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야지 제 맛… 겨울바다 ‘三味’[이우석의 푸드로지]
겨울미각 대표주자 ‘굴’
석화·국·젓갈·찜 다양한 조리법
특유의 감칠맛… 동서고금 인기
우주식품 손색없는 ‘매생이’
단백질·무기질 등 많아 영양만점
부드럽고 향긋한 풍미 끌어올려
금어기 거쳐 살이 꽉 찬 ‘대게’
국내 생산 게 중 가장 큰 몸집
게딱지 속 내장 볶음밥도 별미

요즘 국제적으로 ‘핫’한 논란의 중심에 선 까닭인지 그린란드(누크 기준)가 대한민국 서울의 겨울보다 따뜻하다. 나가면 곧 귀가 시리고 볼이 아리다. 이렇게 매일 추울 때면 대번에 볼멘소리가 튀어나오지만, 그 나발 같은 입을 틀어막아 줄 것이 있다. 바로 추워야 제맛이 드는 겨울 진미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닷물까지 식으면 그제야 맛난 음식이 나온다. 차가운 겨울 바닷물로부터 ‘꿀’ 같은 굴도, 비단 같은 매생이도 난다. 향긋한 밥상의 동반자 김(해태·海苔)도 지금이 제일이다. 금쪽같은 대게야 금어기 풀린 12월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그 껍데기 속에 살이 꽉꽉 들어차는 시기는 설을 목전에 둔 이제부터다. 항상 볼 수 있는 여느 산물보다 귀하니 진미(珍味), 맛있어서 겨울의 진미(眞味) 대접을 받는다.
몰아치는 한풍은 여린 살을 에지만 바다는 풍년가를 부른다. 겨울 바다가 선사하는 귀한 선물 3가지를 챙겨봤다. 우선 굴이다. 밥상은 달력. 식탁을 보면 계절이 보인다고 요즘 심심찮게 굴 접시를 볼 수 있다. 굴보쌈이며 굴전도 ‘개시’란 글로 술집 벽면 메뉴를 장식한다. 모두 마이클 잭슨이 된 것처럼 장갑 한 짝만 낀 이들이 모락모락 수증기를 피우는 굴찜 냄비 앞에 앉았다. 바야흐로 제대로 맛이 든 굴을 즐기는 때인 까닭이다.
동서고금을 훑어, 굴은 많은 이들이 대놓고 사랑한 식재료다. 이 ‘미식 행위’는 로마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네카,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가 즐겼다. 이후 앙리 4세, 카사노바,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자칭 ‘굴 마니아’로 알려졌다. 권력이나 재능, 재물이 많은 이들이 특히 이 부드러운 연체동물을 사랑했단 얘기다.
지금도 유럽과 미국에선 굴이 굉장히 값비싼 식재료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굴이 싸기로 세계에서 내세우는 나라인 만큼 겨울이면 누구나 굴을 즐길 수 있다. 백반집 반찬으로 나오고 국밥으로 즐길 수도 있다. 세계 양식 굴 생산량 2위이자 신선 굴 유통량 1위인 덕분이다. 그래서 굴에 대한 조리법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서양에선 커다란 접시에 화려하게 두른 석화(石花)를 하나씩 집어 레몬과 타바스코를 뿌려 먹는 것이 고작이지만 우리에겐 많은 굴 요리가 있다. 껍질째 굽거나 쪄먹고 전으로 부친다. 김치에 넣거나 밥을 짓고 국을 끓인다. 큰 굴은 튀기고 작은 굴로는 젓을 담근다. 이마저도 귀찮을 때, 그냥 알굴을 사다가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겨울 먹거리의 다양한 메뉴를 굴이 책임진다. 어떻게 해 먹어도 굴의 감칠맛은 어디 가지 않는다. 겨울철 미각을 대표한다.
한국의 중국음식점도, 일식당도 굴을 요리한다. 볶아서 육수를 내면 굴짬뽕이 된다. 사철 쓰는 굴소스로는 볶음밥을 낸다. 일식 메뉴인 ‘가키프라이(굴튀김)’도 요즘 나오는 메뉴다. 저지방 고단백질은 물론 아연 등 무기질도 많아 스태미나를 올려준다. 멜라닌 색소 분해 효소도 함유, 피부 미용에도 좋다. 셀레늄·철분·칼슘·비타민 등을 많이 품어 겨울철 감기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곧 설이라 굴 떡국도 연상하기 좋은데 이때 함께 들어가는 것이 매생이다. 서로 겨울이 제철인 동기(同期)인 데다 장흥과 고흥, 여수 등지에서 나는 굴은 매생이와 남해안 동향(同鄕)인 경우도 있어 지역 궁합도 아주 좋다. 미역과 김, 다시마, 톳, 우뭇가사리, 파래, 꼬시래기, 모자반, 감태 등 한국인이 즐기는 여러 바닷말 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매생이다. 단백질이 많고 무기질과 미네랄 등 영양가도 높아 매생이는 나사(미 항공우주국)로부터 우주식품으로까지 추천되기도 했다.

떡국에 굴과 매생이가 들어가면 부드럽고 향긋한 국물의 풍미가 아주 좋아진다. 졸깃한 떡국떡과 매생이의 매끈한 식감 대비도 환상적이다. 여기다 알찬 굴까지 씹으면 탱글탱글한 저작감이 가미된다. 한술 뜨자면 굴에서 나온 뽀얀 국물에 검은색 실크처럼 생긴 매생이가 가득하다. 휘휘 저으면 술술 풀어지며 젓가락에 차곡차곡 감긴다. 처음부터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무척 뜨거우니 국수처럼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편이 낫다. 김이 나지 않아 뜨거운지도 모른다. 진하고 시원한 국물에 몸은 뜨끈하고 속은 후련해진다. 그래서 남도 지방에선 매생이 굴 떡국을 꼭 설날이 아니더라도 겨울철에 즐겨 먹는 메뉴로 삼는다.
매생이는 장흥군 내저마을이 유명하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생이를 양식한 곳이다. 전라남도 안에서도 매생이의 존재를 잘 모르던 시절, 이미 겨울 바다에 발을 박고 매생이를 키웠다.
국 한 그릇에 담은 청정 바다의 향기가 놀랍다. 그 덕분에 금세 입소문을 탔지만 국내에선 매생이를 키울 수 있는 곳은 얼마 없다. 추운 겨울에 매일 나가 매생이를 거두는 일도 고되다. 그렇게 수확한 매생이를 깨끗이 세척해야 비로소 장에 나온다. 그야말로 진미이자 별미다. 쨍하게 추워져야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식도락(食道樂) 재료다.

자, 새해가 왔으니 이젠 동해로 간다. 병오년 해(年)도 아니고 동해에 날마다 뜨는 아침 해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새로운 해(蟹), 즉 게를 이른다. 그중에서도 대게(죽해·竹蟹)다. 다리가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참고로 ‘빵게’라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대게 중 보호종(금어기에 어획된 게·암컷 게와 껍데기 9㎝ 미만 게)을 먹으면 ‘감방’에 간다고 생겨난 무시무시한 별칭이다. 가지고만 있어도 처벌 대상이다.
우리나라 겨울에는 꽃게, 털게 등 모든 게의 금어기가 풀리지만 그래도 날이 추운 한겨울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게다. 12월이 돼야 금어기가 풀리고 설은 돼야 살이 찬다. 이를 맛보러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울진과 영덕 겨울 바다를 찾는다. 대게는 포항부터 울진까지 동해 중부 연근해에서 난다.

대게는 다리가 열 개인 십각목(十脚目)으로 그중에서도 국내 생산 게 중에선 가장 큰 몸집을 가졌다. 꽃게보다 훨씬 살이 많고 껍질이 얇아 까먹기에 편하다. 살은 달고 향은 짙다.
대게를 먹는 법이야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쪄먹는 것이 제일이다. 대개 그렇게들 먹는다. 물에 담가 삶는 것이 아니라 솥에 판을 깔고 수증기로 삶아내면 된다. 껍질이 얇은 대게는 다리를 붙들고, 마디 부분을 찢어서 쭉 뽑아내면 ‘게맛살’처럼 기다란 것이 그냥 나온다.

그저 입에 넣고 씹으면 달달한 향과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게딱지로 불리는 몸통 부분은 전용 긁개로 살살 긁어내면 된다. 딱지 속 내장은 살을 적셔 먹어도 좋고 밥을 볶을 때 넣어도 별미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나는 겨울의 맛이다. 값비싼 대게는 대략 고사하더라도 영롱하고 매끈한 굴찜 한 알과 진록의 오발선빈(烏髮蟬빈)을 닮은 매생이국을 떠올리자면 벌써부터 이른 식욕이 꿈틀댄다. 코끝을 마비시키는 아침 출근길의 추위마저도 감사할 따름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매생이국= 토정황손두꺼비국밥. 토요시장에서 유명한 식당이다. 매생이를 처음 재배한 전남 장흥군이 매생이국에 진심이다. 장흥에선 굴도 많이 나니, 같은 물에서 난 이 둘을 함께 끓여내면 더 조화롭다. 여기다 키조개 내장까지 넣는다. 뜨겁지만 시원한 국물은 바다 향기를 잔뜩 머금었다. 각각의 식감을 내는 건더기가 많아 씹는 맛도 제법 좋다.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2길 3-9.
◇ 굴짬뽕= 이화. 세련되고 깔끔한 맛의 중식 레스토랑. 겨울이 왔으니 ‘통영굴짬뽕’을 판매한다. 큼지막한 굴을 잔뜩 넣고 채소와 함께 볶아낸 육수에 졸깃한 면발을 말아낸다. 면발 한 젓가락에 하나씩 집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굴에다 죽순채와 버섯, 커다란 새우 등 씹을 건더기가 쏠쏠하다. 뭐니 뭐니 해도 짬뽕의 생명은 국물. 굴에서 우러난 진한 육수가 시원한 채수와 만나 극강의 조화를 이룬다. 고추 잡채 등 다양한 덮밥 종류도 맛있다. 고양시 덕양구 동송로30 근린생활시설동 2층.
◇ 굴찜= 나는굴찜. 믿기 어렵겠지만 상호가 이렇다. 서울 다동 먹자골목에 새로 생겨난 굴 전문점이다. 전용 찜기에 굴을 쪄 주고, 곁들이는 메뉴로 굴무침과 굴국밥을 판다. 크로켓처럼 튀긴 굴튀김도 있다. 인기가 좋아 늘 당일 직송한 신선한 굴을 먹을 수 있다. 온통 메뉴가 굴이어서 굴만큼은 한동안 생각나지 않도록 실컷 맛볼 수 있는 집인데, 이상하게도 며칠 지나면 다시 구미가 당긴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2.
◇ 굴구이= 사계절굴구이. 굴찜이 아니라 굴구이다. 가스 불을 넣은 드럼통에 석화를 올려 구워 먹는다. 전남 장흥엔 굴구이 거리가 둘 있는데 그중 관산읍에 있는 집이다. 바다가 바로 앞이라 분위기가 좋다. 껍데기가 열을 뱉으며 벌어지면 비로소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굴을 망으로 주는데 많기도 하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굴만 있으면 허전하다.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짜장면 메뉴가 있다. 이 집 사장님이 예전에 중국집을 운영해 짜장면이 맛있다. 짜장면에다 구운 굴을 넣어 먹어도 좋다. 장흥군 관산읍 고마리 41-4.
◇ 대게찜= 왕돌회수산. 본격적인 대게 계절이 막 시작됐다. 식당은 대게 명산지 울진의 후포에 있다. 울진 출신 남편은 게를 찌고, 여수 출신 아내는 요리를 한다. 모든 식재료가 그렇듯 대게는 무조건 재료 상태가 좋아야 하지만, 찌는 기술도 맛을 좌우한다. 부드럽고 향긋하게 쪄내야 그 여운이 오래간다. 마지막으로 붉은대게(홍게)탕과 함께 곁들여 먹는 게딱지볶음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거르면 내년 겨울까지 후회가 쌓인다. 울진군 후포면 울진대게로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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