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아는데 '증거 없음'… 김건희 봐주기 판결
'뇌물 계약서' 없다고 명태균 여론조사도 무죄
언변만 화려하고 철학도 역사의식도 없지 않나
우리나라 법관 양성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증거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당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집 앞을 지나는 행인을 잡아다 자기의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보다 키가 짧으면 키를 늘려서 죽이고, 키가 길면 긴 만큼 잘라서 죽였다. 수사를 그렇게 하면 진실을 규명하고 불법을 밝히는 게 아니라 생사람을 잡게 된다. 법을 그렇게 집행하면 살아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죽이지 않고 풀어주기로 작심한 프로크루스테스 판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범죄 사실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으면 무죄로 판결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라고 한다.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격언도 있다. 둘 다 같은 의미일 것이다. 멋진 말이다. 그런데 그 원칙과 격언이 멋진 말이 되려면, 그 피고인에게 죄가 없어야 한다. 그게 아닌데 그 원칙과 그 격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법원의 그물은 성기어 법을 잘 알고 머리만 잘 굴리면 죄를 짓고도 얼마든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으니 탈법과 편법을 장려하게 될 것이다.
김건희가 연루된 주가조작이 있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주가조작으로 막대한 돈을 번 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평생 모을 수 없는 금액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 통정매매의 정황까지 있으니 김건희도 주가조작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주가조작 일당과 같이 주가조작을 모의하고 실행한 공범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무죄란다. 방조죄로 기소했다면 유죄가 될 수 있지만, 방조죄로는 기소하지 않았으니 방조죄에 해당하는지는 따져보지 않았단다.
세상이 다 아는데 판사만 모른다고 '증거 없음'

여론조사 계약을 하진 않았단다.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계약서를 쓰는 사람은 없다. 바보도 그렇게는 안 한다. 한국 사회에선 '내가 해주라고 했는데 말이 많네'라는 건, 청탁이 통했다는 거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가장 힘이 세다는 말도 있다. 김영선 공천은 공천관리위원회에서 투표로 결정했다지만, 대통령 당선자가 봐주라고 했다는 걸 알면서도 반대한 공천관리위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정하게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김영선에게 공천을 주라고 한 것만으로도 선거 개입과 청탁의 죄는 성립한다. 미수에 그쳤어도 불법인 건 맞다.
명태균의 여론조사는 조작일 개연성이 높다. 여론조사 조작은 합리적인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선거 결과를 왜곡되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행위다. 따라서 여론조사는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대선후보가 그걸 몰랐을 리 없다. 명태균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법에 어긋나는 여론조사를 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대선후보가 거리낌 없이 그걸 받아보았다는 것이다.
누굴 위한 '100% 범죄 입증 안 됐으니 무죄' 금과옥조인가?

김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국민이 안다. 약간의 과장을 하자면, 누구네 집에 숟갈이 몇 개인지 아는 정도로 훤히 안다. 그런데 주가조작 혐의도 여론조사 관련 혐의도 무죄란다. 그 판결에 공감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인터넷 세상에선 돌풍이 일어나고 재판의 권위, 법원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진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이 집단으로 복귀 요구를 했다는 게 생각난다. 수사가 아니라 태업을 했구나, 무죄 판결이 나오도록 수사를 했구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러면서 보완수사권을 달라고?
범죄가 100% 입증되지 않을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 멋진 말이다. 왕과 귀족이 법 따위를 우습게 알던 시절에 힘없는 평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형사소송의 대원칙이 아닐까? 그런데 독재 권력이 법 위에 있던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없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던 이들에겐 그 법언이 왜 적용되지 않았는가. 정치적 표적을 물고 뜯는 검언 합작의 마녀사냥이 횡행할 때는 왜 그 금과옥조 같은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는가.
사유와 번민 없이 외부와 단절된 판결만 내놓는 법관
증거가 없다고 한다. 솔로몬 왕은 아이의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둘로 갈라 반씩 가지라고 했다. 증거가 없어서 그랬을 것인데, 그러자 진짜 엄마가 나타났다. 오늘날의 판관에겐 왜 그런 지혜가 없는가. 사유와 번민이 없는 판결, 법원 밖의 세상과는 단절된 판결, 법조문에 끼워 맞추는 기계적 판결은 좋은 머리로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고 빠져나가는 법 기술자와 법꾸라지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AI가 무서운 건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바둑의 정석이 뭔지도 모르던 알파고가 학습에 학습을 거듭하더니 바둑 천재 이세돌을 이겼다. AI에게 판결을 맡기면, 학습에 학습을 거듭하여 지혜로운 솔로몬 왕도 감탄할 판결을 내놓을 것 같다.
우인성 재판장은 김건희에게 형량을 선고하기에 앞서 대통령 배우자인 영부인은 법령상 권한이 부여된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므로 그에 걸맞은 처신이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높은 청렴성과 염결성이 요구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또한,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토대 중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공정이고, 모든 일은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데, 이러한 공정을 해하는 것이 부패이고, 부패는 금전적 청탁과 필연적으로 결부되며, 영리 추구는 거개 인간의 본성이긴 하나 지위가 영리 추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권력에 대한 금권의 접근은 다반사일 수 있으므로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판결문은 화려한데 형량은 누추하기 짝이 없는 판결

그런데 형량은 고작 1년 8월이란다. 주가조작은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불공정 행위이고, 여론조사 조작은 선거의 민주적 기능을 방해하는 불공정 행위인데,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토대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정이라면서, 김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국민이 아는데도 무죄 판결을 내린다. 매를 드는 것 같더니 사탕을 주는 꼴이다.
법의 적용에는 권력을 가진 자이든 권력을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단다. 그 말은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에게 정치 보복을 할 때 적용해야 한다. 김건희 수사와 재판이 정치 보복인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어려운 고사성어는 아는데 쇠귀에 경 읽기라는 쉬운 속담은 모르는 게 아닐까.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의 모든 걸 법조문에 끼워 맞추는 기계적 판결을 공정한 판결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우리 법원에선 왜 이리도 솔로몬을 만나기 어려운가... 별별 생각이 스친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판사들에게 해줘야 할 것 같다. 윤석열의 12.3 계엄은 내란이고 친위 쿠데타이며, '위로부터의 내란'이 '아래로부터의 내란'보다 위험하다는 판결은 단지 법조문에서 나온 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조인 양성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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