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 '왕과 사는 남자'를 향한 이유 있는 자신감 [인터뷰]

2026. 1. 2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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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이후 호평 "이준익 감독, 드디어 해냈다고 칭찬"
유해진부터 전미도까지 특급 캐스팅… "내가 모았다" 재치
오는 2월 4일 개봉… 설 연휴 극장가 정조준
장항준 감독이 첫 사극 연출작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쇼박스 제공

"촬영 전부터 촬영을 마칠 때까지 시나리오를 수정했어요. 최소 30번은 고친 것 같아요. 끝까지 밀어붙여봤습니다."

장항준 감독이 첫 사극 연출작 '왕과 사는 남자'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을 스크린의 중심에 담아냈다. 정식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시사회 이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단종의 비극적인 서사에만 집중하는 대신, 그의 마지막 날까지의 여정을 인간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장항준 감독은 "영화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남겨주셔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며 "감사하지만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관객들의 진짜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고 말했다.

"시사회에 오신 이준익 감독님이 '항준아, 드디어 네가 해냈구나. 엄청난 걸 해냈구나'라고 칭찬해주셨어요. 저를 믿고 함께해준 배우들과 스태프, 그리고 투자를 결정해준 분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몇 년 동안 준비한 농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에요."

익히 알려진 단종의 역사는 이렇다. 세종대왕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세손이자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문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으나 곧 정치적 암투에 휘말린 어린 왕 단종 이홍위는 결국 왕위를 찬탈당한다. 영화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했을 그가 1457년 궁을 떠나 영월 산골 마을 청령포로 유배를 떠나며 시작된다. 장항준 감독은 계유정난 전후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에 집중해온 기존의 대중매체적 접근에서 벗어나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마지막에 주목했다. 비운의 왕이라는 이름 아래 단편적으로만 그려졌던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은 러닝타임 117분에 고스란히 담겼다.

"살육의 역사는 드라마틱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이 다뤄졌어요. 제작비를 다 대줄 테니 만들어보라고 했다면 저는 못 했을 겁니다. 이미 훌륭한 작품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단종의 이야기라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실패한 역사와 실현되지 못한 정의를 우리는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지 관객에게 묻고 싶었어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바 없는 단종의 이야기를 영화 전면에 배치, 깊은 감동을 예고한다. 쇼박스 제공

“화려한 캐스팅? 내가 모았다 하하”

희망과 절망,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배우들의 호연을 통해 완성됐다.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등 연기로 정평이 난 각 세대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관록의 배우 유해진과 대세 배우 박지훈의 연기 앙상블은 '왕과 사는 남자'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제가 배우 복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 배우들을 제가 모았다는 거예요.(웃음) 두 인물이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넣었습니다. 실제로는 왕과 일반 백성이 함께 밥을 먹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죠. 하지만 상전과 아랫사람이던 관계가 어느 순간 친구로 변하는 걸 가장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수평적인 관계는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그런 변화에 집중해 그리고자 했어요."

유해진은 극중 단종이 유배된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를 연기한다. 마을의 이익을 위해 유배를 반기던 인물이 점차 단종을 진심으로 지키게 되기까지, 유쾌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단종 이홍위 역은 박지훈이 맡았다. '약한영웅' 시리즈를 통해 깊이 있는 연기로 호평을 받은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폭발시킨다.

"유해진 배우를 두고 '역사책을 찢고 나왔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은연중에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유해진 배우의 외모야말로 정말 한국적인 얼굴이죠.(웃음) 그 시대 시골 장터에 가면 꼭 있을 법한 내추럴함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박지훈 배우와는 사전에 1대 1 리딩을 많이 했어요.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바로 시도해보는 태도를 가진 친구입니다. 만약 박지훈 배우가 출연을 고사했다면 지금의 이홍위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특별출연 라인업 역시 화려하다. 영화 '범죄도시3'에서 강렬한 빌런을,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는 로맨스를 선보인 배우 이준혁이 금성대군 역을 맡았다. '범죄도시' 시리즈와 '핸섬가이즈' 등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박지환은 영월군수로 분했다. 이웃 마을 노루골 촌장 역은 배우 안재홍이 맡아 유해진과 유쾌한 케미를 완성한다.

"금성대군은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힘을 가진 선인이에요. 그래서 한눈에 봐도 멋있는 인물이길 바랐어요. 이준혁 배우에게 제안했는데 너무 흔쾌히 수락해줬죠. 이후 '나의 완벽한 비서'가 크게 주목받으면서 괜히 느낌이 좋았습니다. 안재홍 배우는 '리바운드'로 인연을 맺었어요. 시나리오를 건네며 '어떤 배역이 어울릴 것 같냐'고 물었더니 스스로 노루골 촌장을 고르더군요. 친분을 떠나 정말 잘해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의 위기가 거론될 만큼 극장가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장항준 감독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그는 "'왕과 사는 남자'가 한국 영화가 다시 살아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며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이 작품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한편 '왕과 사는 남자'는 오는 2월 4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im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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