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의 대변 이식, 암 치료의 ‘새 돌파구’ 될까

박해식 기자 2026. 1. 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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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 부작용 줄이고 폐암·흑색종 환자에서 면역항암제 효과 크게 개선
대변 미생물 이식이 신장암 독성을 완화하고 폐암·흑색종 치료 반응을 개선한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제시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위장관에 이식하는 ‘대변 미생물총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FMT)이 암 치료 효과를 의미 있게 개선할 수 있다는 두 건의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게재됐다.

한 연구에서는 신장암 치료제의 독성 부작용을 FMT로 완화할 가능성이 관찰됐고, 다른 연구에서는 폐암과 흑색종 환자에서 면역항암제에 대한 반응률을 높이는 데 FMT가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제시됐다.

첫 번째 연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 위치한 런던 헬스사이언스센터(LHSC) 산하 버스피튼 패밀리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신장암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했다. 면역항암제와 병용한 FMT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1상 임상시험 결과, 맞춤형 FMT가 면역치료로 인한 독성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LHSCRI 소속 미생물·면역학자 사만 말레키 박사는 “진행성 신장암의 표준 치료에는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면역항암제가 포함되지만, 이 치료는 대장염이나 심한 설사를 유발해 환자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FMT로 독성 부작용을 줄여 환자가 치료를 끝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이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연구는 캐나다 몬트리올대학병원 연구센터(CRCHUM) 주도로 폐암과 피부암(흑색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2상 임상시험이었다.

연구 결과, FMT를 받은 폐암 환자의 80%가 면역항암제에 반응했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보고된 면역항암제 단독 치료의 평균 반응률(39~45%)보다 높은 수치다.

흑색종 환자에서도 FMT를 병행한 경우 75%가 치료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관찰된 면역항암제 단독 치료군(50~58%) 반응률을 뛰어 넘는다.

폐암 임상시험과 흑색종 임상시험에는 각각 20명씩, 총 40명의 환자가 참여했다.

CRCHUM 소속 임상 의사이자 종양학과 조교수인 아리엘 엘크리프는 “이번 임상시험은 대변 미생물 이식이 폐암과 흑색종 환자에서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FMT의 작용 기전 중 하나로 건강한 대변 이식 후 염증을 유발하거나 면역 반응을 방해하는 장내 세균의 비중이 줄고, 유익균이 증가하는 미생물 구성의 재편 현상을 꼽았다.
대변 미생물 이식이 신장암 독성을 완화하고 폐암·흑색종 치료 반응을 개선한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제시됐다. 대변 이식용 미생물 캡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두 연구 모두 LND101으로 알려진 최신 FMT 캡슐을 사용했다. 이 캡슐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 있는 로슨 연구소에서 생산했으며, 건강한 기증자의 대변에서 미생물을 정제해 만든 경구용 제제다.

현재 췌장암과 일부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최근 장내 미생물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많은 의사가 우리의 장내 미생물 군집이 정신 건강부터 특정 암 발병까지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수조 마리에 달한다. 주로 박테리아지만 바이러스와 곰팡이도 있다. 장내 미생물이 다양할수록 건강에 이롭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은 대사·면역 건강과 연관되지만, 암 치료 반응에서는 특정 미생물 조합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장 건강은 식습관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 등으로 어려운 사람도 있다. 대변 미생물 이식이라는 인위적 개입을 통해 장 건강을 개선함으로써 질병 치료를 시도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해 수년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받은 후 증상이 극적으로 호전된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다만 해당 사례는 암 치료와 직접 관련된 연구는 아니며, FMT의 전반적인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됐다.

첫번째 연구논문 주소: https://doi.org/10.1038/s41591-025-04183-8
두번째 연구논문 주소: https://doi.org/10.1038/s41591-025-04186-5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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