주는 현실적인 롤모델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그는 은둔 생활을 벗어나 만났던 청년들을 떠올리며 "은둔을 겪었던 당사자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고, 사회 안에서 역할을 넓혀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일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저 사람도 해냈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는 말을 들을 때 말보다 삶의 변화가 가장 설득력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도움받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 방식으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보는 일은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죠."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멈춰 있는 시간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스스로 탓하지 말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길은 혼자 완주해야 하는 길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란히 걸어가는 길"이라며 "혼자 버티지 않아도 지역사회에는 아직 말을 건네지 못했을 뿐 손을 내밀 준비가 된 사람과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