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산 56년 독자, '월간山기금' 만들고 떠나다

'김원식 월간<山> 구독 기금'이 만들어졌다. 김원식씨는 1969년 창간한 월간<산>을 2025년까지 56년간 정기 구독한 독자다. 과월 호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56년 전권을 보유한 독자는 여럿 있으나, 정기 구독 방식으로 전권을 가진 독자로는 유일하다.
월간<山> 애독자인 김원식씨는 2025년 7월 7일 서울 을지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5년 만에 별세(향년 85세)했다. 유가족은 산악인 유학재씨에게 1000만원을 전하며, 고인의 뜻을 기리는 데 사용해 달라고 청했다. 유학재씨는 국내에서 가장 큰 산악 서적 전문 도서관(서울 강북구 우이동 소재)을 운영 중인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과 상의해 '김원식 월간<山> 구독 기금'이 탄생했다.
월간<山>을 사랑했던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한국산악회 도서관에 영구적으로 매월 2부를 정기 구독하고, 국내외의 산악 도서를 구입하는 데 기금을 사용하기로 했다. 유학재씨는 "고인이 책과 산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이미 한국산악회 도서관에 산악 서적과 월간<山>을 기증해 '김원식 문고' 코너가 조성됐다"며 "이름이 남는 방식으로 도서관의 구입 기능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뜻에 공감한 변기태 회장이 500만원을 기탁하고, 주변 산악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현재 2500만원이 기금으로 모였다. 변 회장은 월간〈山〉의 장기 보존 가치를 강조했다.
"한 달 한 달 들어오는 잡지는 취향에 따라 흘려볼 수도 있지만, 10년, 수십 년 쌓이면 '왕조실록'처럼 '산악 실록'이 됩니다. 월간山은 정보의 가치와 내용에 있어서 산악계의 '실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산악 도서에 관심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홍보해서 기금을 3000만원까지 채울 생각입니다. 산악계의 미래와 후배들을 위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할 거름이 되는 작업입니다."
김원식씨는 1966년 '산비둘기산우회'에 가입하며 등산을 시작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모두 가난하던 시절이었고, 김소월 시집 한 권 들고 밀양에서 서울로 상경해 쪽방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후 별세 전까지 매주 산행을 거른 적이 거의 없었다. 49년간 함께 산악회 생활을 한 후배 유학재씨는 "결혼도 하지 않고, 등산과 독서에만 매진했다"고 회고했다. 더불어 "산악계의 큰 어른이자 기둥이고, 산의 교본이었다"며 "제가 쓴 책에 수록된 말의 7할은 김원식 선배께 배운 것들"이라고 말했다.
2011년 월간<山> 500호 특집 전권 보유 독자 인터뷰로 당시 김원식씨의 집을 찾았었다. 단정한 집 안에는 책과 등산 장비만 빽빽하고, TV나 다른 가구는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고, 불암산 약수터 산행을 하고, 책을 읽고, 산책하는 생활 루틴을 기계처럼 지키고 있었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고 자처하며, 백두산과 금강산이 몹시 가고 싶었으나 가지 않았다. 그는 "구차하게 중국으로 백두산 가고 싶지 않았고, 배 타고 임시방편으로 금강산 가고 싶지 않았다"고 평생 지켜온 소신을 말했었다.

그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국내 산만 다녔다. 1966년 이후로 크게 아팠을 때 한 달을 제외하고 산에 가지 않은 주가 없었다. 워킹산행, 암벽등반, 빙벽등반을 평생 했으며, 1980년대 백두대간 개념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태백산맥을 개척산행으로 종주했다. 남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섬진강을 혼자 일시 종주 방식으로 걸었다.
그는 "혼자서 걸어보니 참선이 정적인 명상이라면 걷는 것은 동적인 명상"이라며, "혼자 열흘 이상 걷다 보면 장거리 길만의 희열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걸으면서 '내가 가난하게 태어나서 많은 것 누리고 사는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70~1980년대 자동차 유리 공장을 운영했다. 큰 회사로 성장할 기회가 많았으나, 직원 한 명만 두고 작은 사업의 원칙을 고수했다. 의아하다는 기자의 표정에 "산에 다니기 위해서 그랬다"며 "그래서 이런 인생을 살아온 것(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 생활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악회 정기 등반에 나가고 싶지만 나이 많은 선배가 가면 후배들이 불편해하고 신경 쓸까 봐 가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다 어쩌다 한 번 나간다"고 했다. "어느 산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한참을 고민하다 "다른 산이 실망할까 봐 말 못 하겠다"고 했으며, 죽기 사흘 전까지도 대장암에 걸린 것을 후배들에게 말하지 않은 채, 항암 치료를 포기하고 몇 년간 홀로 조선 왕릉 대중교통 순례를 세 번 했다. 속 깊은 산악회 선배 김원식씨는 고인이 되어서도 '김원식 월간<山> 구독 기금'으로 후배들을 위하고 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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