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식량 왔습니다”…커튼 너머 숨 죽이던 긴장감이 안도로 바뀌었다[미니애폴리스 르포]

정유진 기자 2026. 1. 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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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호텔·레스토랑 노조 상근 직원인 웨이드 루넨버그가 28일(현지시간) 이민단속 위험으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노조원들에게 배달할 식량 상자를 차에 싣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오늘 우리가 식량 상자를 나눠주기 위해 돌아야 할 집은 모두 네 곳이에요. 빨간 모자에 빨간 목도리까지 둘렀으니, 전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처럼 보이진 않죠?”

미국 미네소타주 트윈시티(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호텔·레스토랑(접객업) 노동조합 상근 직원인 웨이드 루넨버그가 28일(현지시간) 자동차 트렁크에 상자를 실으며 말했다. 상자 안에는 ICE의 단속 때문에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이민자 조합원에게 전달할 햄, 통조림·양파·파스타면, 과일 등이 들어있다. 호텔·레스토랑 노조 조합원의 대부분은 유색인종 여성이고, 그중 상당수가 중·남미에서 온 이민자다.

첫 번째 집 근처에 도착한 후 차를 세운 루넨버그는 핸드폰으로 그 자리에서 찍은 셀피 사진과 함께 식량 상자를 가져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ICE에 대한 경계심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면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미리 인상착의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현관문 앞에서 벨을 눌렀지만, 벨은 고장 나 있었다. 문을 노크했지만 잘 들리지 않는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위층 창문 커튼이 살짝 열리더니 한 남성이 누구를 찾아왔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창문 앞에 서서 계속 경계하며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호텔·레스토랑 노조 상근 직원인 웨이드 루넨버그가 28일(현지시간) 이민단속 위험으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노조원의 집에 식량 박스를 들고 가기 전, 자신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기 위해 셀피를 찍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이 집은 싱글 하우스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방마다 세를 줘서 네댓 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중남미 이민자의 경우 친인척들이 이렇게 모여 사는 경우도 많다. 그가 말을 전해줬는지 곧 우리가 찾던 조합원이 식량 상자를 받으러 나왔다. 루넨버그가 지내는 건 어떻냐고 안부 인사를 건네자 “다음 주부턴 일을 하러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음식은 부족하지 않냐고 물으니 “이 집에 사는 모두가 (각자 구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있어서 버틸 만 하다”고 말했다.

“부디 안전하라”는 진심어린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다음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루넨버그가 갑자기 “방금 ICE 차량을 봤다”고 말했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터라 어떤 차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ICE 차량은 겉에 아무런 표식이 없어서 일반 자동차와 잘 구분이 안 되지만, 자세히 보면 차량 밖에 작은 안테나가 솟아 있다”고 했다. 또 플로리다나 텍사스 번호판을 단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인 경우가 많고, 대개 서너 대가 함께 움직인다고 했다.

곧이어 나타난 사거리 교차로에 간이 검문소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ICE 아웃’ ‘이웃이 지킨다’라는 팻말과 교통 통제용 고깔이 세워져 있었다. 보초를 선 네다섯 명의 청년들은 추위 속에서 땔감을 태우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우리가 식량 상자를 배달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자, 그들이 우리 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루넨버그가 먼저 다가가 “노조에서 식량 상자를 배달하러 왔다”고 말을 걸자 그들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고생이 많다”는 인사를 건넸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청년들이 동네 교차로에 자체 검문소를 만들어 보초를 서고 있다. 차량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 ICE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잘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써놓은 ‘이웃이 지킨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검문소를 왜 만들어 놓은 것이냐고 물으니 청년들은 “ICE 차량이 지나가는 걸 잘 감시하기 위해서 차량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동네 주민인 이들은 오늘이 활동 첫날이라고 했다. 다른 동네들이 이미 많이 설치해 놓은 것을 보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자발적으로 소규모 모임을 조직해서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돌아가며 보초를 서기로 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른 아침에 이미 한 대가 지나갔다. 곧 슬슬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면서 “오늘도 포틀랜드 35번가 쪽에서 누군가 ICE 차량에 쫓겨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고 전했다. 언제까지 계속 검문 활동을 할 계획이냐고 물으니 “ICE가 떠나갈 때까지”라며 “우리에겐 땔감도 많고, 사람도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루넨버그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채팅앱 등에 ICE가 민간인을 가장해 잠입해 있어서, 요새는 서로 얼굴을 아는 동네 주민들끼리 소규모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CE가 나타났을 때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은 도시를 순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블록에 사는 이웃들”이라면서 “외부에서 누군가가 지켜주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블록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이웃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검문소에 세워놓은 ‘이웃이 지킨다’라는 팻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루넨버그는 “우리가 식량 상자를 들고 차에서 내렸을 때 검문소 청년들뿐 아니라, 아마 이 블록의 여러 집에서 커튼 너머로 우리가 안전한 사람인지 점검하는 시선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호텔·레스토랑 노조 상근 직원인 웨이드 루넨버그가 28일(현지시간) 이민 단속 위험으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노조원들에게 식량 상자를 배달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그다음 향한 집은 우리가 이제까지 들른 모든 집이 그랬듯이, 창문부터 현관까지 유리란 유리는 모두 커튼과 수건으로 빈틈없이 가려져 있었다. 한참을 노크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그냥 돌아가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순간, 현관 유리를 가린 수건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산타클로스처럼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목도리를 한 남성, 그 옆에 서 있는 아시아계 여성인 기자를 보고 경계심이 풀어진 듯 문을 열어준 이 여성은 우리가 찾는 조합원이 2층에 살고 있다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이 집 역시 여러 가구가 방마다 세 들어 사는 형태였다. 1층의 한 방 안에는 어린아이 셋이 방에만 갇혀 있어 좀이 쑤신 듯 침대 위에서 뒹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루넨버그는 “식량도 식량이지만, 한 달 넘게 일을 하지 못했으니 이제 다음 달부터는 공과금과 월세 내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월세와 보험료 등으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적립해 온 노조 위기 대응 기금을 모두 털어 써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니애폴리스는 코로나19 봉쇄에 이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며 “이제 겨우 회복하려던 찰나 다시 이 사태가 터졌다. 이곳 지역 경제가 정말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 도시는 이민자와 원주민이 모두 섞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이민자를 단속하면 어느 구역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침체된다”고 했다.

ICE는 미니애폴리스에서 머물 호텔을 이미 5월 말까지 예약해 뒀다고 한다. 일부가 조기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태로 인한 유색인종과 이민자의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될 것 같지 않다. 최악의 경우 5월 말까지 이렇게 제2의 코로나19 봉쇄 같은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루넨버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회복력이 강하다. 이 위기도 또 극복해 낼 것”이라면서 “미니애폴리스는 그럴 힘과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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