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도 이기고 싶어"…파리 올림픽 8강 탈락 후 '도망치듯 사라진' 천위페이→욕망 장착 후 '완전 부활'

박대현 기자 2026. 1. 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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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남방주말' 홈페이지 갈무리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인도네시아 마스터스를 석권한 천위페이(30, 중국)가 파리 올림픽 이후 깊은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던 비결을 귀띔했다.

중국 주간지 '남방주말'은 29일 "천위페이는 도망치듯 떠났던 과거와 부상에 신음한 현재를 모두 지나 다시 코트에 섰다. (나흘 전) 인도네시아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 주춧돌을 마련했다"고 적었다.

"지난해 천위페이는 정확한 판단과 흔들리지 않는 실행력, 솔직한 욕망으로 자신을 다시 붙잡았다. 그는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기고 싶다. 그리고 그 대가를 감당하겠다고 말한다"면서 "이것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다시 싸우는 삶을 선택한 어느 위대한 노장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2025년 8월 30일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준결승 2게임.

천위페이는 리턴 과정에서 오른발을 심하게 접질렀다. 슬로모션 화면에는 발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코트 옆 트레이너와 코치 판단은 명확했다. 더는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 천위페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간단한 응급 처치를 받은 뒤 절뚝이며 다시 코트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전술은 즉석에서 바뀌었다. 점프는 줄이고 네트 플레이를 늘렸다. 힘 싸움 대신 코스 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끝내 21-17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숙적' 안세영(삼성생명)을 꺾었다. 경기 직후 천위페이는 무릎을 꿇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천위페이는 남방주말과 인터뷰에서 “그땐 정말 발목이 너무 아팠다. 안세영을 이길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고통스러웠던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남방주말은 "이 장면은 은유에 가깝다. 고통과 망설임, 미련을 모두 안은 채 다시 코트 위에 서 있는 천위페이 (정신력을) 상징하는 일전"이라면서 "파리 올림픽 이후 그의 시간은 이 한 장면에 압축돼 있다"고 분석했다.

안세영을 파리에서 극적으로 따돌리기 바로 1년 전, 같은 무대에서 천위페이는 다른 방식으로 무너졌다.

2024년 8월 3일 파리 올림픽 여자단식 8강전은 그에게 악몽이었다. 경기는 40분 만에 끝났고 천위페이는 탈락했다.

이후 그는 6개월 휴식을 신청해 대표팀을 떠났고 호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사실상 도피였다. 경기도 보지 않고 라켓도 잡지 않았다. 요리를 배우고 쇼핑을 하고 영어로 영상을 더빙했다.

배드민턴과 거리를 두려 했다.

천위페이는 “처음엔 그저 배드민턴을 피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하나 시간이 흐르자 마음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아, 난 정말 배드민턴을 사랑하고 있구나'를 조금씩 느끼던 중 한 번은 대표팀 선배이자 중국 여자배드민턴 전설인 장닝(51)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답을 구하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절실하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느냐고. 돌아온 답은 짧았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그날 천위페이는 결심했다. 코트로 돌아가 세 번째 올림픽 사이클을 시작하겠다고.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복귀는 쉽지 않았다.

스피드는 떨어졌고 감각도 예전 같지 않았다. 랠리를 오래 이어가는 힘도 부족했다.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을 땐 어린 선수들과 연습 경기조차 버거웠다.

그제야 실감했다. 천위페이는 “회복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온 몸으로 깨달은 시간”이라며 2025년 초반을 회상했다.

그럼에도 천위페이는 '천재형 선수'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부활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데 불과 두세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오를레앙 마스터스를 앞두고 천위페이는 "1회전 탈락만은 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32강전을 돌파하자 서서히 확신이 생겼다. 최소한 3경기, 즉 8강까진 버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목표를 훌쩍 뛰어넘었다. 기어이 결승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비록 결승에서 안세영에게 0-2(14-21 15-21)로 분패하긴 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몸만 완벽히 회복되면 기회는 다시 온다"며 스스로를 다잡았고 이후 천위페이 컨디션은 빠르게 올라왔다. 트로피도 하나씩 따라왔다.

▲ 중국 '소후' 홈페이지 갈무리

가장 큰 변화는 그녀 자신이었다.

호주에서 복귀를 기점으로 훈련 계획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짧은 외유를 마친 천위페이는 더 이상 ‘지시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실행안을 내놓는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컴백 이후 네트 성공률과 코스 조절이 더 정교해졌다는 평이다.

여기에 무기 하나가 더해졌다. 호승심(好勝心)이다.

이제 천위페이는 이기고 싶다는 맘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예전의 그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승리욕이다. 스스로도 “이길 욕심이 생겼다” 말할 정도다.

남방주말은 "천위페이 강점은 늘 안정감, 차분함 등으로 설명돼 왔다. 안정적이란 말은 야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의 그는 그 욕망을 '내 할 일만 하자'란 말 뒤에 숨겼을 뿐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실패는 분명한 깨달음을 줬다. 평정심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 깨우친 것"이라며 천위페이 내적 변화를 설명했다.

천위페이도 "이제는 더 이기고 싶어요. 이기고 싶다 생각해야 이길 수 있으니까요” 힘줘 말한다.

그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중국 체육의 30대 선수에게선 쉽게 듣기 힘든 말이다.

천위페이는 더 이상 자격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이기고 싶다. 서른 살에도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건 시대의 진보라 생각한다. 장닝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며 커리어 큰그림을 귀띔했다.

부상과 나이, 경쟁과 시간은 동시에 다가온다. 하나 천위페이는 이제 묵묵히 견디는 선수에 머물지 않는다.

득점 후 포효하고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냉정함과 격정을 자유롭게 오간다.

남방주말은 "이제 천위페이는 가장 화려한 선수도, 가장 주목받는 선수도 아니다. 그러나 공이 가야 할 곳을 가장 정확히 보내는 (원숙한) 베테랑이 됐다"면서 "도쿄의 정상에서 파리 추락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위페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신화로 포장하지 않는다. 다만 연약함을 인정하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을 뿐"이라며 2년 전 올림픽 연패 불발 시련에 꺾여 순간적으로 의욕을 잃어버린 천위페이 부활 배경에 한계를 수긍하고 강렬한 호승심을 장착한 '욕망의 변화'에 있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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