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점령도시 같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증명됐다···“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르포]

정유진 기자 2026. 1.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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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가 이민단속 요원의 총격으로 숨진 현장에 만들어진 추모공간. 현장 주변에는 경찰이 상주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27일(현지시간)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를 기리는 추모 현장에서 목도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한 여성이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프레티는 지난 24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이민당국의 총격으로 숨졌다. 이날 미니애폴리스의 기온은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곧바로 얼음으로 변한대도 이상하지 않을 영하 18도였다.

자신을 케이틀린이라 소개한 여성은 이제서야 그를 추모하러 왔다면서, 목도리를 살짝 내려 자신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는 “보다시피 난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며 “외출할 때마다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다. 여기 올 때도 혹시 이민세관단속국(ICE) 차량이 따라오는지 주위를 살피면서 왔다고 했다. 그는 “그들은 억양 때문에, 피부색 때문에 사람을 잡아간다”며 “내가 미국 시민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늘 들고 다닌다”고 했다.

미국 시민조차 외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이민자들은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일명 ‘메트로 서지 작전’(대규모 불법 이민자 단속 작전)을 시작한 이후, 아예 한 달 넘게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ICE 요원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파트 안까지 급습할까 두려워서,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담요로 덮어놓는 가정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마트에 갈 수 없으니 식량조차 구할 길이 없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 임대 지원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편지글. 이 아파트의 한 거주자는 이민당국 단속으로 외출이 어려운 가정을 위해 무엇이든 돕겠다며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그러나 적군에게 ‘점령’당한 것 같은 이 도시는 놀랍게도 마치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스스로 역할을 나눠 맡아 서로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민 단속 요원이 출몰한 곳에 가지 말라고 알려주기 위해 ‘ICE 감시단’을 자처하며 자발적으로 순찰을 하는 시민들, ICE에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당한 사람들에게 심리 치료를 제공하는 성직자들, 이민자 가정을 위해 식량과 생필품을 배달하는 자원봉사자들…. 한 임대 지원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는 자신이 뭐라도 도울 테니 외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망설이지 말고 연락 달라는 장문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이날 오전, 식료품 상자 작업 현장이 한창이던 DHH 교회 지하 공간을 찾았다. 이곳에서 식용유를 소분하고 있던 예닐곱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이 교회 교인이 아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는데, ICE와 최전선에서 싸울 자신은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인터넷에서 자원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을 검색하다가 이곳을 찾게 됐어요.” 주 4일을 이곳에 자원봉사하러 온다는 캐럴이 말했다. 올 때마다 하는 일은 다르다. 어떤 날은 휴지와 생리대 등 생필품을 담고, 어떤 날은 소분을 마친 식량을 상자에 담는 작업만 꼬박 두 시간을 한다.

이 교회 목사인 세르히오 아메스쿠아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처음에 한 10가구 정도 지원해보자 싶어서 소셜미디어에 신청 모집 글을 올렸는데, 올린 지 8시간 만에 2000가구가 지원한 겁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미니애폴리스 지역주민들이 인근 DHH 교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민자 가정에 전달할 식료품 상자를 만들기 위해 식용유를 소분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이민자 대다수는 현재 ICE의 대대적인 추방 작전으로 공포로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이곳에서 최근 6주 동안 각 이민자 가정으로 배달한 식료품 상자만 1만2000개가 넘는다. 매일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1500가구에 식량을 배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다. 메트로 서지 작전이 장기화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식료품 신청 지원에 등록한 이민자 가정이 2만4000가구이고, 대기자 명단까지 있다. 자원봉사자인 리지는 “그 수많은 가정이 식료품 상자에 의존해 살고 있는 이 참혹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그들도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트윈시티(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호텔·레스토랑(접객업) 노동조합도 이민자 조합원을 위해 식량 배달 활동을 하고 있다. 접객업은 특히 이민 노동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업종이다. 셰이 프리버그 노조 사무국장은 “ICE가 공항 보안검색대 안쪽에서 일하는 우리 조합원 12명 이상을 납치했다”며 “공항에서 일하려면 법적 허가는 물론 10년 치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ICE는 임시보호지위나 난민 지위로 있는 (합법적) 이민자까지 추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묵는 호텔 방을 청소하는 하우스키퍼까지 괴롭히고 체포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출근을 포기하고 집에만 숨어 지내는 이민자 조합원이 점점 늘어나자, 그들을 위해 식량 배달을 하겠다고 다른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프리버그는 “현재 200명이 넘는 조합원과 그 가족들에게 매주 1회씩 식량 상자를 전달하고 있다”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조합원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7일(현지시간) 이민자 노조원 가정에 전달할 식료품 박스 앞에 서 있는 트윈시티 호텔·레스토랑 노조 사무국장인 셰이 프리버그.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사실 미국에서 백인 노동자와 이민 노동자의 연대가 언제나 당연한 것만은 아닌 시대가 됐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으로 이민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프리버그는 “그런 사고방식은 ‘자본’이라는 진짜 문제를 가린다”며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면 (자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이민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와 노동자가 연대하는 미니애폴리스에선, 종교와 종교도 연대한다. 미니애폴리스는 이민자와 난민이 많은 만큼, 종교도 다양하다. 소말리아 공동체는 대체로 무슬림이고, 아시아계인 몽 공동체는 불교 혹은 애니미즘을 믿는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태 당시 힘을 합쳤던 가톨릭·개신교·이슬람·불교 등 여러 신앙공동체는 이번에도 조직적으로 함께 행동했다.

크릭사이드 연합교회 목사인 수지 헤이워드는 다른 종교 성직자들과 함께 매일 밤 ‘ICE 감시단’을 위한 ‘치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들은 매일 ICE로부터 위협과 괴롭힘을 당하고,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혹은 직접 폭행을 당하기도 하죠. 우리는 매일 저녁 화상 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함께 숨 쉬면서 정서적 건강을 돌보도록 돕습니다.”

27일(현지시간) 크릭사이드 연합교회 목사인 수지 헤이워드. 그는 르네 굿과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가 사망한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이민단속 요원은 성직자 의복을 입은 그에게도 최루 스프레이를 뿌렸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사실 헤이워드도 위협과 괴롭힘을 당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ICE와 충돌이 일어난 현장에서 도움 요청이 오면 즉각 출동한다. 미니애폴리스 주민 르네 니콜 굿과 프레티가 ICE의 총격으로 사망한 현장에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성직자가 있으면 ICE도 폭력을 자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성직자 의복을 갖춰 입고 갔지만, 그는 매번 최루 스프레이와 모욕적인 발언을 감내해야 했다. “성직자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게 ‘방탄조끼’가 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들은 전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어요. 백인이고 성직자인 저에게도 이럴진대, 제 이민자 이웃들에겐 어떻게 할지 모두가 알기를 바랍니다.”

그는 지난 23일 금요일 열린 총파업 시위의 거대한 군중 속에서 “사랑이 증오보다 강하다는 것, 사랑이 폭력보다 더 강하다는 것, 우리가 이길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시위에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5만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레스토랑 등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접고 시위대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 헤이워드는 “트럼프에게 협력하지 않았을 때 따르는 대가에 대한 두려움이 미 전역에 퍼져 있는 것을 안다”며 “그러나 미네소타 사람들이 보여준 ‘저항’의 용기가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리버그 역시 이제는 ‘도시’와 ‘도시’가 연대할 때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총파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군대가 없습니다. 법원도 우리 편이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민주당도 우리 편이 아니에요. 우리가 가진 것은 노동을 거부할 능력뿐입니다. 트럼프는 우리 얘긴 듣지 않지만, 기업 얘긴 듣습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설령 ICE 요원 일부가 철수한대도, 그들은 다른 도시로 가서 또 단속을 할 겁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총파업 시위. UPI연합뉴스

미니애폴리스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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